"항우울제네요. 괜찮아요. 건선 환자분들이 우울증을 앓는 경우가 많아요"
항우울제를 먹는 상태에서 코센틱스 주사를 맞아도 되는지 묻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나는 나의 우울과 불안, 그리고 건선을 별개의 질병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울과 건선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건선 환자가 정신질환을 겪을 위험성이 정상 대조군에 비해 2배 이상 높다(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이지현, 방철환, 이석준, 윤재웅)고 한다. 또한 이 경우 피부과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함께 다학제 진료를 조기에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건선과 정신질환은 닭과 달걀과 같다. 일단 발병하고 나면 무엇이 우선인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건선과 정신장애는 상관관계가 있어 어느 한쪽이 악화되면 다른 한쪽도 악화된다는 점이다. 몸과 마음을 꾸준히 관리해야 건선과 정신장애 모두 치료할 수 있다.
건선 치료 과정이 정신건강을 악화시키기도 해
중증 건선 환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생물학적제제(주사)다. 한 번 맞는데 수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온전히 감당하기는 어렵다. 필자가 맞고 있는 코센틱스는 아래의 조건에 부합해야 보험 적용이 된다. 이 경우에도 10%는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가. 건선
1) 투여대상
6개월 이상 지속되는 만성 중증 판상건선 환자(만 18세 이상 성인)로 가), 나), 다) 또는 가), 나), 라)를 충족하는 경우(단, 피부광화학요법(PUVA) 및 중파장자외선(UVB; Ultraviolet B)에 모두 금기인 환자는 가), 나), 다)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가) 판상건선이 전체 피부면적(Body surface area)의 10% 이상
나) PASI(Psoriasis Area and Severity Index) 10 이상
다) MTX(Methotrexate) 또는 Cyclosporine을 3개월 이상 투여하였음에도 반응이 없거나 부작용 등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없는 경우
라) 피부광화학요법(PUVA) 또는 중파장자외선(UVB) 치료법으로 3개월 이상 치료하였음에도 반응이 없거나 부작용 등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없는 경우
출처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간단히 말하면 중증 건선 환자여야 하고, 6개월 이상 치료를 지속해야 한다. MTX, Cyclosporine도 3개월 이상 먹었는데도 효과가 없어야 한다. 광선치료를 3개월 이상 받는 것까지 포함된다. 광선치료는 일주일에 2회 이상 3개월간 지속적으로 받아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간에 일정 기간 이상 광선치료를 받지 않으면 연속성이 인정되지 않아 3개월이라는 기간을 새롭게 카운팅 한다. 일을 하거나, 일정이 있어 치료를 일시적으로 받지 못하면 처음부터 치료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 효과가 없는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는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이래 봐야 변하는 게 없는데 왜 치료를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반복되면서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치료를 포기하게 되면 건선이 악화되고, 악화된 건선에 정신건강도 더 나빠지는 일이 반복된다. 그러면 다시 건선 치료를 받는 데에 주저하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건선을 피부과에서 진단하지만 단순히 피부병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증상 완화와 함께 원인 제거가 중요
건선의 증상은 피부의 각질과 발진 등이다. 그래서 일부 병원에서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연고는 피부를 얇게 만들 뿐 아니라 연고를 중단했을 때 반동으로 이전보다 더 증상이 악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원인을 찾아 제거하는 일을 함께 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우울과 불안이 원인 중 하나였다. 수시로 우울하고, 잠을 못 자고, 술을 마시고, 피로를 느끼고, 불안해서 소화가 안 되는 등의 증상이 건선을 악화시켰다. 아무리 피부에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고, 광선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일시적인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다.
피부과와 정신과를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됐다. 그전까지는 무려 10년이 넘게 피부과를 전전했지만 증상은 악화되기만 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코센틱스(생물학적제제. 주사)를 맞겠다고 결심하고 약물 치료와 광선 치료를 꾸준히 해나갔기 때문에 건선 산정특례로 등록이 되고, 주사를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약물 치료와 광선치료는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무력감과 우울감, 심지어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분노나 억울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코센틱스를 맞고 1년 반 정도 지난 지금 건선으로 인한 각질이나 발진은 전혀 없다. 평생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2) 평가방법
가) 동 약제를 12주간 사용 후 평가하여 PASI가 75%이상 감소한 경우 추가 6개월의 투여를 인정함.나)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6개월마다 평가하여 최초 평가결과가 유지되면 지속적인 투여를 인정함.
3) 종양괴사인자알파저해제(TNF-α inhibitor: Adalimumab, Etanercept, Infliximab 주사제) 또는 Guselkumab, Ixekizumab, Risankizumab, Ustekinumab 주사제에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으로 투약을 지속할 수 없는 경우 또는 복약순응도 개선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교체한 약제는 최소 6개월 투여를 유지하도록 권고함)에 동 약제로 교체투여(Switch)를 급여로 인정하며, 이 경우에는 교체투여에 대한 투여소견서를 첨부하여야 함.
치료 의존이 아닌 완치 의지 필요
건선 환자는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는다. 피부가 드러나는 반팔, 반바지를 입는 것도 피하게 되고 사우나와 같은 공공시설도 꺼리게 된다. 일자리를 구할 때에도 제약이 많다. 두피에 건선이 있으면 머리를 자를 때도 눈치가 보인다. 만나는 사람마다 "피부가 왜 그러냐"라고 물어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다. 이러다 보니 인간관계 및 자존감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어 삶의 질이 낮아진다. 건선 초기라면 모를까 중증 건선으로 악화되었다면 피부과에 다니는 것만으로는 완치가 어렵다. 건선은 단순한 피부질환이 아닌 자가면역질환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건선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 나는 술, 담배, 커피를 전혀 하지 않는다. 누군가 감사의 표시로 커피를 사주어도 정중히 거절하고, 회식을 가야 하는 일이 있어도 몸이 좋지 않아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매운 음식이나 밀가루도 되도록 피한다. 규칙적인 시간에 자고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을 파악해 되도록 그 일에서 멀어지려고 한다. 욕심이 나는 일이 있어도 되도록 무리하지 않으려 한다.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치료를 더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리해봐야 병원비가 더 나간다.
*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