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모든 사람의 의견을 맞춰주고, 이야기를 다 들어주려고 했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었다. 그게 결과적으로는 내 감정을 속이는 것이고, 상대방에게도 실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순간부터 사람 말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혐오감을 느꼈다. 헛기침소리 나 웃음소리에도 소름이 끼쳤다. 그 정도로 사람이 싫었다. 나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 누구도 나에게 감정을 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살기 위해 이유를 찾아 나섰다.
1. 아버지의 주사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는 가족들을 세워놓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못 들게 했다. 눈을 마주치면 맞았고, 손에 힘을 쥐고 있었다는 이유로 맞았다. 내 생각과 다른 말을 해도 무조건 '네'라고 대답하거나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술에 취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어야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맨 정신에 이야기해요'라는 말은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스트레스는 점점 더 심해졌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의 음주는 더 심해졌다. 술을 끊으시거나, 주사를 부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크게 실망했다. 아버지라는 개인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집단 자체에 대한 신뢰가 점점 사라졌다. "사람은 안 변해"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2. 어머니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주사를 부리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나에게 신세 한탄을 했다. 나는 어머니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며 어머니는 온몸에 통증을 느끼셨지만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렇게 이곳저곳 병원을 전전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무력감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프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루 종일 듣고 있어야만 하는 게 상당히 힘이 빠지는 일이었다. 아프다는 사람에게 다른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야만 했다. 어머니와의 거리두기에 실패했고 어머니의 인생을 반복하고 있었다.
3. 콜센터
난치병이 있는 나로서는 힘을 쓰거나 야외에서 하는 일이 상당히 부담이었다. 그렇지만 돈은 벌어야 했다. 비교적 시급이 높은 일로 콜센터를 택했다. 춥거나 더운 날에도 실내에서 일할 수 있었고 육체적인 부담은 덜 했다. 그러나 콜센터의 특성상 대부분 문제가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고객들은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화가 나있는 상태였고 나는 그 감정에 그대로 노출됐다.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무조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녹음되어 평가를 받고, 그 평가는 인센티브에 적용됐다. 그래서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감정의 쓰레기통이 돼야만 했다.
4. 친구
친구 관계에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모두의 의견을 조율하려고 애썼다. 부모님의 싸움을 보면서 자랐기에 의견 충돌은 무조건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의견과 달라도 내가 다 맞춰주려고 했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절대 못 할 정도가 아니면 같이 했고 무슨 말이라도 다 들어줬다. 그러다 보니 그런 나의 성격을 교묘히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하나씩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 옆에서 내 에너지를 뺏어갔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에 그들을 내치지 못했다. 감정의 쓰레기통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의견을 조율하고, 힘든 사람을 모른 척하지 않는 게 내 역할이라고 여겼다.
5. '나'의 붕괴
나를 버틸 수 있게 했던 것은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나는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돈을 조금 못 벌더라도 정의를 버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 내 정의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나'의 모습이 모두 무너졌고, 지나온 삶이 모두 쓸모없게 느껴졌다. 나의 모든 행동이 위선적으로 느껴졌고 온 세상이 나를 비난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A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행동을 비판했다. 나는 나의 존재를 비난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만들어놓은 허구의 세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에 불과했다. 평균 이하일 지도 몰랐다.
나를 직면한 순간. 우울과 불안, 불면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이후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쓸모없게 느껴졌다. 나의 말도 다 거짓이고 위선인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았다. 정말 최소한의 이야기만 했다. 남의 이야기를 전하거나 의례적으로 하는 말은 잘했지만 나를 드러내는 일은 하지 못했다.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짜증과 화가 올라왔다. 나에게 무슨 목적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나를 설득하려고 드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항상 반감을 느꼈다. 그 사람이 하는 말과 반대로 하고 싶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에는 급격한 피로와 무력감이 동반됐다.
상담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했던 적도 분명히 있고, 지금도 비슷한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겠지만 분명히 다른 점도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싫다. 거절당할 것만 같고, 비난받을 것만 같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돌파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삶은 사람과 함께 한다. 온전히 혼자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사람들 사이에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선생님께서는 '관찰'을 권유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의례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사는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쓸데없는 말"을 하면서 어떻게 친분을 쌓는지. 그 "쓸데없는 말"의 쓸모를 주변 사람들을 통해 살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불안을 걷어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채워 넣으라고도 덧붙이셨다. (그런데 어쩌죠 선생님? 저는 제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힘들지만 직면하고 돌파하자. 실패하고 무안당하고 실수하고 잘못하면서 성장하자. 방법은 하나뿐이다. 소중한 사람과 내 삶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