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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Sep 27. 2023

미침에 미치지 못한 자

시도 때도 없이 잠드는 증상에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 선생님께서는 기면증을 의심하며 수면잠복기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 기면증 증상을 검색해 보던 나는 ‘이건 빼박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제발 기면증으로 진단받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애매한 질병에 시달리며 낙인의 공포와 무능의 시선을 감내하느니 확실한 장애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미 주요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진단받았지만, 두 질환은 법적 의미의 ‘장애’가 아닌 질병이므로 정신장애 등급을 받을 수 없었다. 반면 기면증은 장애인복지법의 개정으로 2021년 4월 13일부터 정신장애인 등록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기면증으로 장애 진단을 받는 데에 실패했다. 기면증으로 진단받기 위해서는 수면 후 특정 시간 내에 REM 수면이 출현하는 ‘SOREM(Sleep-onset REM)’이 5회 측정 중 2회 나타나야 하는데 이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학적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주간졸림과 과수면 증상이 있다는 의미의 특발성 과다수면증 환자가 됐다. 기면증 진단을 위한 수면잠복기검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전날 다중수면 잠복기 검사를 하며 충분히 재운 후 다음 날 아침 낮잠을 5번 반복해서 재웠다 깨우면서 얼마나 빨리 낮잠에 드는지, 렘수면이 발생하는지 알아보는 검사다.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불안하고 졸리고 무기력하지만 법적 정신장애인은 아니다. 법적으로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질병은 양극성 정동장애,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재발성 우울장애, 강박장애, 기질성 정신장애, 투렛장애 및 기면증으로 한정돼 있다. 그렇지만 정신질환은 있으니 등록 정신장애는 아니고, 미등록 정신질환자라고 할 수 있다. 국어사전에 따른 미치다의 정의를 살펴봐도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이므로, 내가 미쳤는가? 묻는다면 이것도 대답하기 참 애매하다.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히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나의 정신질환을 눈치채지 못한다. 나의 증상은 '약속 시간보다 미리 가기', '어떻게 해서든 마감시간 지키기' 등으로 나타나므로 오히려 사회에서 권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원인은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생각과 무망감, 성취에 대한 강박 때문이라는 점에서 나는 내적으로 미쳐있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이화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미친 채로 그냥 살 수는 없을까?’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세미나를 발견했다. 법적 미침의 기준에 도달하기를 바랐지만 실패하고, 다시 일반적인 혹은 흔한 사람(미치다의 정의에서 말하고 있는 보통 사람)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점이었으므로 이화여대 포스코관으로 발걸음이 향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마크 피셔(Mark Fisher)의 텍스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Good for Nothing)'과 2부로 나뉜 발제문을 읽으며 우리는 미쳤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크 피셔는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술적 의지주의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자 비공식적인 종교라고 말한다. 그 믿음 안에서 우울증은 우울증이 걸린 개인이 더 분발하고 기운을 차려야 하는 의지의 문제가 된다. 하지만 이는 개구라이므로 정치적 개입의 새로운 형태를 발명하고 사유화된 불만을 정치화된 분노로 전환하자고 한다.


마크 피셔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우울을 긍정(있는 그대로 받아들임)하는 책들이 이 세대에 위로와 공감을 주었음은 분명하나, 아직 정치적 개입이나 정치화된 분노로 이어지거나 전환되지는 못했다.


자본의 이윤을 추구하는 사회에 상처받은 자들이 생겨나고, 그 상처는 작게는 가족 내에서, 크게는 다른 세대로 대물림된다. 나다운 삶은 먹고사니즘에 지배당하고, 소비를 최고의 권리로 생각하며 타인을 도구화하는 사회에서 인간다움은 돈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규모가 점점 커지는 횡령 범죄와 다양해지는 사기 수법 또한 돈의 가치가 공동체의 가치를 뛰어넘어버린 우리 사회와 시대를 반영한다. 그러니 당연히 우울은 집단화된다. 그것을 심화시키는 데에는 개인의 기질과 예민함도 있겠지만, 출발점 혹은 중심에는 분명 자본과 권력이 있다.


외치자. 국가도 법도 자본도 이윤도 사람에 앞설 수는 없다.


* 마지막 문장은 릴레이 세미나 <탄성> 소개문에서 일부 빌려 옴




제2회 릴레이 세미나 <탄성> 소개문 전문


국가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공동체이며 법은 그 공동체의 규범입니다.

그런데 국가와 법이 사람보다 작으면 사람이 불법이 됩니다.

안전한 일터가 사라지고 도서관과 극장이 허물어집니다.

빈약한 상상력의 나라에서 허울 뿐인 자격을 서로 부여한 이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세상입니다.

국가도 법도 사람에서 나와야 하며 사람보다 앞설 수는 없다고 외치는 마음으로 릴레이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검열되고 격리되고 탄압되는 존재들, 노동자, 신경다양인, 퀴어, 여성-우리의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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