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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Jun 07. 2016

내겐 너무 낮은 싱크대

아버지께서 회식을 하시고 새벽에야 집에 들어오셨다. 술 냄새가 아직도 나는 것 같다. 그래, 오늘 저녁은 매운탕이다. 집 앞 마트의 생선 코너로 갔다. ‘와 갈치 싸게 나왔네?’ 이제는 능숙하게 스캔한다. 우럭이 세 마리에 만원이다. 오늘 들어왔는지 마트 치고는 싱싱해 보인다. 저걸로 정했다.      


가게 주인은 흘끔흘끔 쳐다보기만 한다. ‘이쯤 되면 뭐 찾으세요?’ 물어보던데. ‘그래,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이 찬거리를 사 갈 거란 생각은 쉽게 안 들겠지.’ 싶어서      


“우럭은 어디 있어요?”

하고 괜스레 물어봤다. 그때서야 


“뭐 하시려구요?”

하신다.


“매운탕 좀 끓이려구요~”     


이럴 땐 어린 게 손해다.     


집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는다. 주방으로 가서 쌀을 씻고 밥을 안친다. 급히 나가느라 하지 못 한 아침의 흔적들을 치우고 반찬을 만들기 시작한다. 매운탕을 끓인다고 하니 반 토막 내서 손질도 해주셨다. 오늘 요리는 손이 좀 덜 갈 것 같다.     


근데 슬슬 허리가 아파온다. 주방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 키에 안 맞는다. 낮아도 한참 낮다. 내가 긴팔원숭이가 아닌 이상 무릎을 굽히든 허리를 숙이든 해야 한다. 여성 평균 신장에 맞춰서 만든 건 알겠는데 남성들은 집안일 하지 말라는 거냐.     


이렇게 편견은 우리 삶에 스리슬쩍 숨어있다. 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거라는 편견.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싱크대부터 바꿔야 한다. 높낮이가 조절되는 걸로 말이다. 집안일은 특정 성별의 전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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