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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Sep 05. 2016

'진가와' 수연소면

나가사키현 미니미시마바라시 

2박 3일, 일본 나가사키현 미나미시마바라시 초청으로 다녀왔습니다. 보통은 여행시간순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순서지만 이번만은 기억 순으로 풀어 볼까 합니다. 식품 MD이다 보니 관광지보다는 먹거리 중심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미나미시마바라시는 나가사키시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 만날 수 있는 지역입니다. 구마모토와 마주 보며 아리아케 해의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시마바라 반도의 남쪽에 있습니다. 

400, 11, 48, 4, 4. 

수연(손으로 늘여서 면을 뽑는) 소면의 도시, 300개의 면 공장이 있는 미나미시마바라시에서 가장 유명한 진가와 면 공방과 관련된 숫자다. 

우선 400과 11은 전통을 의미한다. 400년, 11대를 거치며 오로지 수연소면만 상상불가의 시간 속에서 면을 뽑고 또 뽑았다. 굳이 상상하고자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숙종 42년 때면 생산을 시작했다. 장수를 기원하는 면이 갖다 댈 수도 없는 길고 긴 세월이다. 

48은 소면이 나오기까지 시간이다. 새벽 4시 30분, 그날 기온, 습도에 맞추어 염도를 조절해 반죽을 시작해 이틀 뒤면 포장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염도는 면을 만들어 온 세월이 몸에 알려준다. 그날 습도를 몸이 알아서 느끼고 염도를 맞추고는 염수를 중력분과 강력분이 섞인 통에 붓는다. 딱 부러지게 48시간은 아니다. 습도에 따라 건조 시간은 늘었다 줄었다 하기 때문이지만 대략 이틀 꼬박 걸리는 시간이 지나야 면이 비로소 완성된다. 

4와 4는 쫄깃한 면의 품질을 결정짓는 숫자다. 4번의 꼬임과 4번의 숙성이 ‘진가와’ 수연소면을 일본 최고의 맛이 되도록 한다. 반죽을 늘리고, 꼬면서 반죽은 가늘어지고, 0.6~0.8mm의 가는 면으로 변신한다. 면을 꼬면서 길이를 늘이면면의 탄력은 그냥 늘이는 것보다 좋아진다 한다. 반죽에서 면으로의 변화과정에서 네 번의 숙성 또한 면에 탄력을 준다. 치대고 늘이고 하는 과정은 글루텐이 형성하고, 숙성 시간은 글루텐을 좀 더 강하게 한다. 글루텐은 면이나 빵 등 밀가루 음식의 탄성을 결정짓는 밀 단백질이다. 반죽 과정에서 형성된 글루텐이 약하면 밀로 만든 음식은 탄력을 잃거나 식었을 때 고유의 모양이 저절로 망가진다.  

얇은 면이 나오면 건조장에서 하루를 말린다. 천장의 구조를 이중 구조로 설치해 자연스럽게 면이 건조되도록 한다. 순환되는 바람이 부족할 경우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천천히 돌아가며 면이 건조되도록 한다. 

견학을 끝내고 나오니 지방의 명물 간장인 날치 간장으로 만든 따듯한 국수가 탁자 위에 놓여 있다. 기대하던 시식 타임이다. 반죽에서 면이 되는 과정을 봐도 먹지 않고는 면의 탄력을 느낄 수는 없다. 상상으로 맛을 보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면만 들어 맛을 본다. 국과 면의 맛을 같이 보는 것이 좋지만 먼저면의 탄력이 궁금했다. 국물이야 소스에 따라 여러 변주가 가능하지만 400년의 세월이 응축된 면의 탄성을 느끼고 싶었다. 국수를 씹는 일행들이 먹었던 순서에 따라 탄성을 내뱉는다. 나이, 직업, 취향과 상관없이 저절로 내뱉는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공존할 수 없는 식감이 얇디얇은 면 안에 같이 있었다. 면을 씹을수록 ‘비빔국수’가 간절히 생각났다. 국물이 맛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식으로 비빔국수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다. 400년 된 국수 공방에 있지만 이미 머릿속에서는 양념장을 만들고, 오이를 채 썰어서 비빔국수를 만들고 있었다. 새로운 식재료를 만나고 머릿속으로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항상 즐겁다. 이런 재미에 식품 MD를 이십 년 넘게 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귀국한 다음 날 국수를 삶고 머리로 그렸던 국수를 만들었다.

양념장을 만들고, 고명으로는 오이, 잘 익은 열무김치 그리고 삶은 계란이면 충분했다. 면을 삶고는 얼음물에 담가 면 온도를 낮췄다. 물기를 빼고 양념장과 고명을 올리고 비볐다. 굳이 왼손, 오른손을 돌리는 CF송 따위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비볐다. 하얀 면보다는 빨간 양념이 묻은 면이 식욕을 더 자극한다. 면 과고명을 한 젓갈 가득 집어서 먹었다. 씹는 맛이 좋은 면에 비빔 양념까지 더해진다. 일본에서 그렸던 맛보다 상상 이상이다. 면만 바뀌었는데 요리가 달라졌다. 좋은 식재료가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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