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D의 식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영 Mar 06. 2018

버크셔 육포

식품 MD의식탁

육포다. 

맛있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아 쉽게 구입하기 어려운 식품 중에 하나다. 소고기 육포는 특히 더 가격이 후덜덜하다 30g 한 봉지에 오천 원 한 장 꺼내야 겨우 구입할 수 있으니 말하면 입만 아프다. 장거리 출장길에 잠이 오거나 식사 시간 지나쳤을 때 물 한 통과 육포 한 봉지면 잠과 허기를 달랠 수 있기 때문에 애용하지만 비싼 가격에, 비싸더라도 맛이라도 값어치를 한다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다. 딱딱한 질감에 버라이어티 한 시즈닝으로 맛 낸 부드러운 나무 조각 씹는 식감이다. 운전하면서 육포 질겅질겅 씹다 보면 이러려고 출장 다니나 하는 자괴감이 살짝 들 정도다.  

테스트 차원에서 육포를 만든 적이 있다. 집에서 가정용 건조기로 고기 핏물을 키친 타올로 제거하고 소금만 뿌려 만들었었다. 물론 전 버전은 전통적인 방식인 간장 물을 만들어 자연건조로도 만들어 봤다. 전통적인 방식이 풍부한 맛이 있어 좋았지만 대신 귀찮음이 있어 더는 만들지 못했다. 이후 숙성한 소고기와 버크셔를 먹어 보면서 원물이 맛있으면 굳이 양념은 필요 없을 듯싶었고 소금만 뿌려 건조했더니 예상대로 맛이 좋았다. 씹는 맛도 괜찮거니와 소금이 이끌어 내는 고기 특유의 맛이 깔끔했다. 시즈닝을 사용하지 않으니 텁텁함도 없었다.  

소고기는 숙성육으로 기름기가 적은 사태나 엉덩이 살로 했었다. 두 부위 차이는 씹는 맛이 다소 다를 뿐 큰 차이가 없었다. 버크셔로는 삼겹, 목살, 전지, 후지, 등심으로 다양하게 테스트했다. 물론 소금 간만 했다. 핏물 뺀 고기에 소금만 살살 뿌리고는 가정용 건조기에 65도 12시간 정도 말리면 겉은 마르고, 속은 촉촉한 육포가 된다. 두어 시간 더하면 속 안까지 건조된다. 돼지고기 육포 중 가장 맛있던 것은 삼겹살 육포다. 돼지비계 때문에 몇 시간 더 걸린다. 고기는 바싹 건조되어 씹는 맛이 떨어지지만 대신 건조 비계가 혀 온도에 녹으면서 촉촉함과 풍부한 맛이 난다. 처음 껍질 붙은 채로 했다가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껍질 때문에 이빨 나갈 뻔 한 경험 빼고는 최고의 맛이었다.  

그다음이 등심이다. 지방이 붙은 채로 해도 좋고 아님 없어도 씹는 맛이 좋다. 특히 8mm나 1cm 두께로 건조하면 씹는 맛은 배가됐다. 후지나 전지보다 고소했다.  

 테스트 해 본 결과를 바탕으로 버크셔 육포 생산을 버크셔 측에 제안했다. 삼겹살과 목살을 선호하는 국내 돼지고기 시장에서 맛있는 돼지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비선호 부위를 활용한 가공품이 나와 재고 선순환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뒷다릿살 29%를 넣은 만두를 만들었었고, 만두가 가지는 겨울이라는 계절 편중을 해결하기 위해 사시사철 판매할 수 있는 육포를 제안했다. 제안을 하고 시제품을 받은 게 재 작년 겨울이었다. 양념 맛이 강했고, 갈아서 반죽해서 다시 굽는 과정을 거치는 사이 버크셔 고유의 맛이 사라졌다. 원형을 살릴 수 있는 형태가 있어야 한다 제안했고 중간중간 샘플링하면서 맛을 보완했다. 그 결과물이다.  

매운맛이 강했던 것을 낮췄고, 비선호 부위인 등심으로 만든 육포도 나왔다. 생각했던 바가 반영된 제품이다. 거기에 더해 평소 주장했던 “멸치액젓은 조미료다”가 레시피에 반영됐다. 멸치액젓은 MSG 대용이다. 물론 사용된 시즈닝이나 간장에 MSG는 들어 있다. 하지만 시즈닝이나 간장에 MSG가 들어 있음에도 추가로 넣는 것을 넣지 않았지, MSG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MSG 호불호를 떠나 과용의 문제는 인지해야 한다. MSG를 따로 넣지 않아도 원재료가 맛있으면, 시즈닝을 사용한다면 굳이 추가로 넣을 필요가 없다.   


세 가지 맛 중에서 등심이 가장 좋다. 개취(개인 취향)다. 

그다음이 매운맛이다. 초기 버전은 매운맛이 강해 전체 맛을 버렸는데, 매운맛과 단 맛이 조화롭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식품 MD로써 하나의 상품이 나오는데 일조했다. 이런 상품들은 윤희한테 가는 정만큼은 아니더라도 사랑이 간다. 자식처럼 소중하다.  

그러면 된 거다.   

http://smartstore.naver.com/maysfood/products/2647007526


매거진의 이전글 남자의 두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