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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D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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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Mar 16. 2018

간이 맞는 굴비

간이 맞아야 맛있다.

굴비는 짰다. 냉장고가 없거나 부족했던 시대에 생선을 장기 보관하기 위해선 소금으로 절이고 햇빛에 말리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겨울이라면 그나마 보관이 용이했겠지만 조기 파시가 열리던 시기는 4월. 생선 상하기 딱 좋은 온도다. 그래서 굴비는 소금에 절이고 해풍과 햇빛에 말려 다음 해까지 먹었다. 

짜던 굴비는 냉장고 보급에 간이 약해졌고, 저염 시대에 맞게 그마저도 낮아졌다. 그 사이 파시를 이루던 조기는 남획 때문에 어획량은 급감했다. 시절은 좋아 굴비가 최고가의 선물세트로 대접받았다. 굴비 선물세트라는 것이 모양이 좋아야 하고, 무게도 있어야 해서 예전만큼 말리지 않게 되었다. 사라지는 수분 양만큼 원가가 날아가고 모양이 흐트러져 몇 날 며칠 말리던 굴비는 시간을 줄이고 줄여 한나절 혹은 하루 정도 말리게 되었다. 그래야 수분이 덜 빠지고 모양새가 유지된다. 무게와 모양새가 중요하지 식품 본연의 가치인 맛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듬직하고 모양만 좋으면 그만이다. 즉, 옛날의 굴비는 보름 이상 말렸고 현재 굴비는 한나절 말린다. 다만 보리굴비라 불리는 부세는 두어 달 이상 말리고 있다. 마른 굴비도 마찬가지다.

   

 2월의  영광 법성포. 한 겨울 바람에 부세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부세는 삭풍이 부는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말리는 작업을 한다.

덜 말려 수분이 많고 간이 약해진 굴비는 예전 맛이 아니다. 굴비라는 칭호가 부끄러울 정도로 맛이 조기랑 비슷해졌다. 조기를 말려 굴비 만드니 그게 그게 아닌가 할 수 있다. 하지만 말리는 과정에서 단백질과 지방 변성에 새로운 맛이 생겨 조기지만 굴비 맛은 차원이 다르다. 비싸고 심심 하기만한 굴비는 힘을 잃고 가성비로 무장한 새로운 맛이 등장했다. 최근 말린 부세가 득세다. 영광 법성포에 가면 참굴비만 보였다. 몇 년 전부터 부세가 굴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됐다. 2km 정도 되는 법성포 굴비 상점가에 굴비와 나란히 걸려 있다. 부세 득세는 같은 크기의 굴비보다 저렴한 것과 두어 달 이상 말리면서 응축된 맛 때문이다. 부세 만한 굴비는 한 마리에 2~3 만원 줘야 한다. 부세는 열 마리에 6~8만 원이니 가격 경쟁이 안 된다. 게다가 숙성의 맛마저 차이가 나니 굴비 찾는 이가 해가 바뀔수록 적어지고 있다.  

궁금했다. 필자도 식품 MD 22년 차지만 두어 달 바싹 말린 굴비는 먹어봤어도 며칠 말린 조기는 맛본 적이 없다. 매년 영광을 가 생산자와 며칠 말린 굴비 이야기를 하고 왔다. 시장이 며칠 말리는 동안의 비용과 무게와 모양만 보고 상품 가치를 판단하는지라 생산자는 항상 주저했다. 작년에도 이야기했고, 금년에도 내려가 다시 이야기 했다. 한번 해보자고.  

그 샘플을 드디어 받았다. 삼 일을 말렸다. 간은 냉동 굴비 기준인 2%로 동일하게 했다. 눌은밥에 굴비 올려 먹었다. 따신 밥도 좋지만 그래도 굴비는 찬물에 만 밥이나 눌은밥이 제격이다. 수분이 빠지면서 간이 맞았다. 간이 빠지면 맛도 빠진다. 간이 맞으니 돌아온 맛이 밥 수저를 당긴다. 말린 부세나 굴비처럼 꼬릿한 맛은 없지만 나름 씹는 맛에 부세에서 맛 볼 수 없는 고소함도 있다. 부세 맛에 참기름 반의 반 방울 떨어뜨린 정도의 고소함이다. 좀 더 큰 녀석으로 하면 좋겠지만 큰 조기도 없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 손바닥 크기 정도로 정했다. 그래도 한 마리에 몇 천 원 할 듯싶다.  

싱거운 음식이 건강에 좋다 해서 저염이 유행이다. 싱겁게 먹는 게 좋다 이야기한다. 내 생각은 짠 음식은 짜야 한다. 그래야 제맛이 나는 것들이 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짜디 짠 것이 아니라 맛이 나는 정도는 돼야 한다. 최소한의 간이 아니라 맛이 제대로 나는 간이어야 한다. 내 생각이 그렇다. 그 생각대로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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