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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D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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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Dec 23. 2018

품종이 달라지면 맛도 달라진다

콩나물

어릴 적 김장김치가 익을 즈음이면 저녁으로 콩나물 김치죽이 나왔다. 익은 김치나 혹은 따뜻한 곳에 두고 부러 쉬게 만든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끓인 죽이다. 육수는 멸치로 내고 마지막에 소고기맛 조미료로 고기 맛을 더했다.
 
 황해도 출신인 아버지는 경상도 출신인 어머니와 포항에서 신혼을 보내셨다. 17살에 혈혈단신으로 내려오신 탓에 우리 집에서 먹는 방식은 대부분 어머니 고향인 경상도 식이 많았다. 경상도에서는 콩나물 김치죽을 '갱시기죽'. 혹은 '갱죽'이라 한다는 것을 다 커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콩나물 음식이 오롯이 경상도식은 아니었다. 부산이나 대구 이모 집에 가면 콩나물 무침에 고춧가루가 없었지만 우리 집은 있었다. 신혼까지야 경상도에서 보냈지만 그 이후로는 평택이나 인천에서 사시다 보니 이쪽 식으로 바꾸신 듯 싶다. 

어렸을 때는 낯설어서 먹지 않았다. 커서는 오롯이 고소한 콩나물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매콤함이 좀 있어야 콩나물무침 같아 여전히 매콤하게 무친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콩나물 요리를 하기 전에 콩나물 다듬는 게 일이었다. 콩 껍질을 벗겨내고, 잔뿌리를 다듬는 등 가격은 저렴했지만 잔손이 많이 가는 식재료였다. 지금은 콩나물 재배 방법과 육종 기술이 발달해 잔 손질 할 일이 없어졌다.
 
 일정하게 물을 주지 않으면 잔뿌리가 많아진다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오래 일한 기술자의 감각으로 물을 주었다. 집에서는 아침, 저녁 혹은 수시로 물을 줬다. 일정하지 않고, 건조할 때 물을 찾다 보니 잔뿌리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잔뿌리가 있는 것은 없는 것보다 조금 더 질기단다. 콩 껍질은 포장하기 전 세척할 때 제거한다. 
 
 눈발이 날리는 도로를 달려 충남 아산시 인주면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어진고을영농조합법인(이하 어진고을)을 찾아갔다. 8~9년 전 양평의 콩나물 공장을 찾았을 때는 어두운 공장에서 물은 사람이 일일이 뿌려주거나, 아니면 시간에 맞춰 스위치를 켜서 기계로 물을 줬다. 
 
 콩나물 공장을 찾지 않던 사이 수동식은 자동식으로 바뀌었다. 물 주는 시간만 세팅하면 천장에 달린 급수기가 이동하면서 자동으로 물을 뿌린다. 건조할 틈이 없으니 잔뿌리 없는 깔끔한 콩나물이 생산된다. 
 
 콩나물은 말 그대로 콩의 나물이다. 콩을 서너 시간 물에 불리고 스테인리스 채반이 있는 통에 넣고 하루에 몇 번씩 물을 주면 일주일 사이에 콩나물이 된다. 콩나물 콩은 두부나 된장을 만드는 콩보다 작다. 작은 콩이 발아가 더 잘된다고 한다. 
 
 은하, 푸른, 풍산나물, 소록, 보석, 녹채, 장기, 풍원, 호서, 신화, 원흑을 비롯해 근래에 육종한 해원 콩까지 대략 23종이 주요 품종이다. 지역에 따라 품종을 선택해 다양한 브랜드만큼 다양한 콩나물을 생산하고 있다. 
 
 어진고을은 23종의 콩나물 콩 중 풍산나물콩으로 생산하고 있다. 2014년도에 육성한 해원콩을 보급하려 했지만 20년 넘게 재배해 익숙한 풍산나물콩을 농민들이 더 선호한 까닭에 종자 보급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해원콩이 더 고소하다고 판단했지만 생산자들이 손에 익은 작물을 우선시하는 까닭에 포기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품종 바꾸기가 쉽지 않다.
 
 콩나물이 들어가는 음식이 꽤 있다. 콩나물국(밥), 콩나물밥, 콩나물무침은 주인공이고, 비빔밥, 생선찜, 선지해장국, 쫄면 등에서는 조연이다. 콩나물이 든 음식을 먹을 때 간혹 콩 비린내 내지는 풋내가 날 때가 있다. 
 
 비린내는 리폭시디아제(lipoxidase)라는 효소가 콩나물에 있는 지방산을 산화시킬 때 생긴다. 조리 과정에서 생긴 비린내는 팔팔 끓는 물에 삶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비린내가 덜 나게 하는 방법은 높은 온도에서 뚜껑을 닫고 조리하는 방법이다. 콩나물 데칠 때 소금을 한 자밤 넣는 이유가 물의 끓는 온도를 높여서 빠르게 데치기 위함이다. 

어진고을의 생산자가 꼽는 맛있는 콩나물은 초록빛이 도는 오리알태로 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것에 비해 씹었을 때 고소함이 더하다고 한다. 다만 원래부터 초록빛이 도는 콩이기에 콩나물도 푸른 빛이 돌아 소비자가 외면한다고 한다. 
 
 노란 콩나물 대가리에 초록색이 도는 것은 상한 것이 아니다. 빛을 받아 엽록소가 생긴 것이다. 대구의 어느 음식점은 아예 뿌리까지 초록색이 나는 콩나물로 요리를 한다고 한다.
 
 수많은 콩나물 요리 가운데 콩나물밥을 좋아한다. 밥을 짓고 뚜껑을 열면 살짝 비린내가 나지만 이내 사라진다. 매콤하게 양념한 간장에 조금씩 비벼 먹는다. 한꺼번에 비비는 것보다는 조금씩 비벼야 제맛이 난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는 오리알태 콩나물로 밥을 짓고 싶지만 어디 가서 구할지 난감하다. 콩나물은 어디를 가든 똑같은 모양의 노란색을 띠고 있으니 말이다. 
 
 밤에 동네 친환경 매장에 무를 사러 갔다가 무심코 본 콩나물 판매대에 오리알태 콩나물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가움이 밀려들었다. 상상으로는 초록빛이 강할 줄 알았는데, 실제 보니 노란색 바탕에 초록빛이 살짝 돈다.
 
 다음 날 점심으로 콩나물밥을 했다. 뜸 들이는 사이 매콤하게 양념간장을 만들었다. 양념간장을 넣고 비볐다. 생산자의 말처럼 다른 콩나물보다 고소했다. 역시 같은 것이라도 품종이 달라지면 맛이 달라진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콩나물          #어진고을영농조합법인          #오리알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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