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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D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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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Dec 12. 2018

새우젓

새우젓은 조미료다

홍대에 위치한 족발집 미담진족은 다른 곳과 달리 육젓을 족발의 파트너로 낸다. 잘 삶은 족발 위에 새우젓 한 마리. 최고의, 어쩌면 이보다 더 확실한 궁합은 없다. 새우젓에 소화 효소가 많아 족발하고 궁합이 잘 맞아서만이 아니다. 새우젓 맛이 다른 어떤 소스보다 족발 맛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도 새우젓을 낸다. 돼지고기와 새우젓의 궁합은 익히 알려진 바, 순댓국집이나 수육, 족발 파는 식당도 새우젓을 내지만 모양새가 다르다. 육젓이니, 오젓이니 새우젓 종류가 다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식당에서는 흥건한 젓국에 새우가 동동 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육젓, 오젓, 추젓은 새우를 잡는 시기로 나눈 것이다. 음력 5월은 오젓, 6월에 잡히면 육젓, 김장철 가까운 가을에 잡히면 추젓이다. 한겨울에 잡히는 작은 새우로 담근 것은 동백하젓이다. 동백하젓은 추운 시절에 담그는 것이라 염도가 낮다. 나는 시기에 따라 새우젓을 구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나는 새우도 다르다. 
새우젓은 다양한 작은 새우의 집합체다. 젓새우, 그라비새우, 돗대기새우, 밀새우 네 가지 새우가 잡힌다. 3월의 강화도 바다에서 잡히는 새우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밀새우고, 9월에는 젓새우가 가장 많이 잡힌다. 젓새우는 연간 가장 많이 잡히기도 한다. 계절에 따라 새우젓 맛과 크기가 달라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0도 전후에서 오랜동안 숙성을 해야 제맛이 난다.

충청남도 강경, 전라북도 곰소, 인천광역시 소래포구와 강화도 등 이름난 젓갈 단지들이 있다. 김장 때가 되면 새우젓을 사러 전국에서 차가 몰린다. 추젓을 제외하고 나머지 새우젓은 거의 신안 일대 바다에서 난 새우로 담근 젓갈이다. 판매 장소만 다를 뿐 난 곳은 같다. 

오젓이나 육젓이 날 때는 한창 더울 때라 그물 올린 후 선별 작업이 얼추 끝나면 바로 배 위에서 소금을 뿌린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새우와 소금의 비율을 6 : 4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냉장시설이 좋아져 소금량을 절반 정도로 줄였다. 

토굴 젓갈로 유명한 충남 홍성군 광천의 토굴 새우젓도 그 때의 유산이다. 냉장시설이 변변히 없다 보니 일년 내내 10도 전후의 선선한 기온이 새우젓 보관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지금은 염도가 낮아져 토굴에 보관하면 쉬이 상해 냉장 보관을 한다. 토굴에서 숙성하는 걸 고집하면 예전처럼 염도가 높아진다. 토굴 숙성한 새우젓 맛을 보면 몸서리 칠 정도로 짜다.
 
새우젓은 숙성이 중요하다. 1년 정도 묵혀야 제대로 된 맛이 나기 시작한다. 근래에는 1년 넘게 숙성하는 곳이 드물다. 환경이, 바다가 변해 새우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올해에 육젓 드럼통 한 통 가격이 최고 1400만 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싼 것도 10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600만~800만 원 했는데, 새우가 나지 않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격이 뛴 것이다. 뛰는 가격에 새우젓을 숙성하는 기간도 짧아져 몇 개월 이내로 줄었다. 숙성이 길어지면 창고에서 그만큼 돈이 잠기기 때문이다. 시간이 곧 돈이기에 적당히 숙성하고 시장에 낸다. 

1년 넘게 숙성한 새우젓의 젓국은 탁하다. 소금 염도가 높다 해도 여러가지 미생물이 작용해 단백질을 분해한다. 단백질이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는 과정에서 국물은 점점 탁해진다. 새우는 밝은 빛 도는 우유색이다. 충청남도 광천에서 2대에 걸쳐 40년 넘게 새우젓을 생산하는 광천수산 고대영 대표의 말이다. 새우젓 국물이 맑거나 묽다면 숙성이 덜 된 것에 조미액을 따로 넣은 것이란다.
 
새우 젓국은 숙성 과정에서 생긴다. 미생물은 새우의 단백질을 아미노산과 물로 분해한다. 세포액에 있던 액체도 소금의 삼투압 작용으로 밖으로 빠져나온다. 분해과정에서 생긴 것과 삼투압으로 빠져나온 것들이 통을 서서히 채운 게 젓국이다. 젓국은 많이 만들어지지 않아 귀하다. 

어릴 때 수인선(水仁線)을 타고 젓갈 사러 가는 어머니를 따라 소래포구에 가곤 했다. 작은 삼지창으로 주는 덤보다 젓국을 더 달라고 실랑이하던 어머니 모습이 생생히 남아 있다. 비단 어머니뿐만 아니라 젓갈 사러 온 모든 이들이 그랬다. 그만큼 젓국은 새우젓의 정수였기 때문이다. 


순대국밥을 주문하면 젓국이 흥건한 새우젓이 나온다. 새우젓에 조미액을 넣고 젓국의 양을 늘렸기 때문에 넉넉하게 나오는 것이다. 순대국밥을 제대로 하는 곳인지를 보려면 새우젓만 봐도 대략 감을 잡는다. 젓국 없이 새우젓만 나온다면 음식을 제대로 하는 곳이다. 

전북 김제에 순댓국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나름 그 지역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집이었다. 순댓국을 주문하니 이내 음식이 나왔다. 나온 순댓국보다 먼저 새우젓을 봤다. 젓국 없이 통통한 새우젓만 그릇에 담겨 있었다. 새우젓이 그 정도이니 순댓국은 말할 필요없이 맛있었다. 

다른 재료보다 단가가 비싼 새우젓을 제대로 낸다면 다른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몇 해째 젓새우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서해를 마주 보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여서 근래에는 멀리 베트남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원산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소금과 MSG, 물 넣고 양을 늘리지 말고 새우젓을 새우젓답게 내는 것이다.

새우젓을 다져서 넣은 계란찜은 맛 깊이가 다르다

새우젓은 김치의 중요한 발효원이기도 하지만 조미료이기도 하다. 달걀찜을 할 때 다진 새우젓을 넣고 요리하면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 한여름, 애호박에 새우젓을 넣고 끓인 찌개는 더위에 지친 입맛을 달래준다.

한겨울 말린 생선에 무를 넣고 마지막 간을 새우젓으로 하면 시원함은 배가 된다. 수육에 다른 것 없이 잘 삭아 간간한 동백하젓을 올리면 수육 궁극의 맛을 볼 수 있다. 새우젓만 잘 써도 요리가 달라진다.


#오마이뉴스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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