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논지엠오 우유
알람을 오전 2시 30분에 맞췄다. 오랜만에 떠나는 새벽 출장이다. 새벽 출장이 피곤해도 장점이 있다. 서울 양천구에서 아침에 출발하면 숨 막히는 서부간선도로를 뚫고 나가야 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하느님이 도와주시면 40분, 아니면 한 시간이 보통이다. 새벽에 출발하면 톨게이트까지 20분이면 된다.
몇 개의 고속도로를 갈아타니 점촌 IC가 보인다. 시간은 오전 4시가 조금 넘었다. 점촌 시내를 지나 예천으로 빠졌다. 의성사과 산지를 오가던 길이라 내비게이션이 없어도 불편함이 없다. 목장 앞에서 생산자를 기다리는 사이 하늘을 보니 북두칠성이 반갑게 빛난다. 얼마 만에 보는 별인지.
오늘의 목적지는 풀 먹이는 유기농 젖소의 우유 생산지다. 유기농 우유 산지는 꽤 많이 다녔다. 처음 간 곳은 울산의 신우유업. 유기농 우유 초창기 시절에 젖소를 방목하고 착유와 동시에 목장에 있는 유가공 공장에서 우유를 만들었다.
지금은 대기업으로 넘어간 평창의 설목장, 횡성의 범산목장, 그리고 제주도의 이시돌목장 등이었다. 설목장이 대기업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참 많이 다녔다. 눈 오던 날 목장 오르던 중간 길에서 계곡으로 차가 미끄러져 아찔한 경험도 했던 곳이다.
오늘 가는 곳은 앞선 곳보다 후발주자인 '논지엠오 유가공'이다. 말 그대로 젖소에게 먹이는 사료가 100% NON-GMO다. 소는 사료가 아닌 풀을 먹어야 하지만 풀보다는 배합사료를 더 많이 먹는 게 현실이다.
친환경 목장에 들어서면 냄새부터 다르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없다. 소 배설물 냄새가 나지만 인상을 찌푸릴 정도는 아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방목장에 있던 소들이 차례로 착유장에 들어선다. 소들이 놀라서는 안될 상황이라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착유는 새벽에, 그리고 오후 5시에 하루 두 번 한다. 운동하는 오후보다는 오전 착유량이 조금 더 많다. 착유량은 같은 홀스타인종 젖소들과 달리 18kg 정도 나온다. 일반 소들이 30kg 전후 나오니 그에 비하면 50%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옥수수가 들어가 있는 배합사료가 아닌 초지 사료 위주거니와 운동량이 있어 착유량이 많지 않다.
근래에 서울우유에서 한정 판매하는 저지 우유의 착유량 16kg보다 조금 더 많은 정도다. '저지(Jersey)'는 한우와 모양새가 비슷한 누런색을 띠는 영국 출신 젖소다. 착유량은 적지만 진한 맛이 장점이다. 서울 종로에 판매점이 있어 출장 가기 전 날 아침에 가서 우유를 맛봤다. 늘 먹던 흰 우유와 달리 첫맛부터 진했다.
논지엠오 우유는 경북 예천과 상주, 김천에 전용목장이 있다. 세 곳 모두 유기농 인증 농가다. 매일 착유한 것을 경북 문경의 가은 공장에서 가공한다. 우유는 65도에서 30분 저온 살균한다. 저온 살균은 병원성 미생물만 죽이는 살균법이다.
멸균한 우유는 상온 유통이 가능하지만 저온 살균한 우유는 냉장 유통해야만 한다. 우유를 고온에서 살균하면 고소한 맛이 증가한다. 단백질 성질이 변하면 고소한 맛이 난다. 볶은 콩가루가 날콩가루에 없는 고소한 맛이 있는 이유가 열이 단백질 성질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태트라 팩에 든 멸균 우유가 더 고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같다.
논지엠오 우유도 고소하다. 저온 살균한 우유지만 고온 살균한 우유마냥 고소하다. 단, 고온 살균한 우유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느끼함 없이 깔끔하다. 홀스타인 종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사육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우유의 시작은 젖소다. 젖소를 쾌적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원래 먹던 풀만 먹이니 우유 맛이 깔끔할 수밖에 없다.
우유가 남는다고 한다. 시판하는 우유를 맛보면 남는 이유가 더 궁금하지 않게 된다. 저지 우유를 맛보고, 논지엠오 우유를 맛보면 '우유가 참 맛있는 음식이구나' 깨닫는다. 이제는 우유도 맛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까지 체세포, 1등급으로 소비자에게 다가 갈 것인가 고민해봐야 한다.
우유가 영양가 높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우유도 음식이다. 우선 맛이 있어야 한다. 치즈나 요구르트를 생산하는 작은 목장들이 곳곳에 생기고 있다. 작은 목장들이 동네 양조장처럼 개성있는 동네 우유를 생산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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