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론인가? 멜론인가? 가끔 헷갈린다. 멜론, 왠지 최신곡을 내려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메론은 일본식 발음이라 멜론이라 해야 맞다. 멜론은 비쌌다. 70년대생인 필자에게 가격으로는 바나나보다 더 멀게 느껴졌던 과일이 멜론이었다. 멜론의 생과일 맛은 겨우 멜론 맛 아이스크림으로 상상할 정도로 멜론은 오랫동안 고급 과일의 대명사였다.
멜론의 고향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이다. 유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서쪽으로 전해지다가 1956년 처음으로 국내에서 시험 재배했다. 1970년대 후반, 유리 온실에서 본격적으로 멜론 재배를 시작했다. 초장기에 재배한 멜론은 지금처럼 표면에 그물망 무늬가 없었던 멜론이었다. 유리 온실 전용 품종이어서 시설비도 많이 들었거니와 농사 기술도 확립이 안 된 상태라 가격이 비쌌다.
멜론 대중화의 시작은 하우스 재배부터다. 멜론은 표면에 무늬가 없는 것(무네트)과 무늬가 있는 것(네트), 두 가지로 나뉜다. 무네트 멜론은 파파야 멜론과 양구 멜론이 대표적이다. 양구 멜론은 강원도 양구에서 재배를 많이 하기도 하지만 영(young)의 일본식 발음 양그에서 양구로 발음했다고 한다.
표면에 그물망이 촘촘히 있는 익숙한 멜론이 네트 멜론이다. 머스크 멜론이라 하기도 하는데 과육에서 사향(麝香) 냄새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머스크 멜론은 온실 재배보다는 하우스 재배에 적합한 품종이다. 머스크 멜론은 1990년대부터 재배 면적이 넓어지며 가격이 내려가 멜론의 대표 품종이 됐다.
머스크 멜론 일색인 네트 멜론에 새로운 품종이 등장했다. 머스크멜론의 연초록과 연노랑이 섞인 색과 달리 주황색인 캔털루프(Cantaloupe) 멜론이 주인공이다. 캔털루프 멜론은 유럽과 미국에서 많이 재배하는 품종이다. 몇 년 전 경북 칠곡의 장춘농원에서 품종 개발 이후 서서히 주변 지역으로 재배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작년에 우연히 참외의 고장 경북 성주에서 재배한 캔털루프 멜론을 맛봤다. 경북 성주는 참외의 본고장이다. 성주뿐만 아니라 경북에서는 참외 농사를 많이 짓는다. 참외와 멜론은 박(拍)과의 식물이다. 박과 식물로는 호박, 오이도 있다. 꽃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는 참외나 멜론, 박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서로 비슷하다. 멜론이나 참외의 생산성이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호박과 접을 붙이기도 하니 같은 집안이 맞다.
5월부터 멜론의 출하량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작년에 맛본 캔털루프 멜론을 보기 위해 경북 성주의 애란팜을 찾았다. 참외 농사와 멜론 농사를 같이 짓고 있다. 올해 1월에 심은 멜론 수확이 한창이다. 겨울에 심은 멜론은 지주를 세워 넝쿨을 위로 올리지 않고 땅을 기도록 한다. 넝쿨이 자라는 겨우내 동해(冬害)를 막기 위함이다.
여름이 되면 반대로 지주를 세워 넝쿨을 올려 통풍이 잘 되도록 해 고온 피해를 막는다. 겨울과 여름 사이에 재배 방식도 다르지만 품종도 다르다. 겨울은 '알렉상드로' 품종을, 여름은 '알렉스' 품종을 재배한다. 기온이 올라가는 것과 비례에 당도는 높아지고 주황빛은 진해진다.
농장에서 막 딴 멜론을 맛봤다. 참외처럼 단단한 과육에 살짝 호박 향이 났다. 농가에서 올해 접을 붙이지 않고 재배한 것과 비교 시식을 하니 호박 향이 더욱 도드라졌다. 멜론을 며칠 후숙하면 향은 시나브로 사라진다. 멜론은 후숙을 해야 제맛이 난다. 집에서 먹는 멜론이 가끔 맛없는 이유가 후숙을 안 했거나 덜 했기 때문이다. 막 딴 멜론이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멜론이다.
멜론을 고르는 요령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그물망이 촘촘한 것을 고르라는 것인데, 사실 촘촘함 정도라는 게 몇 cm, 몇 mm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사실 구별하기 힘들다. 멜론을 살 때 냉장고에 있는 것보다는 상온에 있는 것을 골라야 한다. 멜론은 냉장고에 보관하면 당도가 시나브로 떨어진다. 먹기 전에 두어 시간 냉장고에 두고 차갑게 보관 후 먹는 것이 좋다. 또 한 가지, 꼭지가 마른 것을 고르는 게 좋다.
꼭지가 생생한 것은 싱싱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당도는 떨어진다. 생생한 것을 골랐다면 집 안 그늘진 곳에 최소 이틀 이상 보관한 다음 먹어야 단맛이 올라 맛있다. 후숙의 정도는 멜론 밑둥을 엄지로 살짝 눌렀을 때 살짝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면 딱 맞다. 조금 더 두면 당도는 더 올라가지만 사각사각한 맛이 약해진다.
새로운 품종의 등장은 새로운 맛의 등장을 의미한다.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새롭게 등장한 캔털루프 멜론을 설명할 때 너무 기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점이다. 베타카로틴이 몇 배, 미네랄 풍부 등 과일 본연의 맛보다는 부가적인 것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캔털루프 멜론은 전에 먹었던 머스크 멜론과 다른 향과 맛이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신품종이 나오면 특정 성분의 기능성을 홍보하기보다는 본연의 맛을 알리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