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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D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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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Nov 02. 2019

사계절 '인천의 맛' - 봄의 맛

두 번째 봄의 맛

식품에 지역 이름이 붙으면 특산품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완도 전복, 기장 멸치, 제주 감귤 등이 그렇다. 특산품 앞에 지역 이름이 붙는 까닭은 생산량이 많고, 오랫동안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장 멸치가 유명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맛있는 멸치가 나지만 사람들은 기장 멸치부터 우선 생각한다.

전라남도 흑산도의 특산품은 홍어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흑산도 홍어의 명성은 자자하다. 흑산도 어판장 경매에 올려지는 홍어 가격 또한 그 이름값만큼 높다. 경매가 끝난 홍어는 배편으로 목포에 도착한 다음 전국으로 팔려 간다. 홍어는 서해를 회유하는 어종으로 흑산도 근해에서만 잡히는 건 아니다.

6월부터 7월 15일 사이의 금어기를 제외하고 홍어는 서해 전역에서 잡힌다. 특히 흑산도와 서해 최북단 대청도 해역이 최대 홍어 어장이다. 명성으로는 흑산도가 '갑'이지만, 어획량으로는 대청도가 '갑'이다. 

대청도에는 홍어를 전문으로 잡는 배가 다섯 척이 있다고 한다. 주낙으로 낚은 홍어 대부분은 인천항으로 보내진 뒤 목포에서 팔린다. 인천에서 홍어 나는 것을 아는 이가 드물고, 찾는 이도 많지 않다. 게다가 인천보다 목포의 시세가 더 좋으니 대부분 목포에서 소비된다. 맛있는 대청도의 봄 홍어는 아는 사람만 먹는 별미다.


인천 신포동, 상호도신포동집은 대청도 수산물로만 안주를 낸다. 신포동집의 홍어회다.

묵은김치, 돼지 수육 그리고 삭힌 홍어의 조합을 흔히 '홍어 삼합(三合)'이라고 부른다. 묵은지의 신맛, 돼지 수육의 묵직한 지방의 맛, 홍어의 톡 쏘는 향에다 차진 살맛이 내는 하모니는 극상의 조합이다. 극상의 조합은 홍어 맛에 빠진 이들에게는 축복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삼합에서 홍어만 빠진 '이합(二合)'일 뿐이다. 



홍어는 냉장 보관하면 썩지 않고 삭는다. 몸에 있는 요소가 숙성과정에서 암모니아로 변해 냄새가 난다. 홍어 하면 코를 자극하는 냄새부터 상상한다. 그 맛에 먹기도 하지만, 흑산도나 대청도에서는 삭힌 홍어를 즐겨 먹지 않는다. 싱싱한 것을 먹어야 제맛이지 뭐하러 삭히냐는 지청구 듣기 십상이다. 



삭히지 않은 생홍어의 씹는 맛은 잘 만든 찹쌀떡이 한나절 정도 지난 정도의 식감이다. 차지게 씹혀도 질겅거리지 않고 쫀득쫀득하다. 초고추장이나 초된장도 좋지만, 오히려 깔끔하게 고춧가루 섞은 소금을 찍어먹는 게 더 낫다. 살과 살 사이에 있는 중후한 지방의 맛과 단맛을 소금의 짠맛이 족집게처럼 끄집어내준다.


 


대청도에서는 겨울과 초봄 사이에 잡은 홍어를 먹을 때 아주 가끔 특별한 과정을 거친 다음 회를 즐긴다고 한다. 홍어 살에 기름이 잘 오른 부위를 회 뜨고 난 다음에 칼로 다이아몬드 모양을 내고 얼음물에 20분 정도 담가두면 회에 꽃이 핀다고 한다. 



찬물에 담갔던 홍어의 물기를 꼭 짠 다음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한다. 여름 것도 괜찮다고 하지만 겨울 지나 초봄 무렵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봄, 대청도에 가서 얼음물에 담갔던 생홍어 회를 먹어볼 요량이다. 



대청도에 가야만 생홍어를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인천시내에서도 맛보고 즐길 수 있다. 수도권 최대 어시장인 인천 종합어시장에도 대청도산(産) 생홍어가 금어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있다. 가격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1kg에 1만 원대라서 다른 횟감보다 저렴하다. 4kg정도면 성인 서너 명이 먹을만한 양이다. 몇만 원으로 여럿이 홍어를 즐길 수 있다.



인원수에 맞은 홍어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부위별로 해체한다. 목포나 나주의 홍어거리처럼 회로 썰어주지는 않는다. 큰 덩어리로 잘라주지만, 칼만 있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회를 뜰 수 있다. 회를 다 떠 주지는 않는 이유는 먹고 남았을 때 보관하기도 편하거니와 손과 칼이 자주 닿을수록 맛이 덜 하기 때문이다.

시세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작은 거 한 마리에 35000원이다. 어른 서너명이 먹고 남는 양이다. 

북서풍이 동풍으로 바뀌면 계절은 본격적으로 봄으로 들어선다. 동풍이 바다를 살랑살랑 흔들면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앞 바다에 까나리가 나타난다. 까나리는 멸치와 비슷한 모양새이지만, 집안이 다른 생선이다. 모래에 알을 낳는 까나리에게는 펄과 모래가 섞여 있는 백령도 근해가 서식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다.

백령도 식당에 가면 밑반찬으로 까나리가 빠지지 않고 나온다


백령도 근해에서 잡힌 까나리는 소금(30%)과 시간을 더해 액젓으로 만든다. 소금은 까나리의 부패를 막고, 맛이 없는(無味) 단백질이나 지방을 맛과 향이 있는 성분으로 변화시킨다. 액젓 숙성의 최소 시간은 6개월이다. 6개월은 까나리 액젓의 맛이 들기 시작하는 시점일 뿐 맛을 완성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적어도 3년은 묵어야 제대로 된 까나리 액젓 맛을 낼 수 있다.


어느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커피처럼 만든 '까나리노'를 마신 출연자들은 하나같이 호들갑을 떨며 까나리노를 뱉어냈다. 병에 든 까나리 액젓의 냄새를 맡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잘 숙성한 까나리 액젓은 역한 냄새 대신 향긋한 바다 내음이 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용한 건 잘 숙성한 액젓이 아니라 식품 공전에 맞게 공장에서 생산한 액젓이다. 게다가 방송을 하기 전 온도가 높은 곳에 오래 두었다면 악취가 나는 게 정상이다. 잘 숙성한 까나리 액젓도 공기와 자주 접촉하면 품질이 떨어진다. 밝고 진한 갈색을 띠던 것이 점차 검게 변하고 향기는 점차 악취에 가까워진다.



김치 담글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젓갈이다. 김장철이면 까나리 액젓을 찾는 이가 많아진다. 젓갈은 김치 발효의 필수품이다. 김치 담글 때 많이 쓰다보니 액젓을 김치 전용 조미료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액젓은 MSG(글루탐산 일나트륨)보다 깊고 깔끔한 감칠맛을 내는 최고의 조미료다. 액젓을 김치 담글 때만 사용한다면, 액젓이 가진 능력 가운데 극히 일부만 활용하는 셈이다. 무침, 볶음, 국물 요리 등 간장이나 조미료를 사용하는 요리에는 액젓을 사용할 수 있다. 간장과 섞어 쓰면 전에 없던 새로운 맛을 낼 수 있다. 

동남아에서 수입하는 피시 소스는 작은 생선에 소금 넣고 숙성하는 과정은 액젓과 같다. 쌀국수의 육수를 만들 때 피시 소스로 맛을 더하듯, 백령도에서 냉면을 먹을 때는 까나리 액젓으로 감칠맛을 더한다. 보통의 냉면집은 테이블 위에 식초, 겨자, 고춧가루 통이 놓여져 있다.



그런데 백령도에서는 세 가지 외에 양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까나리 액젓이 든 통이다. 만드는 방법이나 먹는 것이 비슷해도 피시 소스와 까나리 액젓의 품질은 차이가 난다. 백령도나 대청도에서 만든 까나리 액젓은 원액이지만, 피시 소스는 대부분 희석한 것이다. 희석한 뒤 모자란 맛은 대개 소금과 MSG로 보충한다.



게다가 피시 소스의 숙성 기간은 길어야 18개월이지만, 까나리 액젓은 36개월이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저렴한 까나리 액젓은 피시 소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원액을 병에 담은 백령도산(産) 까나리 액젓은 희석액보다 비싸다. 희석해서 양을 늘리는 순간, 시간이 농축한 맛은 희미해진다.



까나리로 액젓만 담그는 것은 아니다. 작은 까나리는 멸치처럼 삶고 말려서 먹기도 한다. 멸치는 크기에 따라 볶음용, 국물용으로 용도를 구분한다. 까나리는 그냥 볶는다. 백령도 어느 식당에 가든 대개 반찬으로 까나리 볶음을 내준다.



멸치와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까나리가 조금 더 날씬하고 길쭉한 모양새다. 맛도 멸치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멸치는 끝맛이 조금 쓰지만, 까나리는 처음과 끝맛 모두 고소하다. 볶음용으로는 멸치보다 한 수 위다. 살짝 매콤하게 볶아서 덮밥을 하거나 김밥을 말아도 맛있다.



까나리는 사람에게만 맛있는 식재료가 아니다. 까나리는 먹이사슬의 시작점이다. 흔히 '베이트 피시(bate fish)'라고 불리는 큰 물고기의 먹이가 된다. 백령도를 비롯한 대청도, 소청도의 우럭, 농어, 광어, 놀래기가 다른 곳보다 맛있는 이유는 까나리를 잔뜩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밴댕이 회

오뉴월 밴댕이. 밴댕이가 가장 맛나고, 가장 빛나는 때다. 6월이면 초여름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바다는 육지보다 한 달 내지 한 달 보름 정도 계절이 늦기에 바다는 아직까지 봄이다. 6월이라도 바다 수온은 18℃ 안팎. 사람에게는 차가운 수온이지만, 밴댕이에게는 최적의 온도다.



사실 밴댕이는 지역 사투리다. 반지가 표준어다. 흔히 국물 낼 때 쓰는 디포리가 원래는 밴댕이다. 많은 사람이 반지 대신 밴댕이라고 부르면서, 원조 밴댕이는 디포리로 불린다. 군산 지역에서만 유일하게 반지를 반지라고 부르고 있다. 



겨우내 깊은 수심에 머물던 밴댕이는 5월이 되면 기수역(汽水域)으로 몰린다. '기수역'은 큰 하천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을 뜻한다. 풍부한 플랑크톤을 먹으려는 작은 물고기와 이를 쫓는 큰 물고기가 공존하는 건강한 생태계다. 



우리나라를 흐르는 큰 강 끄트머리에는 대부분 하구언(河口堰)이 있다.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강의 끝을 막았다. 낙동강, 금강, 영산강은 하구언을 설치했지만, 한강은 북한과 맞닿아 있어 막을 수 없었다. 한강과 만나는 임진강도 마찬가지다.



한강, 임진강과 서해가 만나는 지점에 기수역이 있다. 강화도도 그렇다. 그래서 넓은 갯벌과 풍부한 먹이가 있는 강화도 해역으로 밴댕이가 몰린다. 5월이 되면 인천이나 김포 대명항에서 출항한 배들까지 밴댕이를 쫓아서 강화도까지 온다.

밴댕이회는 초된장이 가장 어울린다. 물론 '개취'지만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 해안도로를 타고 후포항으로 갔다. 항구라기보다는 작은 포구 정도의 크기인데, 그곳에 '밴댕이 마을'이 있다. 후포항 어판장에는 선장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등을 맞대고 있다. 이름은 어판장이지만 따로 생선을 파는 곳은 없다. 



여럿이라면 신선한 밴댕이를 회, 무침, 튀김으로 내는 코스가 좋지만, 혼자인 탓에 회를 주문했다. 무침은 인천 연안부두 밴댕이 거리나 군산에서 먹어봤기에 고려하지 않았다. 구이나 튀김보다는 밴댕이 맛을 오롯이 즐기기에는 회가 제격이라는 판단도 한몫 했다. 



손바닥만한 밴댕이를 손질한 회가 꽃처럼 피었다. 밴댕이 회를 깻잎에 싸서 초장 대신 막장을 얹어 먹었다. 녹진한 밴댕이 맛을 막장과 깻잎의 향이 잡아 줄 듯 싶었다. 생각한대로 셋의 조합은 잘 어울렸다. 막장의 짠맛을 잡아줄 밥을 더하니 완벽한 맛이었다. 일전에 먹은 밴댕이 무침보다 확실히 밴댕이 맛을 더 잘 음미할 수 있었다.



올라오기 전에 죽어버리는 밴댕이의 급한 성격 탓에 속 좁은 사람을 일컬어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하는 속담처럼, 현지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게 밴댕이 회다. 물론 냉동한 것으로도 회를 내지만, 아무리 냉동기술이 발달해도 현지의 생생한 맛에는 비할 수가 없다.



밴댕이는 7월이 금어기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뼈는 억세지고, 산란한 직후라 맛이 떨어진다. 계절의 맛을 내는 생선이 민어나 방어처럼 특별하거나 비싼 것만 있는 건 아니다. 3만 원짜리 밴댕이 회 한 접시면 아직 봄이 떠나지 않은 바다의 맛을 즐길 수 있다. 



5월과 6월의 밴댕이는 봄 바다 맛을 품고 있다. 계절 맛을 품고 있는 별미다. 계절 별미를 조금 저렴하게 맛보려면 물때를 봐야 한다. 물때는 밀물과 썰물의 시간표다. 밀물과 썰물의 해수면 높이 차가 많이 날수록 밴댕이가 많이 잡힌다. 보통 '사리' 물때라고 한다. 



서해에서 나는 것들을 사러 어판장에 갈 때 미리 물때를 확인하고 가면 좀더 싸게 살 수 있다. 물때는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밴댕이뿐만 아니라 꽃게도 물때를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인천과 강화에는 밴댕이를 전문으로 파는 곳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강화도 후포항과 강화 풍물시장 2층에 밴댕이 전문식당들이 있다. 인천은 종합어시장 근처에 밴댕이 거리가 따로 조성돼 있다. 밴댕이는 오뉴월에 최고의 맛을 낸다.


 


세상에 고급 생선과 저급 생선은 따로 없다. 고급 생선이라는 게 사실 많이 잡히지 않아서 희소성 때문에 비싼 경우가 많다. 비싸다고 맛까지 고급이라는 건 아니다. 오뉴월에는 강화도에서 잡히는 밴댕이가 가격과 관계없이 맛으로는 최고급이다.


전국의 바닷가 근처, 시내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가 바로 바지락 칼국수다. 서해부터 남해의 거제, 부산까지 갯벌이 있는 곳에서는 바지락 조개가 다 나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저마다 제각각 맛을 자랑한다. 알이 굵으면 굵은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맛있다. 



봉지에 든 중국산 바지락도 많이 수입하고 있지만, 시원한 맛이 국내산보다는 부족하다. 아무리 유통 기술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시간에 지나감에 따라 떨어지는 맛은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천 주변의 갯벌은 유명하다. 바닷물이 가장 높을 때와 낮을 때의 차이도 가장 크기에, 물이 빠졌을 때 드러나는 갯벌도 넓다. 인천의 갯벌은 넓어서만 유명한 게 아니라, 갯벌에서 나는 바지락이 맛나기에 유명하다. 바지락 산지가 많지만, 영흥도의 내리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갯벌의 바지락은 일본에 수출할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갯벌 작업을 끝낸 어민들이 타고 온 경운기 안을 들여다보면 바지락이 한가득이다. 바지락은 겉으로 봐서는 차이를 잘 모른다. 맛을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 내리 어촌계는 바지락도 수확하지만, 별도의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바지락 칼국수를 주문하면 실한 바지락이 한가득 들어 있다. 



바지락의 상태를 보면 알이 크든 작든 꽉 차 있다. 그 칼국수 국물에 감칠맛을 내줬는데도 바지락 살을 씹으면 달큼하다. 유통 과정에서 사라졌던 바지락 고유의 맛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미리 예약을 하면 바지락 캐기 체험을 할 수도 있다. 



6월이면 여름의 시작이다. 서해의 6월은 바지락 금어기와 함께 봄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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