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밥맛이 왜 이래?” 올해 18살인 딸아이의 지청구다. 아이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밥 당번은 필자였다. 결혼할 때 집사람에게 한 가지를 약속해줬고, 한 가지를 다짐받았다. 내가 약속한 것은 ‘밥은 내가 한다’였다. 취사병으로 근무했었고, 2002년이나 현재나 여전히 식품 MD가 직업이기에 그리 한다고 했다.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것도, 도와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무엇인가는 해야 하는 게 맞는 듯싶어 가장 잘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대신, 가장 못하는 것을 이실직고하고 면책권을 받았다. 바로 청소다. 나름 청소를 한다고 해도 물건이 공간 이동만 할 뿐 청소는 아니었다. 그래서 지저분하더라도 잔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다. 둘 사이의 약속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하다.
밥을 준비할 때 반찬이 가장 신경이 쓰인다. 매일 끼니를 차리는 사람 누구나 그렇다. “오늘은 뭐 먹지?”는 직장인의 점심시간 고민만은 아니다. 우리 엄마가 그랬고, 옆집 순이 엄마도 그랬다. 물론 지금의 영양사들이 전국에서 그 고민을 하고 있다. 가장 힘든 게 반찬 결정이다. 아침에, 혹은 어제 저녁에 올린 반찬을 또 올리지는 못하기에 잘 해야 본전의 고민을 매일한다. 시장에, 마트에 가봐도 해결책이 딱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렇다 보니 늘어나는 것은 냉동고의 검은 봉지다. 이거다 싶어 한 끼 하고는 냉동에 넣는다. 며칠 지나면 새로운 봉지가 냉동고에 들어온다. 홈쇼핑에서 냉동고 정리템을 팔아도 불투명이 투명으로 변할 뿐이다. 일단 냉동고에 들어가면 잊혀진다. TV만큼 강력한 바보상자가 냉동고다.
직업이 식품을 기획하고 발굴하는 MD인지라 샘플도 많고 시험 삼아 구매해서 식재료가 집에 항상 있다. 식재료가 냉동고에 가득 있어도 그때 먹고 싶은 것은 항상 없기에 여느 주부처럼 장 보러 가곤 했다. 일련의 행동은 비슷해도 한 가지만큼은, 밥만큼은 원칙을 고수했다. 밥은 해두지 않는다는 윈칙 말이다. 원칙에는 기본 전제로 ‘밥상 위의 주인공은 밥’이 깔려 있다.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을 고민한다. 분명 ‘밥’을 위해 반찬을 준비해도 정작 ‘밥’은 고민하지 않는다. 밥을 고민하지 않으니 쌀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도 밥을 위해 잘 생긴 남자 배우가 광고 전면에 있는 밥솥을 두고는 고민한다. 밥에 대한 고민은 다들 거기 까지다.
딸아이에게는 밥을 해줬다. 매일 아침 새로 솥밥을 해줬다. 귀찮을 듯싶지만 사실 딱히 귀찮지는 않다. 쌀 씻어 솥에 담아 약한 불로 밥을 하다가 얼추 밥물이 사라지면 뚜껑 닫고 불을 줄이면 그만이다. 십여 분 있다가 불 끄고 뜸 들이면 밥 짓기 끝이다. 불 조절하는 사이 반찬 한 개만 만든다. 많은 반찬을 준비하지 않는다. 하나의 주 반찬에 모든 공력을 쏟는다. 밥을 먹을 때 골고루 먹으라고 누구나 이야기해도 손이 가는 반찬이 있다. 거기에 구이든, 찜이든 탕이든 주 요리가 맛있으면 곁다리 반찬은 진짜 곁다리가 된다. 살아오면서 그리 했기에 반찬 수에 집착하지 않는다. 밥과 메인 요리 두 가지에 집중하기에 솥밥이 가능하다. 솥밥과 최신식 밥솥 간에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분명 차이가 있다. 기술력으로 가마솥이든, 돌솥의 원리를 흉내 냈을 뿐, 본질까지 기술로 구현한 것은 아니다. 미세한 조정이 필요한 쌀이 있을 때 그 차이는 현격 해진다. 집에서 먹는 쌀은 반 찹쌀계 쌀인 ‘백진주’다. 찹쌀과 멥쌀의 중간 성질의 쌀로 밥만 잘하면 밥이 밥을 부를 정도로 맛있는 쌀이다. 이 쌀 아니면 같은 성질의 밀키퀸이나 골드퀸 3을, 혹은 여주의 진상미로 밥을 한다. 물론 돌솥으로 말이다.
결혼 18년 만에 밥솥을 최신식으로 바꿨다. 출장 가고 없을 때 집사람이 사용하던 것인데 오래되어 밥하고 조금만 지나도 잡내가 났다. 최신식을 산 김에 밥을 몇 번 했다. 처음 한 밥은 물 조절 실패로 망쳤다. 오랫동안 밥을 해도 도구가 바뀌면 손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몇 번 실패한다. 몇 번의 도전 끝에 겨우 맞쳐다고 생각한 어느 날 “밥맛 도저히 못 봐주겠다. 아빠” “왜 맛없어?” “응, 이제 나 컸다고 아무렇게나 먹이는 거야?” “그건 아니고, 저거 최신형인데 별로야?” “응 원래 하더대로 해” “알았어” 쌀은 같은 품종이지만 도구에 따라 쌀이 품고 있는 본연의 맛이 제대로 구현이 안 될 수가 있다. 또는 본연의 맛을 모를 경우는 지금 먹고 있는 밥이 최선일 수도 있다. 딸아이에게 솥밥을 매일 해준 덕에 압력밥솥의 최신 기능은 무용지물이 됐다. 사용하기는 해도 돌솥으로 한 밥이 남았을 때 보온통으로 사용한다.
둘이서 외식할 때도 밥 사랑은 똑같다. 고기가 아무리 맛있어도 밥이 일단 맛있어야 한다. 밥이 맛없는 곳, 특히 스테인리스에 꽉꽉 눌러 담아 숨이 죽은 밥을 주는 곳은 다시는 안 간다. 입버릇처럼 집밥을 그리워하고 밥심을 이야기한다. 밥 먹자 하면서 반찬부터 생각한다. 집에서 밥을 하든 밖에서 먹든 말이다. 밥맛이 좋았던 곳을 생각해보자.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밥상 위의 주인공 밥이 천대받는다. 하지만 우리 집은 아니다. 갓 지은 밥의 향내, 우리 식(食)의 시작이자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