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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an 30. 2021

지극히 미적인 시장_제주 대정

제주의 큰 오일장 중 하나_사진은 한림 앤트러사이트



#지극히미적인시장_48




#제주_대정오일장


지난해 12월에 제주 출장을 다녀오고 한 달도 안 돼 제주 출장이다. 매달 다른 감귤이 나오기에 출장이 잦다. 수확이 끝나는 노지 감귤, 시작하는 레드향이 교차하는 시기가 1월이다. 레드향은 일본에서 육종한 품종이다. 초창기 누군가의 실수로 한라봉과 서지향을 교배했다고 알려졌다. 실제는 서지향에 병감이라는 품종을 교배해 만든 감귤이다. 검증 없이 기사와 글을 쓰다 보니 잘못 알려진 것이 정설처럼 됐다. 이는 한라봉과 천혜향을 교배해 황금향을 만들었다는 기사도 매한가지다. 2005년 일본 에히메현에서 남향과 천초를 교배해 만든 품종으로 정식 명칭은 에히메 28호다. (인터넷에, 신문기사에 있다고 정설은 아니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쓰는 식품 기사가 많다.)

1월에 맛있는 감귤인 레드향, 병감과 서지향을 교배해 만들었다.

제주의 겨울은 바쁘다. 농번기가 따로 없을 정도다. 제주의 서쪽 대정·화순·한림은 양배추, 마늘 농사가 많다. 동쪽은 당근이며, 월동배추나 무, 감자 생산이 많다. 구좌, 조천의 큰 도로변을 벗어나면 당근밭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많다. 수많은 당근밭 중에서 유기농이면서 즙용으로 딱 맞는 당근을 재배하는 곳이 있다. 당근이라는 게 홍당무로도 알려져 무하고 사촌지간으로 오해하기 쉽다. 실상은 미나리 집안이다. 특유의 향은 집안 내력이다. 당근이라는 게 특별히 찾지 않거니와 흔히 상자째로 사지 않지만, 여기 당근은 겨울이 되면 상자째로 산다. 당근이 뭐 맛있어 봤자 당근이지 생각하지만 단맛이 다르다. 당근즙을 마시면 손맛 좋은 이가 설탕이나 시럽을 적절하게 탄 듯한 맛이 난다. 단맛이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 딱 맛있는 맛이 난다. 서울의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던 이가 7년 전에 귀농해서 생산한다. 제주로의 농부여행 010-3378-1929



제주에 있는 시와 읍, 면에는 크기만 다를 뿐 오일장이 선다. 그중에서 제주시, 서귀포시, 구좌읍 세화 그리고 대정읍 네 군데가 크고 볼거리가 많다. 앞선 세 곳은 다녀왔고, 끝으로 대정 오일장을 다녀왔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다른 시장처럼 잡화, 과일, 채소, 곡류, 분식 등 매대 구성은 크기만 다를 뿐 비슷했다. 어물전에도 다른 오일장처럼 사람이 많았다. 슬쩍 지나가며 본 생선의 선도가 좋았다. 모슬포항 바로 옆이라 그런 듯싶었다. 사람들은 부세, 참조기, 옥돔, 갈치, 고등어 등 익히 봐왔던 생선에 관심과 지갑을 열었다. 필자도 어물전에서 지갑을 열었다. 다만 다른 이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는 ‘삼치’를 골랐다. 제주 추자도 근해에서 삼치가 많이 잡힌다. 겨울 삼치의 농후한 지방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불행히도,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생선구이 전문점에서 고등어보다 조금 큰 삼치만 맛본 이들이 많다. 인천의 삼치 골목의 삼치도 크기가 비슷하다. 고등어보다는 크지만 사실은 삼치 새끼다. 제대로 된 삼치 맛을 보려면 적어도 크기가 1m 전후여야 한다.



생선 좌판에 놓인 삼치 선도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눈을 보니 물속에 던지면 낚싯바늘을 피어싱한 채 헤엄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가격은 착함 그 자체였다. 조금 작은 것은 한 마리 1만5000원, 큰 것은 2만원이다. 큰 것 두 마리 무게를 재니 5㎏ 남짓. 그날 갈치 큰 거(약 700~800g) 한 마리가 8만원 정도 했다. 제주 하면 갈치가 유명하다. 가격이 비싸니 당연히 맛있을 거라 생각한다. 50대인 필자에게 고등어, 꽁치, 갈치는 예전에는 반찬용 생선이었다.




갈치가 귀해져 가격이 올랐을 뿐 맛까지 오른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해 삼치는 큰 것이 잡히면 몇 년 전까지 일본으로 수출했다. 국내에는 수출하지 못하는 크기의 삼치만 유통했다. 그나마 여수, 해남, 추자도 등 산지에서만 제대로 된 삼치를 맛볼 수 있었다. 삼치 두 마리를 구이용과 조림용으로 손질하니 대략 어른 손바닥 크기의 16개 토막이 나왔다. 대형 할인점에서 이 정도 삼치를 구경하기도 힘들지만 있어도 두 조각 든 팩 하나에 9000원 내외였다. 갈치 맛만 알았다면 물 좋은 삼치는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시장 볼 때 제철 재료를 알면 좋은 이유다. 큰 삼치의 맛은 보드랍고 고소하다. 겨울 제주 바다가 주는 선물 중에서 가장 맛있는 맛이 아닐까 싶다.

삼겹살에 비계만 있다. 그래도 맛이 좋은 제주 재래돼지다.



흑돼지, 제주에 가면 누구나 먹는 음식이다. 큰 덩어리의 근고기를 불판에 올려 굽고는 짭조름한 ‘멜젓’으로 맛을 더한다. 지방의 농후함과 ‘멜젓’의 감칠맛이 좋아 맛없기 힘든 음식이다. 흑돼지 먹는 대표 방식이다. 제주도 흑돼지 중에서도 제주도에서 관리하는 특별한 흑돼지가 있다.



재래종의 품종 관리를 통해 일부는 연구소에서 관리하고 나머지는 일반 농가에 분양해서 사육을 유도한다. 서귀포시 대정에는 흑돼지를 사육하면서 식당도 운영하는 곳이 있다. 몇 년 전에 제주도에 있는 후배가 알려줘서 사육장도 보고 협재해수욕장 옆 식당에서 맛을 봤었다. 2년 전인가 식당을 찾았다가 만화방으로 바뀌어 낙담했는데 알고 보니 농장 옆으로 식당을 이전한 것을 알고 다시 찾아갔었다. 여기는 보통 고깃집과 달리 부위별 판매가 없다. 앞다리, 목살, 삼겹살을 인원수대로 주문하는 방식이다. 전후 사정을 모르고 고기를 받으면 놀란다. 살보다 비계가 많은 모양새를 보고 말이다. 흑돼지는 13개월 이상 키운다. 그렇게 키워도 무게가 70㎏ 내외다. 6개월이면 130㎏까지 성장하는 백돼지와 아주 다르다. 오래 키우면 배에 지방이 많이 낀다. 삼겹에서 살이 있던 자리를 지방이 차지한다.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 수입을 많이 하지만 삼겹살이 없는 이유도 같다. 지방이 많은 고기에 실망이 앞선다. 입안에 고기를 넣는 순간 실망은 사라진다. 익히 알고 있던 돼지비계의 물컹한 식감과 다른 쫄깃함이 있다. 게다가 쫄깃하게 씹히지만 이내 부드러운 치즈크림처럼 녹으며 내주는 농후한 지방의 맛이 일품이다. 여기는 제주 고깃집이라면 으레 있는 ‘멜젓’은 없다. 고기 자체가 맛있으니 구울 때 뿌린 소금이면 족하다. 맛보면 흑돼지 맛의 기준이 바뀐다. 연리지가든 (064)796-8700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허구한 날 까먹고 공항 입구에서 생각나던 식당이 있었다. 제주의 재료로 제주의 맛을 내는 낭푼밥상이다. 요번 출장길에는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바로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대부분 식재료는 제주에서 난 것들이다.  일부는 외지 것이지만 고기며 채소는 오롯이 제주의 것이다. 주메뉴는 가문 잔치 정식. 제주에서 잔치가 있을 때면 돼지를 잡는다. 돼지 잡을 때 도와준 친척이나 이웃들과 잔치 전날부터 감사 표시를 하며 흥을 돋웠던 전통이 있다. 돼지 잡아 삶은 고기를 나누던 것을 한 상 차림으로 응용했다. 삶은 고기와 순대가 나오고 고기 삶은 육수는 톳과 제주 푸른콩 된장으로 맛을 내 몸국으로 낸다. 몸국은 자극적인 맛이 없어 오히려 심심하다 느낄 정도다. 심심한데 묘한 여운이 있어 수저를 계속 들게 한다.

 따로 주문한 고기국수도 맛있었다. 일 년에 많으면 예닐곱 번, 적으면 네 번 정도 출장 다니는 제주에서 20년 동안 먹어본 고기국수 중 가장 국물이 순했다. 이리저리 치고 다니는 짠맛 없이 간이 적절했다. 제주에서 고기국수를 먹는다면 첫 번째다. 낭푼밥상 (064)799-0005




감귤로 속 채운 ‘상웨빵’



쌀이 귀했던 제주, 대신 밭작물인 보리는 잘 자라기에 보리로 만든 떡이 쌀떡을 대신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밀가루가 더 귀했을 것이다. 원조 밀가루가 들어오고 거친 보릿가루 대신 차진 밀가루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떡은 빵이 되었다. 애월이나 조천에서는 보리빵집이 성업 중이다. 제주에서 감귤꽃이 빨리 피고, 맛 좋은 감귤도 생산하는 효돈에 2017년 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제주 보리떡의 다른 이름인 상웨떡에서 이름을 빌린 상웨빵을 만들어 판매하는 조합이다. 마을 사람들 중심으로 운영과 생산을 한다. 제주시의 보리빵은 팥과 쑥의 유무에 따라 종류가 갈라진다. 하례의 상웨빵의 소로는 팥 대신 감귤과 한라봉을 쓴다. 소가 없는 플레인, 감귤이나 한라봉이 든 것, 쑥 네 가지가 있다. 플레인은 살짝 쪄서 감귤꿀이나 잼을 발라 먹으면 맛있다. 물론 딸기잼도 좋다. 나머지 세 가지는 그 자체로 맛이 있으므로 귤이나 잼이 있으면 더 좋고, 없어도 괜찮다. 제주의 보리빵이 거기서 거기일 거 같지만 다른 맛이 있다. 전화 주문도 가능하다. 하례점빵 (064)767-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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