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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Feb 20. 2021

지극히 미적인 시장_문경

살짝 보이는 봄

#지극히미적인시장 #문경 설날 전에 전라남도 진도와 경상북도 문경 두 곳의 오일장을 다녀왔다. 원래 목적지는 전라남도 진도 한 곳이었다. 1월31일에서 2월1일, 1박2일 일정으로 떠났지만 시장 구경은 못했다. 사전에 확인한 오일장은 1, 6장. 실제는 2, 7장이었다. 평소에는 군청 홈페이지에 있는 정보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움직였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이번만은 그냥 내려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빈손으로 올라오기 뭐해 옆 동네 해남 오일장에서 5㎏ 대(大)삼치를 산 것으로 위안 삼았다. 다시 일정을 잡을까 하다가 경상북도 문경으로 향했다. 

문경의 우유 생산자한테 치즈가 나왔으니 맛보러 오라는 연락에 방향을 튼 것이다. 요새 시·군에 작은 목장형 유가공 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울산, 강원도 평창·원주 정도에나 있었지만 근래에는 군 단위로 하나씩 들어서나 싶을 정도로 많이 생기고 있다. 문경의 우유 생산자도 2000년대 초반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곳과 달리 옥수수가 든 곡물 사료는 먹이지 않는다. 소가 원래 먹었던 풀만 먹인다. 소의 먹이가 자연스럽다 보니 원래 우유의 맛인 고소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우유라는 게 가공할 때 열의 가감에 따라 고소함이 달라진다. 높은 온도에서 가공할수록 고소함이 증가한다. 상온 보관용 멸균우유가 고소한 맛이 나는 이유다. 풀만 먹여 착유한 우유는 고온살균이 아닌 저온살균을 해도 맛 자체가 고소하다. 그런 우유로 만든 치즈가 나왔다 하니 아니 갈 수가 없어 한걸음에 달려가 맛봤다. 찢어 먹는 치즈를 만들기 전 단계인 생치즈 맛은 고소함이 가득했다. 샐러드에 넣으면 환상의 맛을 낼 듯싶었다. 문경에 새로 문을 연 로컬푸드 매장에서 우유와 요구르트를 판매하고 있다. 논지엠오 유가공 070-4238-6716 

지나 가을에 수확한 감잎차, 그 옆은 냉이. 봄과 가을의 공존이다.

한반도의 내륙에 있는 까닭에 문경은 가을에 맛으로 가장 빛난다. 문경의 가을은 사과와 오미자의 붉은빛이 가득하다. 필자의 오일장 취재 일정에도 문경은 올 10월에 갈 생각이었다. 문경에서 나는 사과는 일본에서 육종한 부사 품종이 아닌 국내에서 육종한 감흥 품종이 많다. 사과 파는 곳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에 ‘감흥’이 빠지지 않는 까닭이다. 단단하고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오미자는 문경 시내에서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동로면에서 최초로 재배를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야생에서 채취하던 오미자를 밭으로 옮겨 심은 곳이 동로면이다. 문경 곳곳을 다니다보면 오미자 관련 조형물이 많다. 가을이면 야생 버섯도 많이 나온다. 이런 문경을 가을에 가야 제 맛을 볼 수 있다. 문경읍과 점촌시가 통합하면서 문경시가 됐기에 두 곳에서 규모 있는 오일장이 선다. 그중 시청이 있는 점촌에서 열리는 오일장 규모가 더 크다. 점촌 전통시장 주변에서 열리는 오일장은 설 대목을 앞둔 시장답게 사람이 차고 넘쳤다. 다른 먹거리보다 제수용이 압도적이었다. 

작년 봄에 말려 보관하던 묵나물이 많았다. 보통은 묵나물을 잘 말린 상태로 많이 판매하는데 미리 물에 불려 삶아서 나온 것도 꽤 많았다. 그런 묵나물 사이에서 봄나물, 냉이가 보였다. 봄을 대표하는 나물에 냉이나 달래가 빠지지 않는다. 다만 예전처럼 논두렁 밭두렁에서 조금씩 캐던 것이 아니라 요새는 비닐하우스나 노지 재배를 많이 한다. 장터 골목을 다니다 검은 봉지에서 검불과 냉이를 골라내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재배한 냉이는 크기가 고르고 깔끔하다. 할머니의 냉이는 깔끔함과 거리가 있었다. 할머니 주변의 짐을 봤지만 그 검은 봉지가 다였다. 뒤쪽에 둔 큰 짐에서 조금씩 덜어 파는 이들도 있기에 장터에서 물건 살 때 가끔 주변을 보기도 한다. 사진을 찍고는 한 바퀴 더 돌고 난 다음 사야지 하고는 잊었다. 보통은 바로 산 뒤 맡겨 놓고 돌아다니다 찾아가곤 했었다. 진도부터 문경까지 실수의 연속이었다. 

가끔 의도와 다르게 꼬일 때가 있다. 다음에는 더 철저히 준비하라는 경고인 듯싶다. 백에 하나 ‘우연히’ 들른 식당이 ‘대박’인 경우가 있다. 그런 식당이 문경에만 세 곳이 있다. 문경이 필자하고는 필연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다. 첫 번째 인연은 10년 전이다. 전 직장을 그만두고 선배가 하는 회사에 취업했다. 몇몇이 있는 작은 회사, 신입 환영회 및 야유회를 문경에서 했다. 기나긴 밤을 보내고 다음날 숙소에서 나와 바로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맛보다는 해장이 먼저였기에 식당을 골라 들어갈 여유가 없었다. 고모산성 앞을 지나는 영강 주변에 매운탕 전문식당이 많다. 점촌 시내에도 이름난 식당이 꽤 있을 정도로 문경에는 민물매운탕 식당이 많다. 식당 간판만 보고 들어간 식당도 매운탕이 전문이었다. 민물매운탕은 크게 잡어와 메기, 동자개(빠가사리) 매운탕 세 가지로 나뉜다. 사실 잡어라는 게 맛이 없어 잡어가 아니다. 메기나 동자개처럼 목적‘魚(어)’만 빠졌을 뿐 이런저런 물고기가 들어가 있다. 개인적으로 매운탕은 잡어만 주문한다. 매운탕을 주문하고는 곁다리로 손두부를 추가했는데 그게 대박이었다. 

민물매운탕은 문경의 이름난 곳과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두부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포장 두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콩의 묵직한 질감, 질감 안에 품고 있던 고소함이 씹을수록 맛있었다. 오랜만에 두부 맛을 보러 갔다. 잡어 매운탕 작은 거 하나에 손두부 반 모도 주문했다. 매운탕에는 모래무지며 꺽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 꺽지의 달곰한 살맛은 쏘가리와 동급이다. 매운탕이 끓기 전 두부부터 맛봤다. 같이 간 이의 눈이 커졌다. 이 집 두부 맛이 그렇게 만든다. 강이주는맛집 (054)571-0689 

의성군 다인면의 유기농 사과 농장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문경을 통과한다. 보통은 점촌 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올라타곤 했다. 아주 가끔 문경온천에서 온천욕을 하고 올라가기도 했었다. 점촌에서 문경온천 가는 길에 마성면을 지나고 있었다. 밥때가 살짝 지난 시간이라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올갱이 해장국집과 바로 붙어 있는 중국집이 눈에 띄었다. 잠시지만 느낌상으로 긴 갈등 속에 해장국집을 선택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올갱이에서 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촉이 왔다. 몇 가지 반찬과 해장국이 나왔다. 아욱 넣고 끓인 해장국은 시원함을 넘어 상쾌하기까지 했다. 얼큰한 짬뽕 대신 해장국을 선택한 나의 촉을 마구마구 칭찬하며 한 그릇 뚝딱 비웠다. 

밥 먹으면서 살짝 물으니 남편은 동강에서 다슬기를 잡고 아내는 해장국을 끓이는 완벽한 분업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침 늦게 문을 열고 재료가 떨어지거나 일이 있으면 일찍 문 닫는다. 필자도 오후 늦게 가서 못 먹고 올라온 경험이 몇 번 있다. 이번 출장길에도 문 닫힌 식당 앞에서 되돌아왔다. 점촌 시내에서는 올갱이를 골뱅이라 하기도 한다. 실제는 다슬기가 표준어다. 전국에서 먹어봤지만 필자에게는 이 집이 으뜸이다. 마성식당 (054)572-3963 

문경의 서쪽 가은면에 앞서 이야기한 유기농 우유 공장이 있다. 일을 보고 나오는 길에 마성면을 지나야 한다. 어쩌다 보니 소개한 식당 모두가 마성면이다. 서울로 가는 길은 점촌보다는 문경새재 나들목이 가깝기에 그리 길을 잡는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시기, 도토리묵 집이 눈에 들어왔다. 시기상으로 도토리묵이 가장 맛있는 때다. 이름난 산사나 등산코스 초입의 대표 음식인 도토리묵 제철은 사시사철이다. 제철에 관한 생각은 제로에 가깝지만 실상은 겨울 초입이 가장 맛있다. 도토리 전분이 내는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가장 좋을 때다. 그다음이 김장김치가 얼추 익어 맛이 제자리를 찾을 때다. 이때부터 봄까지 도토리묵밥이 가장 맛있다. 면사무소 근처에 묵밥 전문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시기까지 딱 맞아떨어졌으니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묵과 고명이 올려진, 육수는 따로 내주는 형태였다. 제천에서 원주 넘어갈 때 가끔 먹는 묵집이 있다. 이 집도 이날 이후로 문경에서 괴산 갈 때 가끔 이용하는 집이 됐다. 묵이 맛있는 집이다. 희영이네 (054)571-6785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191630005#csidx132f79e9bfdcf0c8771b80081186d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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