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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May 01. 2021

지극히 미적인 시장_강릉

떠나는 봄. .



#지극히미적인시장_강릉




4월20일 문막, 횡성 휴게소를 지나는 사이 벚꽃은 바람에 꽃잎을 내주고 있었다. 평창과 대관령휴게소 사이에는 어제 핀 듯 벚꽃이 만발했다. 평지보다 계절이 느리게 가는 강원도, 여전히 봄이었다. 대관령 넘어 강릉행이다. 강릉은 요새 커피와 빵으로 인기 만발인 여행지다. 커피 향이 사람을 불러들였고, 빵은 온 사람들을 주저앉혔다. KTX 타고 서울에서 강릉까지 다니는 ‘빵투어’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인기 있는 베이커리가 몰려 있는 중앙시장 주변에서는 주말이면 빵봉지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필자도 작년과 올해 고등학생인 딸아이와 함께 빵투어를 다녔다. 인기 있는 곳을 다 가보지는 못했다. 딸아이의 ‘최애’ 빵은 오징어 먹물 치즈 크림. 맛본 빵 중에서 가장 맛있었고 그것을 먹기 위해 다시 갔었다. 어정쩡한 축제로 사람을 모은 것과 달리 자생으로 생긴 문화이기에 활기가 넘쳤다. 긴 줄에 서보면 그 힘을 느낀다. 억지 스토리와 축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힘이 있다. 이번 출장길에도 딸아이 부탁을 받고 몇 개 사 왔다. 만동제과 (033)922-6387



젊은이들에게 강릉이 빵과 커피의 도시라면, 필자에게 강릉은 나물의 도시다. 식품 MD로 직장생활을 할 때 4월과 5월 사이 강릉을 제법 많이 찾았다. 대관령 아래 동네에 볕이 잘 드는 곳이라면 두릅과 엄나무순 재배하는 농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행객들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고속도로 옆 골짜기마다 농장이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태백산맥을 배경으로 새순을 올린 엄나무의 모습은 참으로 멋졌고, ‘맛’졌다. 강릉 시장을 가면서 내심 다양한 나물을 기대했다. 기대에 걸맞게 취재를 끝낸 필자 손에는 봉지 여러 개가 들려 있었다.



강릉과 이웃한 양양과 동해시에는 커다란 장이 선다. 강릉도 오일장이 크게 열리겠다고 짐작했지만, 강릉은 오일장이 없다. 대신 매일 열리는 중앙시장과 성남시장이 있다. 두 시장 외에도 남대천 변에 매일 새벽 장이 선다. 채소와 과일 그리고 약간의 생선이 있는 작은 시장이지만 제법 재미난 곳이다. 열 시 넘어 도착한 첫날에는 시장이 파하는 중이라 볼 것이 없었다. 다음날 작심하고 새벽 여섯 시경 나갔더니만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오가는 차가 일단 많았다. 작은 시장이다 보니 필요한 물건을 사고는 바로 빠져나갔고 빈 주차 공간은 또 다른 차로 채워졌다. 

 계절인 만큼 나물이 대세. 강릉과 산 너머 진부에서 가져온 두릅과 엄나무순이 대세 중의 대세. 그 사이사이에서 별미인 옻순이며, 오가피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옻순, 오가피순, 엄나무순(일명 개두릅), 두릅, 독활(땅두릅)…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새순 중에서 나름의 순서다. 물론 필자의 취향 순서다. 옻순은 단맛과 쌉싸름함의 조화가 좋다. 나머지는 단맛보다는 쌉싸름함 정도가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두릅의 맛은 오가피순보다 순하고 순하다. 가끔 방송에서 두릅을 산나물의 제왕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실소하곤 한다. 그 산이 아마도 동네 어귀에 있는 동산이 아닐까 상상하면서 말이다. 새순을 사면서 미나리를 빼서는 안 된다. 줄기가 굵은 개량 미나리가 아닌 수변에서 자생해 줄기가 가는 돌미나리는 꼭 사야 하는 나물이다. 데쳐도 좋고 그냥 씻어 고기 쌈으로 먹으면 더 좋다. 새벽시장은 어물전이 거의 없는 편이다. 이웃한 중앙시장 지하에 큰 시장이 있거니와 차로 조금만 가면 주문진 어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시장 구경을 끝내고 주문진으로 향했다. 어시장 구경이다. 오일장이든, 어시장이든 시장을 볼 때 나름의 규칙이 있다. 연재 중인 시장 취재를 위해 2년4개월 다니면서 터득한 체험 규칙이다. 첫째, 가격보다는 신선함이다. 둘째, 가격보다는 물 좋은 것이 먼저다. 초반에 취재 다닐 때는 싼 거 위주로 발품을 팔았다. 소용이 없었다. 가격은 대동소이. 어떤 특정 장터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 같았다. 경험이 쌓여도 발품 파는 것은 여전하다. 단, 목적은 선도 좋은 것을 찾는 것. 같은 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싼 거를 찾으면 그에 맞는 맛을 고른다. 맛을 보고 고르면 가격만큼 맛을 본다. 가끔은 그 이상을 맛보기도 한다. ‘가성비’는 돈 낸 만큼, 돈 값어치를 한다는 의미다.



어물전 구경을 끝내고 몇 가지를 샀다. 조개는 칼조개(정식 명칭은 접시조개)와 현지에서는 ‘째복’이라 부르는 민들조개를 골랐다. 가끔은 비단조개라 부르기도 한다. 동해 조개는 국물이 깔끔하다. 살맛은 쫀득한 것이 서해와 다른 맛을 낸다. 지난번 하동에서 산 우럭조개와는 또 다른 맛이다. 서해, 남해, 동해 각각 다른 조개가 나고 다른 맛을 품고 있다. 봄, 산이 나물을 내준다면 바다는 조개를 내준다. 4월과 5월 사이 조개는 요리 ‘똥손’도 금손으로 만든다. 물 끓이는 것은 누구나 한다. 조개를 끓는 물에 넣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청양고추나 파를 넣는 것은 취향. 조개탕 완성이다. 조개가 알아서 간과 맛을 맞춘다. 그리고 선택한 것은 한치, 정확한 명칭은 화살꼴뚜기. 제주 여름 별미인 한치는 창꼴뚜기다. 한치 몇 마리를 사서 신경만 끊어서 포장했다. 신경은 몸통과 머리 사이에 칼을 넣어서 끊는다. 이렇게 포장하면 그다음 날까지 선도 유지가 가능하다. 어시장에서는 상인이 권하는 것보다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규칙을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새벽시장과 어시장 사이에 아침을 먹었다. 주문진이니 해장국으로 생선탕을 고민하다가 소머리국밥을 선택했다. 이 집을 왜 이제야 왔는지 후회가 들 정도로 맛있었다. 잘 끓인 곰탕 국물을 먹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깔끔했다. 

뚝배기에 든 머릿고기의 양과 맛은 최고 중 최고였다. 뚝배기 속 국물과 고기만 맛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물에 맞게 익은 김치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급이었다. 옆에 놓인 엄나무순 무침이며 미나리도 구색으로 놓인 것이 아니었다. 몇 가지 반찬을 놓고 먹다가 나중에야 고추지가 눈에 들어왔다. 큰 실수였다. 고추지에 반전의 맛이 있었다. 매운 듯 아닌 듯한 맛이 입안을 ‘리셋’했다. 전국을 다니며 먹어본 소머리곰탕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예전 사진을 보면 수육 메뉴도 있었지만 지금은 소머리국밥만 한다. 웬만해서는 글 쓰다가 시장에서 먹은 음식이 생각나지 않지만 이 국밥은 생각이 난다. 깔끔한 국물을 품고 있는 밥 위에 신김치 얹어 우걱우걱 씹는 맛을 상상한다. 머릿고기 한 점 빼면 안 된다. 

침이 고인다. 철뚝 소머리곰탕 (033)662-3747


딸아이는 해물을 거의 먹지 않는다. 비린내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비린내가 없는 초밥도 겨우 코를 막고 맛을 볼 정도다. 남들은 없어 못 먹는 대게나 대하도 입에 대지 않는다. 냄새를 맡지 못한다. 그런 아이와 강릉 여행을 위해 고기 메뉴를 찾다가 발견한 식당이다. 메뉴가 돼지갈비와 껍질만 있다. 식당 메뉴판이 단순할수록 내주는 음식에 공력이 가득 차 있을 확률이 높다. 앞서 소머리국밥처럼 말이다. 연탄 넣을 수 있는 공간과 둥그런 탁자가 붙어 있는 불판 몇 개가 놓여 있는 식당은 서시장 근처에 있다. 주문하는 사이 대학생 또래의 친구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단골인 듯 주문하는 모양새에 거침이 없다. 요즈음 물가에 직접 포를 뜬 돼지갈비 1인분이 1만2000원. 

근처에 산다면 필자도 단골이 되었을 것이다. 돼지갈비 외에 깔리는 찬이 별로 없다. 찬이 없어도 고기만 제대로면 상관없다. 사실 고기가 별로인 곳일수록 찬이 많아진다. 많은 찬을 위해서 고기를 희생시키는 곳도 많다. 구워진 고기를 맛봤다. 단맛이 있어도 여느 돼지갈비처럼 치고 나오지 않았다. 적당히 단맛의 본분을 잘 지키고 있었다. 밥 주문할 때 나오는 된장국은 강원도 막장으로 끓여 검은빛이 돌았지만 제대로 끓인 된장찌개였다. 상추에 고기와 밥을 얹어 먹은 다음 마무리로 막장찌개 한 수저.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고기를 추가 주문한다. “강릉까지 와서 돼지갈비는 무슨 돼지갈비?”하는 사람을 떨구고 가도 될 만큼 맛있다. 대관령돼지갈비 (033)642-4438




#여행자의식탁




#다음주는_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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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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