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첫 주는 진주여야 했다. 오랜만에 진주다. 몇년 전 SBS 요리 예능프로그램 <폼 나게 먹자>를 찍을 때 가보고는 진주에 갈 일이 없었다. 유월 첫 주, 진주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밀 중에서 앉은뱅이밀 때문이었다. 유월은 보리와 밀을 수확하는 시기, 보리는 수확을 시작했고 밀은 여물고 있었다. 앉은뱅이밀은 토종 밀이다.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재배하던 밀로 격동기를 거치면서 잠시 잊혔었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종자를 지켜왔기에 조금씩 조금씩 세상에 퍼지고 있다. 사실 널리 퍼져 있다. 앉은뱅이밀을 모태로 한 밀은 도처에 있다. 한반도에서 가져간 앉은뱅이밀을 개량한 밀은 수확량이 많았다. 기아에 허덕이던 사람들을 해방시킨 것이 앉은뱅이밀의 아들과 손자뻘이다. 밀을 개량한 사람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진주 오일장 가기 전에 경남 진주시 금곡면에 있는 금곡정미소에 들렸다. 몇년 전과 달리 최신식 기계가 들어와 있다. 연구소와 연계한 앉은뱅이밀도 새롭게 심을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밀이니 외국 밀이니 별별 말이 많다. 다른 것보다 우리 밀의 장점을 딱 한 가지만 고르라면 ‘구수함’이다. 우리 밀을 전 국민이 일 년에 몇 번만 사 주면 밀 재배 면적이 많이 늘어날 듯싶다. 그랬으면 좋겠다. 금곡정미소 (055)756-1156
진주 오일장은 2일과 7일에 여는 서부시장 외에도 반성장(3, 8일), 문산시장(4, 9일) 등이 날을 바꿔가며 선다. 서부시장은 시장 자체가 작다. 조그마한 골목 하나 정도 크기지만 오일장이 서면 규모가 커진다. 서부시장과 이웃한 봉곡초등학교 뒤쪽 골목과 대로변에 길게 장이 들어선다. 햇감자가 여기저기서 손님을 붙잡고 있다. 열에 아홉은 수미 감자다. 수미 감자가 맛없는 감자는 아니지만 수많은 감자 품종 중에서 단 하나 품종에 집중되는 것은 좋지 않다. 여름이 깊어지면 백두대간을 따라 다양한 감자가 나온다. 시장 구경은 알면 나름의 재미가 있다. 혹자들은 지저분하다. 또는 신용카드를 안 받는다고 해서 싫어하는 이들도 있다. 우선은 한 바퀴 돌면서 탐색전이다. 돌면서 상품의 상태를 본다. 가격은 거기서 거기. 같은 가격이라도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다. 지난번 부여 오일장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원목과 배지 재배 버섯의 맛과 향이 다르지만, 가격은 같다. 이왕이면 원목으로 고르면 좋다고 했다. 여름 초입, 완두콩을 파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중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시장을 돌다 보면 ‘선수’와 ‘비선수’가 보인다. 물건을 받아서 파는 이들과 재배한 것을 가지고 나온 이들로 말이다. 아주머니는 다른 것은 없고 완두콩만 판매하고 있었다. 비선수, 재배한 이들은 한 가지만 파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파는 게 참 어설프다. 중간 상인들은 돈 계산이라든지, 물건을 봉지에 담아주는 것이 재빠르다. 반면에 이분들은 느릿느릿, 사는 사람의 이런저런 이야기와 참견을 다 받아준다. 가만히 서 있다가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와봐도 여전히 사람이 많다. 한 대야에 3000원. 게다가 덤을 듬뿍 주니 가져 나온 두 포대가 금세 떨어질 듯싶어 얼른 나도 동참했다.
사진을 찍으며 몇 바퀴 돌다 보니 손에 검은 봉지가 몇 개 들려 있다. 아까 산 완두콩, 파란색이 좋아 보이던 제피. 제피는 익으면 검은색 씨가 나온다. 파란색이었을 때 장아찌를 담그면 맛있다. 이 무렵 찾아볼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이 녀석이 나와야 비로소 남도의 여름이 시작된다. 흔히 방아잎이라 이야기하는 배초향이다. 명칭이 어떻든 방아잎은 맛있다. 박하 향 비슷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입맛에는 딱 맞다. 마지막까지 돌다가 판매하는 곳을 찾아서 샀다. 한 묶음에 1000원. 두 묶음을 사서 조금은 전을 부치고 나머지는 무쳐서 잘 먹고 있다. 신용카드가 안 돼 오일장이 불편하다는 사람이 있다. 방아 두 묶음 2000원, 제피 5000원, 완두콩 3000원, 표고 5000원이었다. 1만5000원. 내가 장본 가격이다. 신용카드가 안 돼도 딱히 불편함을 못 느꼈다. 일 년에 몇 번 오일장을 가는지 생각해 보면 더더욱 불편함은 와닿지 않는다.
진주는 냉면이다. 실제 가보면 냉면은 수많은 면 중의 하나일 뿐, 진주 사람들은 면을 좋아한다.
국밥에 나오는 국수 양도 다른 지역보다 많다. 1980~1990년대를 진주에서 보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냉면에 대한 기억은 없다.
1980~1990년대가 아닌 80~90대 어르신들 정도 돼야 겨우 젊은 시절의 진주냉면을 기억할 정도다. 진주는 국수다. 동네마다 국숫집이다. 시장에 가봐도 국숫집이다. 다른 동네는 잔치국수지만 진주에서는 물국수다. ‘디포리’와 멸치 육수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면을 만다. 집마다 조금씩 고명이 달라질 뿐이다. 진주 출신 PD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고기 볶은 것도 올린다고 하니 된장, 고추장처럼 집마다 맛이 달랐을 듯싶다. 그런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이니 물국수도 찬 거, 더운 거 구별해서 먹는다. 진주 하대동에 국수이야기가 있다. 저마다 특징이 있는 맛을 자랑하는 진주지만 특별히 여기로 간 까닭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운영하는 점방이기 때문이다. 진주 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한다. 모인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동네 사람들 소통하는 사랑방 역할이 가장 크게 보였다. 바삐 사는 도회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소통이 아니겠나 싶다. 음식을 주문했다. 선수들이 아니다 보니 늦다. 아주머니 몇분이 이래저래 분주히 움직여도 아마추어는 아마추어. 물국수에 땡초김밥을 주문했다. 진주에서는 국숫집에서 김밥이나 수제비도 같이 판매한다. 면이라는 게 충분히 먹었다 싶어도 이내 배가 꺼진다. 김밥이 있으니 그만큼 든든하다. 국수이야기 070-8685-2221
몇년 전이었다. 아는 형님과 진주 출장을 갔었다. 무슨 일이었는지 딱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가지만은 기억이 또렷했다. 그때 먹었던 아귀 수육은 어제 먹은 듯 생생했다. 작년 가을에 김천 오일장에서 복국 비빔밥을 먹으면서 왠지 낯설지 않았었다. 어디선가 먹어 본 듯한 기억이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출장길에 진주에서 복국을 마주하니 그제야 살아났다. 술을 마시면서 경험했던 것은 술을 마실 때 생생하게 기억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가 그렇다. 복국을 먹었지만, 술과 함께 먹었기에 복국을 먹는 방법에 대한 기억을 잠시 잊었다. 복국 먹는 방법이 경북 김천하고 같다. 다만 다른 게 김천은 매운탕이었고 여기는 맑은 탕이었다. 탕이 나올 때 비빔그릇이 같이 나온다. 콩나물을 덜어서 비비면 된다. 복국에 같이 먹는 소스가 특이하다. 마늘을 갈아서 만든 소스로 새콤한 맛이 괜찮다. 진짜 중요한 것은 아귀 수육. 아귀찜은 자주 먹지만 아귀 수육은 파는 곳이 드물다. 다만 바다와 가까운 곳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말이다. 아귀 수육의 화룡점정은 ‘간’. 입에 넣으면 녹아 사라지지만 여운이 몹시도 길다. 진득하고 녹진한 맛이 입안 가득하다. 소주 한 잔은 여운이 가실 때쯤 넣어야 한다. 간을 넣고 바로 소주 한 잔 털어 넣으면 음미할 시간이 없다. 그다음이 내장, 살이 가장 맛없다. 하동집(하동복집) (055)741-1410
지역에 내려갈 때 로컬푸드로 요리하는 곳을 찾는다. 로컬매장도 빠짐없이 찾아간다. 전북 완주와 경기 김포의 성공 이후 많은 곳에서 로컬푸드를 따라 했다. 검색해 보니 진주시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어 찾았다. 점심 먹을 생각으로 찾아갔지만 문 닫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분명 시청 홈페이지에서도 영업 안내가 되어 있었다. 각 지자체나 농협에서 로컬푸드와 관련된 사업을 많이 한다. 문을 열 때 자료는 많다. 워낙 보도자료를 많이 뿌리니 말이다. 하지만 사업 진행과 관련해서는 개업 다음날부터 관심이 없다. 매출은 시나브로 적어진다. 종국에는 문을 닫는다. 누군가가 잘했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 벤치마킹이라는 게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들으며 개선하라는 의미다. 몇 군데 빼놓고는 로컬푸드가 그냥 사진을 찍는 용도이거나 농협 하나로마트의 번듯한 건물을 짓는 데만 도움이 되는 듯싶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travel/national/article/202106111621005#csidx1083709cb750cdf8e3e9dcccb72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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