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충청북도 옥천, 일 년에 서너 차례 출장을 다니던 곳이다. 옥천은 포도와 복숭아가 많이 난다. 옻 또한 특구로 지정된 곳이다. 옻닭을 끓이면 참 맛있는데 ‘옻오른다’는 알레르기 반응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옻오르지 않는 제품이 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우루시올(Urushiol)을 제거한 것으로 액 또는 티백으로 나오고 있다. 옻에서 성분 하나를 빼내는 사이 맛이 빠지는지, ‘옻오르지 않는’ 상품을 먹으면 필자는 조금 심심하다.
6월15일, 옥천장은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올해도 작년처럼 비가 잦다. 이제는 더 장마라 부르기 힘들 정도다. 그냥 ‘우기’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 오는 날은 시작부터 파장 분위기다. 옥천을 가로질러 가는 금구천 둑을 따라 장은 섰지만 오가는 이가 적다. 오는 정이 없기에 파는 이의 흥만으로는 흥정이 채워지지 않는다. 게다가 비가 오면 주변 마을에서 이것저것 팔러 나오는 할매들이 나오지 않는다. 구경거리조차 없어진다. 그래도 시장을 돌아다녀 본다. 계절이 초여름. 채소나 과일이 어설프다. 모양은 비슷할지언정 맛은 아직이다.
뚝방을 걸어 옥천시장까지 걸었다. 몇 분 채 안 된다. 옥천시장 대로변에 몇몇이 모여 있었다. 파는 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런저런 사정 이야기에 대꾸하는 모양새를 보니 장 설 때마다 만나 속사정을 알고 있는 이들 같았다. 그중에서 할매 한 분의 바구니에 눈이 갔다. 빛깔 좋은 다슬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제 동네 어귀 하천에서 채취했다고 한다. 옥천은 금강 상류에 있어 물 깨끗한 하천이 많다. 지갑을 열까 말까 하다가 열지 않았다. 사는 거야 사지만 나중에 삶고 깔 생각을 하니 갑갑함이 밀려왔다.
두어 바퀴 돌았다. 닭집이 그나마 사람이 있었다. 가만히 쳐다보니 원산지 표시나 축종 표시가 깔끔했다. 토종닭은 토종닭으로, 폐계는 폐계로 표시했다. 가격도 적당했다. 폐계라는 게 버리는 닭이 아니다. 노계라고도 하는데, 사실 20년 가까이 사는 닭을 두고 2년 조금 넘은 것을 노계라 하는 것도 우습다. 노계는 우선 압력솥에 삶아야 한다. 푹 삶으면 질김은 사라지고 탄력만 남는다. 수원이나 평택 등 예전에 산란계 농장이 있었던 곳은 여전히 폐계를 먹는 문화가 남아 있다. 가격이 저렴하고 맛 또한 육계하고는 다른 맛이 있다. 내 입맛에는 노계가 훨씬 맛있다. 옥천장은 여름부터 가을까지가 재미날 듯싶다. 채소나 과일이 한창 쏟아질 때 말이다. 비 오는 옥천장을 뒤로하고 이원면으로 향했다. 장날 구경도 목적이 있었지만, 이원면에서 볼 일 또한 중요한 목적이었다.
이원면, 대성산 아래 유기농 복숭아 농원과 90년이 넘은 양조장이 있다. 면 소재지에서 샛길 따라 대성산 자락으로 올라가다 보면 유기농 복숭아 농원이 나온다. 필자와의 인연은 2012년부터다. 다른 농사도 그렇지만 유기농 농사는 참으로 힘들다. 특히 여름에 나오는 작물들은 벌레와 곰팡이와의 싸움이다. 게다가 요새는 멧돼지까지 더해져 더더욱 힘들어진 농사다. 복숭아는 수천 품종이 있다. 백도, 황도, 천도 세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색으로 구분 지은 원초적 분류일 뿐이다. 수천 품종이 일주일 간격으로 쏟아진다. ‘햇사레’ 등 공동 브랜드로 출하하는 제품은 품종은 바뀌어도 상자는 같은 것을 쓴다. 어제 먹은 복숭아 품종은 내년 이맘때 다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바뀐다.
유기농 농장에 가면 땅을 밟아 본다. 살짝 눌렸던 땅은 이내 돌아와 제자리를 찾는다. 땅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반면에 제초제와 비료가 가득한 땅은 운동장처럼 딱딱하다. 주변의 풀도 누렇게 떠 있다. 벌레는 풀과 함께 산다. 벌레가 사는 집을 제초제로 없애버리면 갈 곳은 나무다. 나무에 벌레가 모이면 벌레 쫓는 농약을 뿌린다. 악순환이다. 풀을 베어 버리고 벌레는 손으로 잡아서 키운 복숭아는 크기가 옹골차다. 정도령복숭아 010-5491-5769
복숭아 농원을 나오면 면사무소 근처에 양조장이 있다. 금강 변에 있다가 옮겨 올 때부터 있던 우물이 있다. 수돗물을 쓰지 않으면6개월마다 수질 검사를 받는다. 여전히 물맛이 좋아 현역을 유지 중이다. 이원 양조장은 4대 90년 동안 유지 중이다. 쌀은 자가 재배한 쌀과 보은 등 이웃한 곳의 것을 쓴다고 한다. 밀은 우리 밀을 수매해 직접 누룩을 띄운 것과 종국(발효제)을 같이 사용한다. 아스파탐을 넣은 것과 넣지 않은 것 두 가지가 있다. 인공 감미료를 넣지 않은 신맛이 도드라진다. 도드라진 신맛에서 여러 가지 향이 나온다. 인공 감미료를 넣는 이유는 신맛을 지우기 위해서지만 그런 과정에서 향 또한 지워진다. 단맛이 모든 맛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증류주도 있어 38도짜리 두 병을 사 왔다. 밀 막걸리는 진작 사라졌고 소주는 아직 냉장고에 있다. 이원 양조장 (043)732-2177
6월은 보리밥 먹기 딱 좋은 계절이다. 곡식이든 채소든 묵은 것보다야 햇것이 맛있다. 특히 곡식은 추수할 때의 맛이 ‘100’이라면 시간에 따라 맛이 떨어진다. 보리밥 정식 8000원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찬이 나온다. 보통은 이렇게 나오는 곳의 반찬 수준이 쪽수 채우기 위해 나오는 것이 대부분. 여긴 달랐다. 반찬 하나하나 공력이 남달랐다. 여러 가지 나물을 올리고 고추장을 넣는다. 같이 나온 찌개 한 국자 넣는다. 보리(비빔)밥 제조 방법이다. 꼬들꼬들 씹히는 보리밥이 일품이다. 적당히 익은 열무김치 또한 예술이다.
보리밥에 같이 넣을까 하다가 그냥 먹기로 했다. 너무 맛있기에 다른 맛과 섞이면 안 될 듯싶었다. 열무김치 맛을 보니 열무국수 또한 맛이 보통을 넘을 듯하다. 11시 조금 넘어서 식당에 들어갔다. 음식이 나올 때 즈음 자리가 얼추 찰 정도로 동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얼룩배기보리밥 (043)731-1121
우리나라에서 키우는 소는 한우, 육우, 젖소로 나뉜다. 육우는 고기를 먹기 위해 키운 소다. 사실 산란계, 육계, 젖소, 육우는 사람들이 편리를 위해 구분 지었을 뿐, 절대법이 아니다. 산란계를 먹어도 된다. 젖소도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다만, 구분은 정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젖소는 젖을 오랫동안 짠 소다. 고기가 질겨 탕용이나 다져서 가공용으로 쓴다. 육우는 쉽게 말해 젖소의 수컷이다. 수컷 젖소는 자라면서 하는 것이라고 사료 축내는 일밖에 없다. 암컷 임신은 냉동 정자로 하니 말이다. 수컷 젖소는 송아지 시절에 거세한다. 거세한 젖소 수컷이 육우다. 키우는 방식은 한우와 같다. 다만 24개월이 지나면 도축한다. 마블링을 위해 특별한 사육도 하지 않기에 등급이 낮다. 등급은 낮지만 고기를 먹어보면 전혀 질김이 없다. 고기가 빨간색으로 보여도 눈에 보이지 않은 지방을 품고 있다. 숨은 지방이 열에 녹아 나와 윤활 역할을 충분히 한다. 마블링이 많은 고기를 먹은 다음날은 속이 조금 불편했다. 입안과 배 속에 기름이 돌아다니는 듯 조금 부대낀다. 마블링이 적은 고기는 다음날이 편안하다. 안창살과 등심을 구웠다. 나온 기름장 대신 따로 소금만 청했다. 참기름 장이라고 알고 있지만 콩이나 옥수수기름에 향만 더한 것이지 참기름이 아니다. 소고기에는 원래 기름이 있다. 굳이 콩이나 옥수수기름을 더해 먹을 이유가 없다. 광촌목장식당 (043)733-6535
몇 년 전이었다. 옥천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중식당이 구읍 쪽에 있었다. 출장을 끝내고 일부러 밥 먹으러 갔다. 민물새우 넣고 얼큰하게 끓인 수제비 전문점이 원래 목적지인 식당 바로 옆에 영업 중이었다. 짬뽕과 수제비 사이에서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수제비를 선택했었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시원함과 칼칼함이 공존하는 국물에 수제비 먹는 맛이 그만이었다. 이번 출장길에도 수제비 먹을 생각에 들떴지만 못 먹었다. 어떤 이유인 줄 모르겠지만 문 닫은 지 오래. 하나의 음식이 사진과 기억으로만 남았다. 모든 게 좋았지만 아쉬움이 남는 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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