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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Jul 24. 2021

지극히 미적인 시장_정선


#지극히미적인시장_정선


#벌써_60번째




여름이 깊어지면 내 고민도 깊어진다. 어디로 갈까에 대한 고민이다. 출장지를 정할 때 그 시기 맛이 가장 빛나는 지역을 우선으로 선택한다. 여름에 빛나는 곳은 강원도뿐이다. 햇수로 3년 출장이다 보니 강원도가 바닥나고 있다. 아직 가야 할 장터가 오십 곳이나 남았는데도 말이다. 같은 강원도라고 하더라도 영서와 영동이 다르다. 한여름은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는 곳이 좋고, 겨울과 봄은 바닷가에서 맛난 것이 많이 난다. 지난 회차 태백에 이어 정선이다. 정선도 태백 못지않게 고지대다. 

동강의 한반도 지형을 내려다볼 수 있는 병방치의 높이가 600m. 차로 2분이면 올라갈 정도로 읍내가 고지대에 있다. 그 덕에 하느님이 제습기를 틀어 놓은 듯, 후덥지근한 도시 날씨와 달리 여행하기 쾌적, 그 자체였다.


동강은 정선을 가로지르며 흐른다. 읍내 서쪽에 아리랑시장이 있다. 아리랑 열차가 서는 정선역은 동쪽에 있다. 아리랑 열차는 정선 오일장의 동맥 같은 역할을 20년 넘게 하고 있다. 아리랑 열차를 운영하면서 시장에 활기가 돌았다. 아리랑 열차는 청량리를 출발해 아우라지역까지 운행한다. 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정선 일대를 구경한다. 당일치기 여행으로 딱 맞다. 2와 7일이 달력에 있는 날 장이 선다.



아침 일찍 장터에 나섰다. 열십자 모양의 장터, 상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손님이 많지 않았다. 시장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열차 타고 온 이들이다. 사람이 흘러넘치니 여기저기서 흥정이 오간다. 정선군 고한에서 민둥산을 넘어 화암면으로, 정선읍으로 왔었다. 산과 밭이 연속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작물은 옥수수와 감자였다. 중간중간 고추밭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7월, 정선 시장의 대세는 옥수수. 시장 곳곳에서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옥수수는 수확하는 순간부터 열을 낸다. 갓 수확한 옥수수 알갱이 속은 액체다. 알갱이를 따서 콕 누르면 터진다. 그냥 먹어도 과일 이상으로 단맛이 좋다. 수확하고 시간이 흐르면 액체는 점점 고체가 된다. 당이 전분으로 바뀐다. 전분으로 바뀌면 더는 열이 나지 않는다. 한창 전분으로 전환되고 있는 옥수수를 만져 보면 뜨끈뜨끈하다. 수확한 옥수수를 망에 넣는 이유이기도 하다. 갓 수확한 옥수수는 사카린을 넣지 않아도 청량한 단맛이 난다. 끝맛이 찝찝한 사카린의 단맛하고는 다른 맛이 있다. 옥수수 중에서 당이 전분으로 변하지 않는 옥수수가 있다. 

초당 옥수수로 부르는 녀석이 그렇다. 초당 옥수수는 당을 전분으로 바꾸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 생으로 먹거나 살짝 얼려 먹으면 맛있는 옥수수가 초당 옥수수다. 통조림에 들어가는 옥수수로 맛을 위해 저장성을 포기한 품종이다.



여름에 강원도 오일장을 가면서 혹시 토종 자두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재작년 영월에서, 작년 진부에서 토종 자두를 맛봤다. 혹시 정선에도? 장터 구경을 하다보니 산딸기 포장 상자에 담긴 자두가 있었다. 자두는 일제강점기에 들여온 품종. 자생하던 것을 우리는 오얏이라 했다. 개량한 것보다 신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하나 먹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게 되지만 탄탄한 단맛이 이내 풀어준다. 실제로 맛을 보면 매력이 ‘쩐다’. “오얏 이거 얼마예요?” 물으니 “그거 고얏이에요” 한다. 고얏은 오얏의 강원도 사투리다. 몇 해 전 자료조사를 하다가 신문에서 정선 산골 깊숙한 곳에서 자생하는 고얏나무에 대한 기사를 봤었다. 그 덕에 고얏이라고 해도 철석같이 오얏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 상자 사서 같이 간 이와 나눠 먹었다. 고얏 하나를 맛본 이가 바로 돌아서서 한 상자를 더 샀다. 단맛은 개량한 자두에 비해 모자라다. 하지만 탄탄한 단맛 위에서 춤을 추는 신맛의 강렬한 맛이 고얏, 토종 자두의 매력이다. 여름에 강원도 장터에 간다면 꼭 한번 찾아보길 권한다. 장터의 재미가 하나 더 늘 것이다.

정선 출장은 1박2일 코스였다. 서울에서 출발해 목적지는 하이원 리조트였다. 제천을 나와 영월을 지나 드디어 고한. 고한 읍내의 수많은 맛집을 지나 리조트에 올라가 짬뽕을 주문했다. 맞다. 짬뽕을 먹기 위해 거기까지 갔다. 2년 전, 아는 이를 통해 리조트에서 일하는 이를 소개받은 적이 있다. 삼척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러 맛을 봤다. 국물이 일단 깔끔했다. 맛있다고 하는 곳에서 먹는 짬뽕 하고는 국물의 격이 달랐다. 국물 끝에 남는 들쩍지근함이 없어 좋았다. 잘 볶아낸 건더기와 국물, 면이 잘 어울렸다. 짬뽕이 갖추어야 할 맛이 한 그릇에 온전히 담겨 있었다. 동행한테 짬뽕 먹으러 간다고 하니 “거까지?”라고 하더니, 먹고 나서 돌아올 때는 “갈 만하네”로 바뀌었다. 가격은 1만6000원으로 비싸다. 시중에서도 차돌박이 짬뽕은 1만원이 훌쩍 넘는다. 리조트에서 주문한 짬뽕도 차돌박이가 듬뿍 들어간 해물짬뽕이었다. 맛까지 고려한다면 전혀 비싸지 않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주문 가능하다. 하이랜드 (033)590-7155



강원도를 여행하다 보면 냉면집을 간혹 만난다. 서울식 평양냉면에 익숙한 이들은 간혹 이런 모양새의 냉면을 아류라 이야기한다. 맛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할 때 범하는 오류다. 수많은 막국수 식당 중에서 나름의 맛을 자랑하는 곳이 많다. 강원도를 다니면서 막국수는 간혹 먹는다. 다니다가 전문점이라 쓰여 있으면 들어가서 먹는다. 막국수라는 게 막 먹기 편한 음식. 맛을 가려가며 줄 서서 먹을 음식은 아니다. 전분과 메밀 함량이 5 대 5 정도로 쫄깃한 면이 시원한 육수에 담겨 나온다. 정선에도 그러한 곳이 있다. 양평의 옥천냉면, 안성의 우정집과 비슷한 육수와 면발이다. 사실 이 집은 소머리수육에 소주 한잔하기 딱 좋은 곳이다. 보통은 불고기, 수육이나 편육에 냉면 조합을 최고로 친다. 

여기는 다른 것은 없고 소머리수육에 냉면 조합이 좋다. 이건 어디까지나 외지인의 조합. 소주 한잔하면서 주변을 보니 현지인들은 오리불고기나 백숙에 냉면 조합이다. 정선 시내를 다니다 보니 오래된 매운탕 집임에도 메뉴에 오리불고기와 백숙이 들어가 있었다. 정선 국일관 (033)562-3076


강원도는 산세가 험하다. 다른 지역보다 햇빛을 덜 받는다. 그러한 사정으로 쌀도 조생종을 심는다. 오대벼라는 게 그런 조생종 벼 품종이다. 산비탈에 여름 한 철 심을 수 있는 것은 옥수수. 그래서 옥수수를 많이 심는다. 찰옥수수를 심어 쌀과 함께 밥을 지었다. 부족하면 거기에 넣었던 것이 나물, 곤드레. 어려웠던 시절에 궁핍함을 해결했던 삶의 비결이 현재는 별미로 관광 상품이 됐다. 정선 시장에는 곤드레 비빔밥, 메밀전병 파는 곳이 많았다. 그런 곳을 뒤로하고 역사를 예쁘게 꾸민, 밤이면 별이 쏟아지는 나전역으로 갔다. 옥수수와 황기를 삶아 육수를 내고는 찰옥수수 알이 듬뿍 들어간 삼계탕을 내는 식당을 찾아갔다. 탄광이 사라진 곳은 희미한 흑백사진처럼 옛날의 영화가 흔적으로 남아 있다. 나전역도 영화가 사라지고 쇠퇴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가운데 밥집 한 곳이 사람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삼계탕을 주문하니 시간이 꽤 걸렸다. 패스트푸드처럼 후다닥 나오는 게 삼계탕인데 조금은 달랐다. 나온 삼계탕을 보니 옥수수 알갱이가 생각보다 적었다. 원래 이런가 싶었다가 나중에 물어보니 사정이 있었다. 새로 옥수수를 삶고 있어서 옥수수 대신 찹쌀을 더 넣었다고 한다. 삼계탕이나 백숙 끓일 때 녹두를 많이 넣는다. 차분한 맛이 찹쌀과 잘 어울린다. 찰옥수수는 찹쌀밥과 달리 튄다. 씹는 맛이 있다. 제대로 들어간 것을 맛봤다면 좋았겠지만 나름 괜찮은 맛이었다. 식당 찾아오는 이들을 성심껏 모시겠다는 생각으로 밥집 이름이 옹(翁)이밥상이다. (033)563-8200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032&aid=0003087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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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여행 #정선여행 #정선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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