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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Mar 06. 2022

강진에서 피해야 할 음식, 한정식

강진을 가면서 한정식은 피할 생각이었다. 정식이라는 게 일본에서 유래한, 그래서 ‘한국+정식’을 줄여 한정식이라 부르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디를 가나 한정식이 고유 음식처럼 되었다. 고기, 회, 보리굴비 등 몇 가지 주 메뉴에 전, 나물, 장아찌가 상을 채우고도 남아 위에 2층에 쌓는 한정식도 있다. 가짓수가 많아서 먹을 게 많아 보이지만 정작 젓가락 가는 찬은 한정되어 있다. 먹고 나면 안 먹은 반찬이 더 많다. 가짓수에 집착하다 보니 음식에서성의는 빠진다. 그런 음식으로 채운 것이 한정식이다. 마량항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오후 4시에 문을 닫았다. 읍내에 있는 한정식 식당으로 갔다. 한정식 식당으로 간 이유는 내 자료 사진 중에 유독 한정식 사진만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목적 때문에 갔고, 목적만 달성한 채 돌아왔다. 대략 스무 가지 찬이 나왔다. 나온 생선회 모습이 가관이었다. 보통의 회라면 한 점 크기, 이것을 4개로 잘라 나왔다. 삼합도, 돼지불고기도 작았다. 양이 작은 것이 아니라 채운 내용물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공깃밥을 여니 딱 2분의 1만큼 채워진 떡진 밥이 담겨 있었다. 인당 3만원 식사비에 극단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식당이었다. 크기가 작고, 크고를 떠나 가장 중요한 간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성의가 빠진 음식, 그게 바로 한정식이다. 블로거, 유튜버, 여행작가, 기자들이 군청에서 초청한 팸투어를 떠난다. 공무원과 함께 하는 한정식은 잘 나온다. 그들이 홍보한 것을 보고, 먹으러 온 사람들은 욕하면서 나온다. 사진과 실제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날의 일행 또한 팸투어로 강진에서 한정식을 두어 차례 먹어 본 이다. 

기름 흥건한 잡채가 강진 한정식.. 전부는 아니겠지만 .............

‘강진 1미(味)’로 강진 한정식을 자랑하기 전에 제대로 나온지부터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대로라면 강진에서 피해야 할 음식 1미가 한정식이다. 찬 숫자를 줄이고 성의를 더하지 않는다면 확정이다.


과하지 않은 찬과 주요리에 집중한 돼지불고기.. 전라도의 맛을 제대로 느낄수 있었다.

기사 식당의 주 메뉴 중 하나가 돼지불백. 전국을 다니다 보면 흔히 만날 수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간장, 고추장, 된장 등 어느 장에 양념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달짝지근하거나, 매콤하거나 또는 구수하거나 셋 중 하나다. 바로 구워낸 돼지불고기의 향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몇 해 전인가. EBS <한국기행>에 강진이 나왔다. 그중 병영면 편에서 나온 불고기집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 가는 식당으로 장이 서든 안 서든 매일 문을 여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보면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는 돼지불고기 하나, 나오는 찬도 화려함 없이 수수했다. 강진에서 출발하기 전 병영면으로 갔다. 오래전 TV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식당이 있었다. 불고기 2인분 주문하니 주인장이 밖으로 나간다. 슬쩍 따라 나가봤다. 연탄 화덕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불고기가 나오기 전 찬이 깔린다. 고춧가루가 살아 있는 듯, 막 무친 밴댕이젓갈을 비롯해 김치 등 몇 가지가 차려졌다. 하나하나 맛을 봤다. 하나하나 간이 살아 있고 맛있었다. 허투루 내는 찬이 아니었다. 초벌구이한 불고기를 판에 올리고는 파채를 더해 굽는다. 밥을 주문하니 주발에 바로 퍼준다. 갓 구운 불고기와 갓 퍼준 밥의 조합은 극강이다. 

파채를 올려도 좋고, 간이 딱 맞는 강진 특산물 토하젓을 더해도 좋다. 들깨가루는 선택이다. ‘개미진’(특별한 맛이 있다는 의미의 남도 사투리) 전라도 손맛 가득한 찬이 가세하니 허리띠가 첫 술에 바로 무장해제다. 전날 한정식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병영 돼지불고기 백반에서 치유받았다. 수십 년 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꼽았던 백반집이 여기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맛났다. 여기서 밥 먹고 나면 백반은 찬의 숫자보다는 맛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된다. 배진강 (061)432-1058



성의가 빠진 한정식은 더 이상 우리의 음식이 아니다.

숫자에 매몰되어 있는 한정식은 강진이 아니더라도전국에서 볼 수 있다.


#강진 #한정식 #성의빠진음식

#지극히미적인시장

#가는날이제철입니다

#오는날이장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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