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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May 29. 2023

찬을 줄이자..

반찬에 대한 생각

일본 규슈에서 마주한 밥. 

일본의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밥이 맛없는 곳을 만난 적이 없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열댓 번 넘게, 먹는 것이 일인지라 다섯 끼 이상을 먹었으니 대략 계산해도 70끼가 넘는다. 입에 맞지 않은 경우는 있어도 주요리가 부실하거나 밥이 맛없는 경우는 없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공깃밥으로 나오고 오징어볶음을 주문하면 오징어를 찾아 헤매야 하는 우리 식당을 생각하며 “우리는 왜?” 만 속으로 투덜거렸다. 우린 이런 경험을 일본 여행 중에 수없이 마주했을 것이다. 쌀이 다른가? 뭐가 달라 이런가? 하는 의구심을 품어도 귀국하고 나면 맛없는 밥에 적응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느 지방의 한정식. 숫자 채우기만 잘 했다.

차이의 시작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반찬이 너무 많다’ 답이다. 물론 임대료나 인건비 부분을 감안해야겠지만, 현실 안에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반찬 숫자’라 생각한다. 밥상 가득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퍼져 있다. 한식은 이래야 한다는 명제가 헌법 어디 구석에 적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쥔장은 젓가락 갈 때 없다는 손님 타박에 이것저것 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반찬 중 하나만 걸려라? 이런 심정이 아닐까 싶다. 차려진 찬에서 사실 입에 맞는 반찬으로만 젓가락이 간다. 인지상정이다. 입에 맞지 않거나 먹지 않는 젓가락도 안 된 반찬은 그대로 되돌아 주방으로 돌아온다. 차리는 게 많으니 밥은 미리 퍼 놓는다. 공깃밥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많은 접시를 사용해야 하니 사용하기 편한 멜라닌 용기가 딱 맞는다. 가볍고 깨지지 않고 설거지까지 편하다. 밥값에 포함된 반찬은 내 입맛과 상관없이 차려지고 버려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먹든 안 먹든 밥상을 차리는 원가에 포함이 된다. 차려야 할 찬이 많으면 사야 할 재료가 많아진다. 양파가, 마늘이 또는 배추 가격이 점프하는 순간 곡소리가 뉴스 화면을 뚫고 나온다. 다양한 반찬을 만들어야 하기에 모든 재료가 필요하기에 그렇다.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여기저기서 원가가 높아지니 정작 주요리는 부실해진다. 오징어 볶음에는 양파나 양배추만 가득하다. 몇 개 없는 오징어도 귀라 부르는 날개 지느러미나 다리뿐이다. 오징어 몸통은 도대체 누가 먹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육회 비빔밥을 주문하면 많은 채소와 더 많이 든 김가루 사이 가운데에 주인공 육회는 장식처럼 올려져 있다. 지방에 가면 그나마 양이 더 있다 해도 육회비빔밥이라 이야기하기 힘든 채소 비빔밥이다. 한 번은 전라도의 어느 지방에서 한정식을 주문한 적이 있다. 꽤 오래된 곳이다. 2인분 주문했다. 회, 튀김, 홍어, 불고기 등 다양하게 내야 하니 다양하긴 한데 먹을 것이 없었다. 불고기는 단맛만 가득했다. 회는 크기를 딱 보니 횟집 가면 한 점 크기를 세 개로 나눴다. 홍어 삼합도 그러했다. 차린 건 많아도 젓가락이 갈 곳을 잃는 밥상이었다. 

밥이 맛이었야 한다. 찬은 그다음이다.

일본은 어떤가? 정식을 주문하면 밥+주요리+국에 반찬 하나 정도다. 그럼에도 만족스럽게 식사를한다. 가끔 일본 길가의 기사식당을 다룬 유튜브를 보곤 한다. 메뉴는 다양하다. 어찌 저것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메뉴판은 우리나라 고속버스 터미널의 식당 메뉴판과 같아도 하나하나 다 만든다. 식당의 새벽은 그날 쓸 육수를 만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쓰오부시를, 된장을, 간장을 이리저리 조합하며 최상의 육수를 만든다. 튀김을 준비하고 카레를 준비한다. 메뉴판의 어떤 하나가 들어오든 하나든 두 개든 상관없다. 빠르게 조리해서 낸다. 마지막은 항상 밥이다. 접시든 사발이든 밥을 푸는 것으로 하나의 주문을 마무리한다. 육수에 성의를 다하고 돈가스든 뭐든 주요리가 먹기 좋은 모습이다. 접시는 우리네처럼 멜라닌 용기가 아닌 도자기를 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차려야 하기에 도자기 사용은 힘들다. 개당 가격뿐만 아니라 설거지 또한 멜라닌 용기에 비해 불편하다. 1인분에 몇만 원 하는 곳에 가야 자기에 차려진 찬을 만난다. 비슷한 만 원 언저리 가격에 팔면서 도자기를 사용하고 육수를 만들 수 있는 여력은 반찬이 있고 없고 차이다. 밥과 수많은 반찬을 같이 내야 하니 싼 식재료를 찾아야 한다. 새송이 볶음을 내더라도 모양 좋은 것은 못 쓰고 끄트머리에 난 작은 것을 사야 한다. 그래야 원가를 맞춘다. 그게 우리네 식당의 현실이다. 일에 치이다보니 친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식사의 주체는 먹는 사람이다. 식당에서는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는 차려내야 한다는 명제가 더 중요하다. 이런저런 찬으로 채운 밥상 위는 풍요로워 보여도 실상은 맛의 빈곤에 허덕인다. 주요리에 쏟아야 할 공력을 반찬과 나누기 때문이다. 원가 감안한 주요리가 부실해지니 찬이 많아 보여야 하고 찬이 많아 보여야 하니 원가가 더 들고 또다시 메인이 부실해는 악순환이 굴레가 점점 회전 반경을 키운다. 원가가 높아 국내산을 못 쓴다는 육회비빔밥에서 찬을 다 빼면 국내산 김치를 쓰고도 남는다. 아니면 육회의 양을 지금보다도 두 배 이상 더 놔도 괜찮을 것이다. 비빔밥을 내면서 한 상 가득 내는 반찬이 없다면 말이다. 돼지갈비 식당에 딸아이랑 가면 김치와 된장찌개 그리고 쌈채만 내려놓으라고 한다. 먹지 않는 것은 아예 올리지도 못하게 한다. 올려놨다가 그대로 돌아가면 버리거나 재활용의 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종업원이 묻는다. “이렇게 놓아도 괜찮으세요?” 쌈이 있는데 굳이 양상추 샐러드와 양파 채에 소스, 쌈채까지 굳이 필요가 없음에도 누군가 내니 나도 낸다. 쓸데없는 원가가 드니 뒷다리나 앞다리를 사용함에도 이름이라도 돼지갈비로 팔아야 이익과 원가 사이의 균형을 맞춘다.

잘 비벼지지 않았던 육회비빔밥

서울 송파구로 회사 다닐 때 회사 앞 김치찌개 집에 가끔 갔었다. 메뉴는 찌개와 계란말이가 전부였다. 다른 찬도 없다. 김치찌개만 있어도 만족도 높은 식사를 했다. 김치찌개에 모든 힘을 다 주었기에 그렇다. 찬에 쓸 공력을 주요리에 써야 한다. 그래야 식재료가 좋아지고 주방에서의 요리가 수월해진다. 설거지를 비롯해 뒷정리도 적어진다. 찬이 적어지면 차리는 이도 수월해 사 먹는 이는 어디서든 편하게 1인분도 가능하며 맛나게 먹을 수가 있다. 우리는 지금 먹지 않은 찬에 헛돈과 헛힘을 쓰고 있다. 그 덕에 맛있는 쌀로 지은 밥도 공깃밥에 보관하게 된다. 공짜 반찬은 없다. 주요리를 맛나게 먹을 것인지 다양하게, 비싸게, 맛없게 먹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 찬을 줄이자!   


#반찬 #주요리 #한정식 #정식 #육회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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