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오일장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1월 말에 고흥 오일장에 갔었다. 오일장 연재한 지 1년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명절 지나고 열흘이 지난, 명절 전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장은 서겠지 하는 생각으로 갔다. 나만의 생각이었다. 장터에 도착하니 상설시장의 생선구이 전문점은 가게를 열고 있어도 오일장에 물건 팔러 나오는 이는 없었다. 고흥장의 썰렁함을 경험한 이후로는 명절 지나 보름 후부터 취재에 나섰다. 장이 서지 않아 취재도 못 하고 장터를 배회하다가 끝냈던 씁쓸함이 4년 만에 찾은 고흥장에 들어서자 목구멍을 간질거렸다.
장날인 1월 4일에 맞추어 고흥으로 떠났다. 맛이 반짝반짝 빛나는 겨울날의 장터는 뭣이든 맛있다. 수산물이 있는 바닷가 장터는 그 기대감이 육지보다 서너 배 정도 크다. 전날에 도착해서는 일 보고는 장날 부푼 기대를 하고 장터로 나갔다. 어찌 주차하다 보니 4년 전 주차했던 곳 근처다. 70200, 2470 줌 렌즈로 단단히 무장했다. 기대감은 아주 잠깐이었다. 4년 전보다는 낫지마는 다른 전라도의 읍내 오일장하고는 규모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순천이나 여수 같은 도회지와는 비교할 수 없어도 이웃한 장흥이나 강진, 보성과 비교해도 너무 작았다. 작은 것도 있지만 고흥은 장사하는 이들이 모여 있지 않았다.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이런 식이었다. 기대했던 수산물 장수들이 특히 저마다 터를 잡고 판매하기에 끼리끼리 모여 있는 다른 장터와는 모양새가 달랐다. 고흥장은 잠깐이면 장터 구경이 끝나는 작은 장터, 하지만 다른 곳에는 없는 ‘한방’이 있다.
바로 ‘숯불 생선구이’ 상설시장 한쪽 전부를 생선구이 점포가 차지하고 있다. 근처 바다나 원양산까지 가격에 맞추어 다양한 생선을 굽는다. 4년 전에 왔을 때도 생선구이 집은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을 정도였다. 아침 일찍임에도 숯불을 피우고 있는 곳, 손님과 이미 흥정하는 곳 등 시장 안에서 호떡집에 버금갈 정도로 바삐 돌아가는 곳이다. 전국의 시장에서 고흥장만의 매력이 넘치는 것이 숯불 생선구이지 싶다. 다른 시장은 반건이든 생물이든 생선 그대로 팔지만 유일무이하게 숯불에 구운 생선을 판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어물전 구경 또한 고흥장의 특징, 펄이 있는 곳인지라 낙지 파는 이들도 많았다. 낙지와 달리 유달리 작은 다리를 지닌 녀석도 빨간 대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꾸미다. 봄의 미식으로 알려진 주꾸미는 사실은 지금이 가장 맛있다. 산란을 준비하는 지금이 영양적으로나 맛으로나 가장 좋다. 봄이면 모든 에너지를 알과 정소로 보내기에 살이 퍼석퍼석하다. 바닷장어인 붕장어 또한 마찬가지다.
봄철에 산란하는 붕장어가 가장 먹성이 좋을 때가 지금이다. 붕장어 가격이 저렴하다. 한 바구니에 실한 장어가 5만 원이다. 탕용으로는 몸통이 작은 것을 사용하고 큰 것은 구이용으로 손질까지 해준다. 돌아다니다가 개중 물이 좋아 보이는 것으로 골랐다. 사료 먹여서 키우는 민물장어는 기름진 맛이 있다. 붕장어는 자연산으로 먹이 활동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기에 담백하고 고소함이 장점이다. 필자의 경우 민물장어보다는 붕장어를 더 선호한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맛이 붕장어 쪽이 더 낫다. 물론 내 취향이지만 말이다. 아마도 이 정도 양의 민물장어라면 오만 원권 두 장 이상 있어야지 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문어, 낙지, 주꾸미 팔 때 한쪽에 중하가 있었다. 서너 곳이 있었는데 개중 살아 움직이는 것을 파는 곳이 있었다. 가격을 물으니 한 바구니 2만 원. 껍질 벗겨 볶아 먹거나 아니면 그대로 찌거나 볶아도 된다.
중하는 대하 중간 크기의 새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큰 종의 새우를 대하, 중간 크기의 새우 품종을 중하라 부르는 것이다. 중하가 시간이 지나면 더 커지거나 대하가 되지는 않는다. 판매하고 있는 중하는 다 큰 새우다. 대가리 따고 껍질 벗기면 사실 먹을 만한 살은 원래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자연산이 주는 맛인 깔끔함이 매력이다. 껍질 벗겨서 식용유에만 볶아도 훌륭한 요리가 된다. 만일 라드나 쇠기름, 버터 등 동물성 기름을 더할 수 있다면 좀 더 매력적인 풍미를 더 할 수가 있다. 새우 껍질을 벗기고 나서 라드에 볶았다. 간하고는 고춧가루 조금 뿌렸더니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재료가 맛있으면 양념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간만 맞추면 맛은 재료가 품고 있기에 그렇다.
붕장어를 사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고흥장보다는 도양장(3, 8장)이 그나마 더 낫다고 한다. 한데 모여 있어 구경하기나 장보기도 좋다고 한다. 도양? 도양읍? 물음표가 따라온다. 하지만 여기서 소록도, 녹동항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아는체한다. 녹동항을 품고 있는 동네가 바로 도양읍이다.
고흥읍에서 차로 20분이면 녹동항이다. 도양장을 본 적이 없기에 검색을 해봤다. 나오는 이미지가 많지 않았다. 아마도 고흥장하고 규모가 비슷할 듯싶었다. 다만 흩어져 있지 않고 한데 모아 있을 듯싶었다. 수산물도 여기보다는 도양장이 나아 보였다.
기대했던 고흥장은 작았다. 쇠퇴하는 시골장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고흥읍을 나오면서 고속도로 나들목이 있는 벌교 방향이 아닌 여수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수와 고흥은 팔영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벌교를 통해서 여수와 고흥을 오갔다. 다리가 생기고 나서는 빠르게 여수 시내로 접근할 수가 있다. 팔영대교를 통해서 가는 여수 시내는 30분 정도면 족하다. 오일장을 보고서 삼치 횟감을 사러 이순신광장 옆 선어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막 경매 중이었다. 한창 주가를 올리는 꼴뚜기 한 박스에 선도 좋은 것은 40만 원 가까이 나온다. 어제 잡은 것은 그보다 못한 25만 원 선이었다.
삼치까지 경매가 끝나고 경매 중 물이 가장 좋은 삼치를 따라갔다. 가격을 물으니 7.7kg 삼치 한 마리에 8만 원. 회를 뜨니 서울 전문점에서 기십만 원치 회가 나왔다. 고흥의 나로도가 삼치가 유명하지만 읍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가야 한다. 갔다가 나올 생각 하니 갑갑했다. 겸사겸사해서 여수 선어 시장을 찾은 것이다.
선어 시장은 여수에서 식당 하는 이들이 주로 찾는 시장이다. 관광객은 주로 터미널 근처로 가지만 선수들은 이쪽으로 온다. 가격 저렴하고 선도까지 좋다. 서너 번 와서 생선을 사지만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을 정도로 물건이 좋다. 여수 여행이라면, 고흥 여행이라면 같이 한목에 잡아 떠나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100선이 있다. 100선에서 빠져서는 안 될 곳이 고흥이다.
녹동항에서 읍내로 가는 4차선 도로를 타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면 해안도로가 나온다. 우리나라에 가장 아름다운 길이 여기이지 싶다. 글로는 설명이 안 된다. 가보며 말뜻을 이해할 것이다. 왼쪽은 산, 오른쪽은 다도해를 끼고 도는 풍경이 최고다.
1월의 고흥 시장은 이웃한 전라도의 시장보다 작았다. 사실 생선구이 골목 빼고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규모 : 5분이면 대충…
꼭 buy : 주꾸미와 낙지, 붕장어(가격 저렴)
추천 :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 ,녹동항을 기점으로 팔영대교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 내가 꼽는 우리나라 최고의 아름다운 길
총점 : ★★ (별 다섯 개가 만점) 시장은 그닥, 고흥은 좋음.. 시장날을 굳이 맞출 필요는 없음.
*1월 기준이다. 8월에 가서 낙지나 주꾸미, 붕장어를 찾아서는 안 된다. 겨울과 여름은 맛있는 식재료가 다르다. 여름은 맛없고 겨울은 뭐든 맛있다. 맛없는 대신 여름은 물에 들어가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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