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때 썼으면...
성게 비빔밥을 먹자마자 든 생각이 참기름을 버려야, 김가루를 버려야 비빔밥이 제맛과 재료의 향을 찾지 않을까?이었다. 얼마 전 동해로 출장을 갔다가 성게 비빔밥을 먹었다. 한 끼 식사로 적지 않은 금액인 2만 원이 넘었다. 그래도 여름 끄트머리에서 먹는 성게의 구수, 고소한 맛을 상상하면서 비빔밥을 마주했다가 적잖이 실망했다. 이유는 김가루와 참기름의 강한 향 때문이었다. 우선 김가루는 향이 강한 김과 열을 가한 기름의 조합이다. 김가루 게다가 태우듯 구운 것이라 향이 세다. 향신유는 참기름 향이 나도록 콩이나, 옥수수기름에 참기름 향이 더한 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두 가지 강한 향을 비빔밥에 넣었으니 성게의 여린 바다 향이 지워져 있었다.
성게 비빔밥뿐만 아니라 웬만한 비빔밥마다 굳이 김가루를 때려 넣는다. 공깃밥과 함께 비빔밥 먹을 때마다 불만이다. 매번 빼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조용히 덜어내기도 한다. 이번에는 생각 없이 받았다가 많은 김가루를 거의 다 뺐다. “그냥 먹지. 참 지랄 맞네”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랄 맞은 거 맞다. 내가 먹으러 간 것은 김가루 향 비빔밥이 아닌 성게 비빔밥이다. 성게 향 대신 김가루 향을 즐기기 위한 메뉴라면 100% 수긍한다. 하지만 성게를 먹기 위한 비빔밥 아닌가? 그릇 안에 들어 있던 김가루를 얼추 빼고는 밥을 넣고 비볐다.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었다.
훅 치고 들어오는 참기름 향. 그렇다 맛있어져라 넣은 참기름이 있었다. 씹고 또 씹어야 참기름 향을 뚫고 겨우 삐져나오는 성게 향을 마주 할 수 있었다. 참깨 수입이 예전보다 수월한 탓에 저렴해진 참기름은 죄가 없다. 누군가는 참기름의 진한 향을 향 깡패라고 했다. 모든 음식을 참기름 아래에 무릎 꿇린다고 그런 표현을 했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기에 한 말이 아닌가 한다. 참기름은 이제는 예전의 김혜자 씨가 TV 광고 속에서 “참 고소해요”를 외치던 참기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온에서 볶듯이 말듯이 해서는 압착한 것도 나온다. 이런 참기름은 향을 지배하지 않는다. 음식과 음식 사이에서 지가 역할만 하면서 어울린다. 또한, 모든 음식에 참기름을 넣는 사람이 문제지 참기름의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진짜 참기름도 아닌 향신유를 참기름처럼 사용하는 것 또한 문제다. 이것은 성게 비빔밥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빔밥을 대표 상품으로 미는 지역의 모든 비빔밥이 안고 있는 문제다. 전라도의 모 지역의 육회 비빔밥을 주문했다가 기겁한 적이 있다. 그릇 가득 채워진 김가루 때문이었다. 도대체 왜? 비빔밥에 김가루를 넣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일단 김가루를 넣으면 풍성해 보인다. 가볍고 뭉쳐지지 않는 특성 때문에 공간을 채우는 능력이 탁월하다. 게다가, 다른 채소보다 단가 또한 저렴하다.
가득 넣어도 몇십 원이면 충분하니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가짜 참기름 덕에 맛도 일정 이상 보장된다. 본디 음식을 만든 이유를 잊을 정도로 말이다. 성게면 성게, 육회면 육회를 잊게 만들어 입안을 참기름 맛으로 채운다. 그리고는 비빔밥이라 한다. 비벼 먹으니 비빔밥은 맞다. 하지만, 이름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냥 김가루 비빔밥으로 말이다. 조금 더 세심하게 한다면 참기름 향 가득 김가루 비빔밥으로 말이다. 예전 대청도 부둣가 식당에서 먹은 성게 비빔밥이 생각났다. 성게 향이 가득했지만 김가루를 빼고 싶었던, 기장의 말똥성게로 만든 비빔밥에도 김가루는 있었다. 오롯이 성게 맛을 즐긴 건 일본이었다. 홋카이도에서 먹었던 성게 덮밥은 성게 향만이 가득했었다. 다른 향은 없었다. 그릇 안에 오롯이 성게 향이 주인공을 하고 있었다.
김가루를 버리자. 적어도 비빔밥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에는 말이다. 들어가 있는 재료의 향을 치고받아서 자기 아래로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을 말이다. 국물 요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볶음밥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맨밥에 넣어 주먹밥을 만든다면 Ok. 강한 양념과 불맛이 차고 넘치는 냄비 안에서 필요한 것은 강한 맛. 하지만 비빔 그릇 안에서는 퇴출했으면 한다. 참기름도 바꾸거나 좀 적당히 사용하자. 못살던 시절의 복수도 아니고 참깨나 참기름 과용은 심하다. 참깨의 수입이 다각화하면서 중국, 인도에 이어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수입하면서 참깨 가격이 급락했다.
귀한 대접 봤던 참깨가 김밥 한 줄 사더라도 팍팍 뿌려서 나온다. 몇만 원 하는 무침을 주문하면 이불 덮듯이 뿌려서 나온다. 그러지 말자. 음식이라는 것은 조화가 핵심. 싸다고 막 뿌리면 식당 가치 또한 뿌리는 참깨 양만큼 값어치 떨어진다. 음식의 조화를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그런 음식을 사 먹고 싶다.
비빔밥 뭣이 중헌디 알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는 버리고 바꾸자. 제발
#비빔밥 #참기름 #성게 #김가루
#음식 #음식강연 #음식인문학 #식품MD
https://brunch.co.kr/publish/book/5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