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양념을 만든다.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식초, 간장을 2인분에 맞게 넣는다.
제육볶음을 만들기 위해 양념을 만든다.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식초, 간장을 넣는다.
생선조림을 만들기 위해 양념을 만든다.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설탕, 식초, 간장을 넣는다. 세 가지가 같다.
어느 날이었다. 떡볶이 만들다가 든 생각이 이거 그대로 해서 떡 하고 오뎅 대신 돼지고기를 넣어 제육 양념으로 해도 되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징어 볶음도 마찬가지다. 사용하는 양념의 종류는 같다. 약간의 가감만 있을 뿐 큰 차이가 없다. “매실액이 빠졌네요”, “미림이 빠졌네요” “네 빠졌습니다. 저는 그거 잘 안 씁니다” 둘을 넣고 안 넣고는 취향의 차이지 큰 맛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기에 넣지 않는다. 특히 미림은 잡내를 잡아 준다고 꼭 넣으라고는 하는 데 없는 잡내를 어떻게 잡는지 잘 모르겠다. 미림이라는 것이 주정에 물과 액상과당을 섞은 것인데 꼭 넣으라는 이유를 진짜 모르겠다. 대신 식초는 고춧가루나 고추장, 간장 요리에는 꼭 쓴다. 달고, 짜고, 매운 요리에 중심을 식초가 잡아 주기 때문이다. 매실액을 넣은 요리가 깔끔했던 이유가 매실에 있는 유기산이 있기에 그렇다. 식초 또한 유기산이 풍부한 식재료, 매실액 안 넣었다고 뭐라 하기 있기? 없기?
음식의 이름은 달라도 양념은 비슷하다. 대상이 되는 재료가 달라질 뿐이고, 그에 따라 양념이 가감될 뿐이다. 만능장이라는 양념이 과연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만능장은 나름 장점이 있다. ‘요알못’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유명인이 모니터 속에서 “이거 하나면 나처럼!”을 외치면서 용기를 북돋아주니 요알못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는 열쇠처럼 느낄 것이다. 만능장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웬만큼은 만들어준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 만능장의 단점은 무엇일까? 앞서 이야기한 거처럼 모든 양념은 비슷하게 들어간다. 무엇이든 다 만들 수 있다는 만능장은 어찌 보면 ‘눈 가리고 아웅’이다. 간장이든 고추장으로 만들든 만능장으로 만들면 음식을 같은 맛으로 만들 뿐이고 요리 실력을 늘지 않게 할 뿐이다. 요알못에게는 비법이겠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요리 실력을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사실, 누구의 비법이라 판매를 하는데 실제 비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국산 고추 양념에 여러 가지 엑기스와 MSG을 넣고 만든 것이 만능장이다. 게다가, 성분 중에서 진액나 양념분말 만들 때에 빠짐없이 MSG을 넣고 만든다. 어찌 아냐고? 예전에 초록마을에서 일할 때였다. 라면 PB을 만들기 위해 기획하던 중 ‘無MSG’ 표시하기 위해 라면 수프를 만드는 재료에 재료에 재료까지 조사한 적이 있다. 결국은 3차 재료에서 성분이 나와 포기한 적이 있다. 아무리 전 성분 표시를 한다고 해도 분말류나 엑기스류는 공장에서 만들 때 기본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만능장을 사용했다면 따로 미원이나 다시다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만능장을 사용하고도 혹시나 해서 넣는다면 MSG가 음식 속에서 폭발할 것이다. 게다가 가공식품으로 사는 것은 굳이 먹지 않아도 될 보존료까지 먹는다. “굳이!” 말이다. 기성품을 사지 않더라도 유명인 따라 너도나도 유행처럼 소개하고 소비하는 글과 방송이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그래도 따라서 만드는 것은 그나마 낫다.
음식 만들기는 자전거, 수영, 말하기 등등 한 번 배우면 평생 잊지 않는 기술과 같다. 배우는 기술이니 당연히 초보 시절이 있다.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든 초보 시절을 겪었을 것이다. TV에 나와 현란한 말솜씨와 칼질로 유혹하는 출연자들도 접시를 닦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나도 취사병 시절 처음 한 것이 설거지와 꽁꽁 언 동태나 꽁치 20kg 덩어리를 하나씩 떼기였다. 잡스런 일을 하는 초보 시절을 지나 지금 위치에 있다. 만능장 만들기는 하나의 참조다. 논문을 쓰기 위해선 다른 이의 의견을 참조한다. 참조만 할 뿐, 수많은 의견을 모아서 내 결론을 낸 것이 논문이다. 만능장 따라 하기는 그저 복사일 뿐이다. 물론 카피도 배우는 시작점에서는 필요하다. 그 이상을 가기 위해서는 ‘만능’이라는 단어에 매몰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이야기의 끝은 항상 재료 이야기다. 강릉 출장길에 주문진 수산 시장에서 산 싱싱한 여름 고등어를 당일 저녁에 조렸다. 살 때 살아 있던 고등어인지라 맛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예전에 고등어 낚시를 겨울에 몇 번 갔었다.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고등어와는 다른 맛이 있었다. 그 맛을 알기에 기대를 했으나 맛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까닭을 생각하니 계절 차이였다. 조림에 깐 무조차도 여름 무는 맛이 맹했다. 주재료가 모두 맹하기에 양념을 좀 더 세게 해야 했다. 며칠 지나 사 온 것이 남아 있기에 양념의 세기를 좀 더 강하게 하니 저번보다 맛이 그나마 낫었다.
아무리 양념장이 좋아도, 만능이어도 제철의 맛을 넘어서긴 어렵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만능장이었다. 만능장을 알려주었으면 재료에 따라 맛이 달라짐도 알려줘야 하는데 그다음이 없다. 재료가 좋으면 맛을 더하는 것이 양념, 재료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만능이어도 음식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재료가 먼저다. 재료를 알면 요리의 수준이 만능장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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