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조심'이 사라진 시대, 간장의 자격을 묻다

산분해간장은 간장이 아니다.

by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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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다 흔하게 보이던 붉은색 '개조심' 팻말이 사라졌다. 맹견이 순해져서가 아니다. 주인이 목줄을 채우고 입마개를 씌우도록 사회의 규칙과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행인은 공포에 떨 필요가 없고, 안전은 개인의 주의가 아닌 시스템의 몫이 되었다.

식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HACCP(해썹)이라는 입마개와 각종 성분 기준이라는 목줄을 믿는다. 하지만 30년 전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발암 의심 물질 3-MCPD가 최근 또다시 기준치를 훌쩍 넘겨 검출되었다는 소식은, 우리의 믿음이 맹견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음을 상기시킨다.

문제의 본질은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본래 간장은 기다림의 산물이었다. 콩이 미생물을 만나고, 계절의 온도를 견디며 서서히 분해될 때 비로소 깊은 맛과 향이 우러난다. 이것은 20가지 아미노산이라는 레고 블록을 효소의 손길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떼어내는 과정과 같다.

하지만 산업화된 속도의 시대는 기다림을 허용하지 않았다. 시간 대신 '염산'을 선택했다. 기름을 짜고 남은 콩 찌꺼기(대두박)에 염산을 부으면, 단단한 단백질은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며칠, 아니 몇 시간이면 검은 액체가 뚝딱 만들어진다. 현대 과학은 이것을 효율이라 부르지만, 나는 이것을 기만이라 부르고 싶다.

미생물이 빚어낸 복합적인 향미와, 염산으로 강제 해체한 아미노산 액체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성분 분석표의 수치가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음식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음식은 단순한 화학식의 합이 아니라, 재료와 시간이 빚어내는 종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맹견에게 종이로 만든 입마개를 씌우고 안전하다 말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염산으로 녹여낸 아미노산 액체에 '간장'이라는 이름을 붙여 식탁에 올려서도 안 된다. 그것은 '간장 맛 소스' 혹은 '아미노산액'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이름이 제자리를 찾을 때, 비로소 우리의 식탁도 안전해질 것이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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