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라도 뿌듯한 날
아무도 몰라주지만 스스로 뿌듯한 날이 있다. 전업주부에게는 집안일이 해당된다. 집안일이란 안 하면 바로 티가 나면서 열심히 해도 절대 티 나지 않는 일이다.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것 같지만 은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집안일이 여전히 잘 모르겠고 낯설기만 하다.
아무튼 오늘은 식사 준비를 멋지게 해내는 것이 나의 집안일 목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저녁 식사와 개인적인 일로 내일 하루 아이의 등원을 부탁한 동생과 아이의 아침과 하원을 해 줄 남편과 아이가 먼저 먹을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 야근으로 바쁘신 엄마와 그로 인해 홀로 식사를 챙겨드시는 아빠의 저녁 한 끼를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사용할 생각이다.
먼저 아이를 등원시킨 후 새로 생긴 마트를 향해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집에서 살짝 거리가 멀지만 걷기 운동 겸 좀 더 저렴하고 신선한 먹거리를 사려는 나의 뜻깊은 계획을 실행해 볼 생각이었다. 간장마늘양념닭볶음탕을 만들기 위한 닭과 여러 요리에 두루두루 사용할 야채거리를 사고 집 근처 마트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ABC 주스에 사용할 비트, 애호박고추장찌개와 동그랑땡에 사용할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장바구니가 제법 가득 차 있었다. 정말 완벽한 장보기였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완벽한 장보기는 실패작이라는 걸 깨달았다. 돼지고기 앞다리살과 비트만 생각하느라 계란과 사과 그리고 돼지고기갈비양념을 깜박한 것이다. 부랴부랴 다시 집을 나섰다. 나머지 식재료들을 다 구입해 돌아오니 벌써 11시가 되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제일 먼저 돼지고기갈비 양념에 고기와 다진 야채를 재워 냉장고에 넣었다. 그 후 냉장고에 있는 각종 야채들을 다 꺼내 곱게 갈고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계란물과 섞은 후 부침가루를 몇 숟갈 넣고 휙휙 저어줬다. 그리고 달군 프라이팬 안 기름물로 향했다.
다음 메뉴는 애호박고추장찌개, 처음으로 하는 요리인지라 SNS에서 친절하게 가르쳐준 방법을 참고했다. 다행히 따라 해 보니 생각보다 간단했다. 다진 마늘을 기름에 볶고 파를 넣고 또 볶고 고춧가루를 넣고 또 볶고 물 넣고 돼지고기를 넣고 애호박과 양파를 넣고 고추장 넣고 액젓과 해물 육수로 간 조절을 하니 끝이 났다.
이제는 엄마 아빠를 위한 식사 준비를 할 차례다. 평소 회사에서 고기반찬이 자주 나온다는 엄마 아빠의 말씀을 기억하며 황태를 넣어 시원한 맛을 가미한 황태 미역국을 끓였다. 그리고 애호박과 감자를 잘게 썰어 계란물과 함께 담백하게 부친 감자애호박 전을 만들었다. 한 김 식힌 후 먹기 좋게 썰어 그릇에 담아서 엄마 아빠댁에 가져다 드렸다.
그리고 마지막 메뉴, 간장마늘양념닭볶음탕이다. 절단된 닭고기들을 한번 물로 데쳐낸 후 간장과 알룰로스를 적당량 넣은 다음 물을 살짝 넣어 주고 후추를 살짝 뿌려주었다. 그리고 될 대로 되라는 듯이 무심하게 끓이면 끝이다. 간만 어느 정도 맞으면 된다. 드디어 모든 메뉴가 끝이 났다(ABC 주스는 내일 만들 거다.)
메뉴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가는 조리법은 아니었지만 종류들이 다양하고 내가 요리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다 보니 조금 벅찼다. 중간중간 '그냥 시판용으로 살까', '밀키트로 준비할까?', '시켜 먹을까?'라는 생각이 수시로 내 머릿속에 들어왔지만 이왕 시작한 거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직접 만들고 싶다는 고집도 있었다. 결국 하루 종일 시간을 쏟아 다 정리하고 나니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하원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오랜만에 뭔가 모를 작은 성취감과 뿌듯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아무도 몰라준다. '전업주부가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했다.'라고 한 문장으로 끝나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생생하게 느끼는 뿌듯함이기에 내심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쓴다. 자랑도 하고 싶고 칭찬도 해주고 싶어 글로 쓴다. 나중에 꺼내 읽어보려 글로 쓴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나 이외의 다른 누군가에게도 힘이 되고 함께 자랑하고 칭찬을 주고받고 싶다.
"나 오늘 정말 잘한 것 같아! 정말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