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압도당한 날
불렛저널의 쓰임이 다소 느슨해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고 몸 곳곳에서 이상 반응이 나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방심하다가 그만 나는 무기력의 늪에 빠져버리고야 말았다.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초조함이 몰려왔다.
갑자기 모든 게 다 무의미해지고 '내 존재의 의미가 뭘까?'라는 질문에도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 이 '누군가의'라는 단어 없이는 '나'가 정의되지 않은 이 상황이 서글퍼졌다.
무기력의 늪은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빠졌던 전적이 있어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도 이미 매뉴얼화되어 있지만 그때는 '나'라는 존재, 내 이름 세 글자가 고유한 명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전업주부의 이름을 궁금해하겠는가.
새로운 각오들과 함께 시작한 2025년에서 내가 제대로 한 게 있었나 싶고 중도에 멈추고 더디게 해 나가는 나의 목표들이 초라하게 보였다. 의욕이 사라지던 순간은 시간이 되었고 일상이 되었다. 무기력은 무섭다. 소리 없이 조용히 다가와서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처럼 순식간에 '나'를 쑤셔 넣는다. 정말 순식간이다. '어 이게 뭐지?' 하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더 지체하다가는 우울증까지 올 것 같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서관으로 향했다. 주옥같은 문장들을 억지로라도 주입해야 할 때였다. 감사하게도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경우에 도서관을 가면 정답을 알려주는 책이 나를 늘 기다린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책 한 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왜 아무것도 하기 싫을까(배종빈 저)' 책 제목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왔다. 솔직하고 담백한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었는데 그 이유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들려주는 뇌과학적 관점에서의 무기력에 대한 설명이 어렵지 않게 글자로 풀이되었다는 점과 나의 무기력의 원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서 덤으로 얻는 지적 즐거움 때문이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180도 극적인 변화로 무기력에서 벗어나 예전과 같이 의욕적인 모습으로 글을 쓰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해피엔딩이겠지만 여전히 나는 무기력의 늪에서 온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여전히 순간순간 무기력이 내 정신을 압도한다. 하지만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은 이제 가지고 있지 않다. 책을 두 번 읽으면서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과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반드시 무기력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저절로 사라졌다.
'완벽주의' 성향도 한몫했다. 이건 타고난 성격이라 어쩔 수가 없으니 내가 잘 어르고 달랠 수밖에 없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과감히 미련을 버리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할 순간이다. '완벽주의'로 인해 널브러진 생각들을 다시 정리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은 과감히 털어내야 할 때다. 그렇게 다시 조금씩 시작하는 거다.
수많은 정보의 홍수에 살다 보니 이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도 알게 된 시대이지만 나의 기준은 오롯이 '나'이어야 한다. 과거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좀 더 잘했다면 충분한 성과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무기력의 늪에서 한 발자국 걸어 나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