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오류

장을 보러 마트에 간 날

by 코코 COCO

길고 길었던 설 연휴에 있었던 일이다. 독감으로부터 겨우 벗어난 나와 연차를 사용한 내 짝꿍은 함께 아이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집 근처 마트로 장을 보러 갔겠지만 오랜만에 집에서 조금 떨어진(그래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마트로 향했다. 남편이 회사에서 선물 받은 상품권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목돈이 나간 상황에서 남편이 받아 온 상품권은 큰돈은 아닐지라도 생각지도 못한 복권 당첨금만큼이나 감사하고 반가운 돈이었다.

비교적 마트는 한산했고 우리는 차분하게 구경하며 살 것들을 카트에 집에 넣었다. 그 와중에 내 머릿속에서는 쉴 새 없이 두들겨지는 계산기와 '공짜나 다름없으니 마음 편하게 고르자'는 마음이 자꾸 충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돈이라도 허투르게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구입하려 애썼다. 자주 오지 못하는 곳이니만큼 여기서만 구입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마트 PB 상품과 가격대가 있어서 평소 선뜻 고르기 어려웠던 것들 그리고 주말 식사에 사용할 식재료들을 하나하나 골랐다.


그러다 문득 '고른 식재료들이 상품권 금액보다 더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장을 자주 보는 사람들은 몇 개 고르지 않았는데도 생각보다 많이 나오는 영수증 속 금액을 자주 마주하곤 한다. 생각보다 많이 나온 카드비 영수증 속 사용 내역들을 보면 실상 써야만 했던 소소한 금액들이 찍 혀 있을 때가 많다. 분명 나는 과소비를 하지 않았고 합리적으로 썼노라고 자신 있게 말하려다가도 영수증 속 숫자에 멈칫하곤 하는데 평소 장을 보지 않은 사람들 눈에는 그저 핑계로 들릴 뿐이다.


함께 따라온 짝꿍 또한 넘으면 얼마나 넘겠냐는 뉘앙스로 조금 넘는 돈은 따로 계산하자며 나를 설득했다. 고른 것들에 값들만 개별적으로 비교만 하고 전체적인 금액대를 대략적으로라도 계산하지 못한 내 불찰을 자책하면서도 내심 짝꿍의 말이 맞기를 바랐다. 하지만 셀프 계산대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큰 계산 오류를 저질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빠른 의사결정이었다. 먼저 물건들을 보며 주말 식사에 사용될 식재료와 여기서만 구입 가능한 PB 제품들과 머릿속 계산기 상으로 평소 구입하는 마트보다 가격이 좀 더 비싸거나 비슷한 식재료를 나누었고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임무를 완수했다. 짝꿍의 임무는 계산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져갈 수 있도록 포장을, 나의 임무는 온전하게 제품들을 진열대로 조심히 옮기는 일이었다. 마트 관계자 분들께는 정말로 죄송하고 죄송하다. 하지만 현실적인 우리의 지갑 사정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회사에 일이 없어 큰돈을 벌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짝꿍이 혹시나 마음이 불편할까 싶어 구입한 물품들을 공짜로 사서 좋다고 말은 했는데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이 마트 관계자 분들께는 분명 죄송한 마음이다(그래서 최선을 다해 정확한 자리에, 함께 있는 식재료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놔 두려 애썼다). 하지만 과한 소비를 하지 않으려고 애쓴 내 모습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짝꿍과 함께 장본 시간이 짧은 데이트 같아서 좋기도 했다.

'계산 오류'는 장을 보는 과정에서만 겪는 일은 아니다. 숫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계산 오류'들을 마주한다. 수많은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그 이후의 일들을 예상하고 결과를 판단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선택지를 고르는 나 조차도 보기 좋게 빗나가는 상황을 자주 마주친다. '1+1'이 결코 언제나 '2'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가는 중이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완벽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원망과 증오가 차올랐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과 자책보다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을.


올해도 마주할 '계산 오류'들을 최대한 적게 만날 수 있도록 노력은 하되, 만나더라도 너무 겁먹진 말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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