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3월
3월이 시작되었다. 꽃샘추위가 올 것 같지만 봄이 오긴 한 것 같다. 보이지 않았던 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 봄이 점점 주변으로 파고들고 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날들이 내 앞에 줄 서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나는 요즘 무기력함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3월부터는 새로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었건만, 독감 후유증인지 뭔지 모를 무기력함이 여전히 나를 감싸 안고 있다. 그저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만 빈둥거리며 하고 싶다.
하지만 막상 그러지도 못한다. 요즘 SNS에서 많이 접하게 된 단어, '기획노동'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아이의 봄 옷과 새로운 학기 준비, 늘 준비해야 하는 식사거리, 가족행사, 설 연휴 이후의 재정 상황 파악, 아이와 함께 주말을 보낼 계획 등등 사소하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소소한 집안일들이 왜 이렇게 내게는 버거운 건가 싶었는데 역시나 SNS에서 본 누군가의 설명에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카드값 매번 놀라시죠? 하지만 막상 사용 내역들을 보면 소소합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커져버린 거죠. 집안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레기 비우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등등 다 소소한 일들인데 그게 쌓이고 쌓이면 작은 일들이 아니게 됩니다."
(* 기억에 의존하여 작성한 것이다 보니 저 말 그대로 설명해 주신 게 아니고 다시 각색한 문장임을 밝힙니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았다. 평소처럼 썼는데 카드값이 많이 나와서 사용 내역서를 봤더니 특별히 과대 지출은 없었던 달, 뭘 많이 사지도 않았는데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보고 속으로 경악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카드를 카드 계산기에 꽂던 날, 나를 위해 돈을 쓰자고 했지만 막상 가격표를 보고 망설이던 나.
아무리 내가 집안일을 열심히 해도 어디까지나 나는 집에만 있는 사람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아무리 내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하지만 결국 나는 그저 집에 있는 백수일뿐이다.
사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내 삶을 즐거워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이런 것에 얽매여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무기력에 빠져 버린 것일까? 그냥 먹고 마시고 뒹굴거려 버리자.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나를 이런 사람으로 보는데 뭘.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나를 도태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럴싸한 모습으로 보이길 바라는 내 모습에서 고등학교 시절 무기력에 빠져 야간자율학습시간마다 멍해 있던 과거 시절의 모습이 보였다. 적당한 무기력은 쉼을 통해 극복해 낼 수 있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옭아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바로 목표였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걸 배우고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만들어진 목표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곳에서 공부하자, 그러려면 지금 원하지 않는 과목도 공부해야 한다는 걸 상기시키면서 해당 학과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되기 위해 마지막 3학년 때 정신 차리고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전업주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지만 육아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나 같은 경단녀들도 마음만 먹으면 새로운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여전히 갈팡질팡 하는 나를 볼 때면 가끔은 서글프다. 여전히 예전 일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 새로운 도전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인지, 자신감이 떨어진 건지 뭔지.
그래도 이렇게 글로 마음을 푸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과거의 나처럼 현재의 나에게도 알맞은 '목표'를 설정해야겠다. 우선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다독이고 힘을 주자. 목표만을 생각하기에는 반드시 내가 해야 할 '기획노동'들이 있다. 천천히 하나씩 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