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
뜬금없이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봄소식을 안고 온 비였지만 그저 내게는 비가 오는 날일 뿐이었다. 우중충한 날씨가 더욱더 내 마음을 스산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집안일을 하려니 목구멍에서 한숨이 푹푹 올라왔다.
새로운 시작의 이미지를 가진 봄이 왔는데 전혀 반갑지 않다. 나는 그저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일들을 하며 똑같은 나날을 보낼 것 같은데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일, 새로운 목표로 인해 강렬한 동기 부여가 일어날 상황들을 마주할 거라는 사실이 그저 부럽다.
옷을 사려했는데 언제 옷을 샀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나한테 잘 어울리는 옷이 뭐였는지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나에게도 취향이라는 것이 분명 있었는데 어디로 가 버린 건지 모르겠다. 옷을 사겠다는 말만 해대는 나를 보며 짝꿍이 먼저 사다 준 옷들만이 내 옷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에 마음이 쿵 내려앉은 요즘이다.
흐릿하고 어두운 하늘처럼 나도 점점 흐릿해지고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오늘 나는 나를 위해 한 일이 뭐였나?'라는 질문에 쉽사리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나의 색깔이 점점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서글픈 마음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마음대로 서글퍼하는 것 마저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나를 맡겨보기로 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기로. 소소하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가족들을 위한 일뿐만 아니라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일도 함께 해보기로 말이다. 그리고 어차피 해야 할 집안일들도 나를 위해 해보기로 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집안일이라니, 지금껏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쉽게 떨쳐 낼 수 없는 감정이라는 거 잘 안다. 하지만 지금껏 나는 잘 이겨내며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내 마음을 다짐하고 그 단단함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