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존중을 표현하는 방법_집밥]
쌈밥; 닭갈비와 상추쌈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기 전날, 엄마가 아는 분이 주셨다며 하얀 비닐봉지 안에 상추를 가득 담아 주셨다. 싱싱하지만 비에 젖어 빨리 먹어야 한다는 신신당부를 여러 번 들은 끝에 내 품으로 온 상추들은 생각보다 싱싱했다. 흐르는 물에 흙과 먼지를 씻어낸 상추들을 잠시 물기를 뺀 뒤 두 개의 그릇에 나눠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일도 싱싱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동생과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심하게 찾아온 감기가 안 떨어져서 간 것인데 목이 여전히 부었고 나아지는 과정 중에서 기침과 콧물이 동반될 것이라고 했다. 수액을 맞으려고 잠시 앉아있는데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늘 열정이 넘치고 생기가 돌던 나였는데 수척하고 눈이 퀭했다.
나는 문득 상추가 생각났다. 세찬 비에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기가 돌던 상추를 먹으면 뭔가 나도 힘이 날 것만 같았다. 함께 먹을 음식으로는 닭갈비를 선택했다. 돼지고기보단 닭다리살의 부드러운 식감이 피로한 내 몸과 마음을 토닥여 줄 것 같았다. 그리고 청년의 질풍노도에 휩싸인 내 동생의 마음도 조금은 잠재워 줄 것 같았다.
언니랍시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지만 생각해 보면 마음과 머리가 따로 노는 동생의 입장에서는 다 부질없는 소리고 한숨만 더 나오게 하는 이야기들일뿐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들리지도 않을 터, 요즘은 그냥 함께 있어주고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오히려 동생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 말을 아끼고 있다. 그 대신 '집밥'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어 시간이 되는 한 점심을 함께 먹을 생각이다.
병원에서의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닭갈비를 꺼내 프라이팬에 올린 뒤 물을 붓고 맛술을 대충 부어준 뒤(대략 3~4 숟가락, 큰 의미를 두진 않는다) 뽀얀 거품이 나오도록 한번 끓여주었다. 그리고 끓이는 시간 동안 당근, 양파 그리고 대파를 썰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양파는 자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나타내기에 다채로우면서도 까다로운 식재료라고 생각한다. 은근히 모양을 따지는 사람도 봤다. 나는 얇게 채 써는 걸 선호하지만 오늘은 동글동글하게 썰어보고 싶어서 네모 모양이 되도록 썰었다. 한번 툭 썰면 되니 편하게 하는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 요리 철학과 딱 들어맞는 재료다. 게다가 몸에도 좋으니 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양념장은 제일 어렵게 느껴졌는데 한번 만들기 시작하면 제일 쉽다. 사용되는 양념 재료들의 비율을 때에 따라 적당히 맞춰주면 되는데 웬만하면 맛있게 만들어진다. 다만 각 양념 재료들의 고유의 맛이 생각보다 크게 좌지우지되므로 기본 양념장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을 해서는 안된다. 나는 고추장, 간장만큼은 내가 택한 제조사의 제품만을 사용하는데 거의 내가 원하는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한 번 끓여낸 닭다리살들 사이에서 출렁이는 물과 불순물을 걸러낸 뒤 닭다라리살들을 먹기 좋게 가위로 잘랐다. 그리고 그 위에 미리 손질한 야채들과 양념장을 넣고 물을 약 한 컵을 넣어준 뒤 끓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휘하 찬란한 조리 원리에 따라 맛이나 영양소들의 차이가 있겠지만 마음이 지친 사람들에게는 시켜 먹지 않고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로 무장하지 않고 직접 해 먹는 자체만으로도 박수받아야 마땅하기에 가볍게 무시해도 좋다. 그래서 나는 그냥 송풍구를 틀고 프라이팬 뚜껑을 닫고 조리한다.
요리가 완성이 되는 동안 잠시 앉아서 쉬어도 좋고 틈틈이 주방 정리를 해 주는 것도 좋다. 나는 원래 한꺼번에 정리하는 편이라 어질러진 상태에서도 쉼을 택했는데 요즘은 정리하면서 하려고 하는 편이다. 정리 DNA가 탑재된 사람들에게는 별일이 아니지만 그러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엄청난 일이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나에게 맞는 공간 활용이다. 손질 전 후의 재료들 위치와 버려야 하는 음식물과 쓰레기들 위치를 정하는 것인데 하다 보면 각 의도에 맞는 공간 설정이 가능해져서 동선의 움직임도 편해지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중에는 몸이 알아서 기억한다.
어느덧 양념장이 잘 베어진 닭갈비가 완성되었다. 그릇에 가득 담아 그 위에 대파와 내가 늘 음식 조리의 마침표로 사용하는 깨를 가득 뿌려주었다. 엄마로부터 받은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음식 위에 깨를 뿌리면 좀 더 정성이 느껴지고 생기로 가득해지는 것 같다.
드디어 완성된 닭갈비와 상추쌈. 상추 위에 닭갈비 한 덩어리와 야채를 넣고 엄마가 만들어주신 부추 무침을 조금 넣어준 후 쌈장과 마늘장아찌를 넣고 입 안으로 쏘옥 넣어주었다. 여러 음식들의 조화가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나타나는 맛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마음이 아픈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다. 하지만 아픔에도 우리는 서로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서로를 이해하는 공통의 목표 안에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서로를 도와준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음식이 바로 '쌈밥'이다. 물론 무조건 내 앞에 보인 음식들을 다 넣을 필요는 없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양만큼 넣어주면 된다.
두루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도덕책' 속의 진부한 말보다 나에게 맞는 사람과 잘 지내고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관계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수필'이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 넉넉한 크기의 상추 안에서 다양한 음식들이 서로 정답게 포개어진 채 하나의 맛으로 느껴지는 쌈밥을 인간관계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