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존중을 표현하는 방법_집밥]
갑오징어와 돼지고기 그리고 미나리
나는 봄을 좋아한다. 싱그러운 봄나물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먹을 수 있는 시대지만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들을 결코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중 미나리는 내가 학생에서 벗어나 첫 직장이었던 곳에서 연구 재료로 사용됐는데 지역별 미나리들을 만날 수 있는 꽤 의미 있는 기회였다. 맛과 향 그리고 영양 성분 함량들이 제각기 달라 신기하기도 했고 버려졌던 잎 부분에도 유효 성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 후로는 미나리를 통째로 씻어서 사용하게 되었다.
며칠 전 어김없이 미나리 한 봉지를 집어 들고 집에 왔더니 엄마가 오리탕을 끓였다며 저녁에 먹으라고 보내주셨다. 그리고 함께 넣어서 먹으라고 건네 주신 미나리 한 봉지. 이것은 오리탕인가 미나리탕인가. 엄마는 그저 듬뿍 넣어서 먹으라고만 하셨다. 그래도 이건 너무 많지 않나. 엄마의 마음이란 다 그런 걸까?
내가 두 번째 직장으로 장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난생처음으로 타 지역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온갖 종류의 장류들을 가득 싸 주셨는데 그걸 본 아빠는 '장류 회사에 입사하는 애한테 뭐 하러 싸줘?'라고 하시면서 가족들이 함께 깔깔댔었다. 물론 장류 회사에서 일한다고 해서 판매되는 장류 제품들을 맘껏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IT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는 확률적으로 높지 않겠는가? 실제로 가끔 전사 샘플링이라고 해서 신제품을 맛볼 기회도 있었고 임직원 할인을 받거나 소소한 이벤트들을 통해 장류 제품을 얻었기도 했고.
무튼 오늘의 집밥의 주재료로는 미나리를 정했으니 이제 부재료들을 정해야 했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갑오징어와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골랐다. 메뉴는 갑오징어 미나리 초무침과 돼지고기 미나리볶음으로 정했다.
(갑)오징어 미나리 초무침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메뉴이다. 이름만 들어도 입안에서 벌써 난리가 나기 때문이다. 초장의 깊이 우러나오는 매운맛이 단맛과 만나 조화를 이루고 새콤한 맛이 화룡정점을 찍는 순간, 미나리의 쌉싸름함과 만나 물결을 이루고 그 속에서 잘 익은 말캉말캉한 오징어들이 헤엄을 치니 그야말로 에헤라디야다.
돼지고기와 미나리는 우연히 며칠 전 음식 궁합이 좋다고 텔레비전에서 소개가 되었던 프로그램이 생각나서 해 보았다. 나름 식품 관련 전공자라 매체에서 나오는 '~라더라'라는 이야기를 맹신하는 편은 아닌데 맛있다고 먹는 사람들을 보니 나도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우리 집 냉장고가 미나리 풍년이니 지금이 딱 적합한 때다.
미나리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정갈하게 잘린 돼지고기 앞다리살 사이에 보일 듯 말 듯한 크기로 양파를 길쭉하게 잘라 넣었다. 그리고 볶아주었다. 식성에 따라 허브 소금이나 다른 양념들을 넣어도 좋을 것 같은데 고춧가루는 영 어울릴 것 같지가 않다. 그냥 직감적으로 드는 생각이랄까?
직접 맛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를 미나리의 향으로 감춰주고 느끼함도 잡아주어 담백한 음식이 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었는데 아삭아삭한 미나리의 식감이 또 다른 매력 발산을 해줄 것만 같아 다음번에 시도해 보고자 한다. 다만 미나리는 반드시 데쳐 먹으라는 엄마의 말씀이 동시에 둥둥 떠다니니 살짝 데쳐서 구워 먹어 볼 생각이다. 엄마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물과 땅에서 자란 갑오징어와 돼지고기가 미나리를 통해 멋진 음식이 되었다. 각기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이 가감되면서 완벽한 맛으로 변해 입 안이 즐거워지는 순간을 만들었낸 오늘, 건강까지 생각한 밥상인 것 같아 스스로 뿌듯하면서도 찡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20대를 갈아 넣은 꿈을 건강상으로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30대의 나에게 건강한 밥상을 대접했으니 더할 나위 없는 만족스러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