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존중을 표현하는 방법_집밥]
가지두부덮밥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인 사람일지라도 손이 덜 가는 식재료가 있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가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씹고 있는 중인지 아닌지 판단이 불분명한 가지의 식감이 이상해서다.
그런데 여러 요리 블로그를 보다가 가지와 친해질 수 있는 기발한 방법을 알아냈다. 바로 주재료인 가지를 사용하지 않은 척 세침 한 표정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지 속살은 연하고 무르므로 잘 으깨지고 맛이나 향 자체가 강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식재료들과 함께 섞어주면 먹는 사람은 요리해 준 사람이 직접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가지를 잘게 잘라 쌀과 함께 섞고 물을 넣어 밥을 지었더니 가족들이 가지가 들어있는 줄은 생각도 못하고 맛있게 먹더라는 일화 속에서 내가 얻어낸 결과였다. 겉껍질 부분의 색이 밥 색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사실 색 때문에 싫은 식재료는 없기 때문에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야채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잘 먹었다고 하니 어린 시절 음식을 가린 경력(?)이 있는 나로서는 솔깃한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가볍게 다른 야채들과 섞고 전분물을 당당하게 생략해 버린 내 맘대로 덮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비교적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영양학적으로도 훌륭한 가지를 나 몰라라 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는데 잘 된 일이다. 단순하게 없다고 치고 먹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또한 가지를 손질하는 방법도 쉽고 단순하다. 껍질을 벗길 필요도 없고 가지 자체가 단단하지 않으니 큰 힘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다다다닥 잘린다. 대신 요리를 하는 건지 소꿉놀이를 하는 건지 분간이 안 가는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냉장고를 탈탈 털은 재료들을 보니 두부도 넣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두부 반모를 잘게 썰어 한쪽에 놔두었다. 우선은 야채들에게만 포도씨유와의 만남을 허락하기로 하고 중 약불에서 즐겁게 어울리도록 섞어 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됐다 싶을 때(재료들이 점점 지쳐갈 때쯤) 미리 준비한 된장물과 아까 준비한 두부를 넣고 원하는 농도가 될 때까지 한번 더 섞어주었다. 이렇게 완성된 덮밥 소스를 따수운 밥 위에 살포시 올려주면 끝. 오늘 사용한 양념장은 된장이었는데 물에 풀어주면 된다. 된장국을 많이 조린 형태와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여기에 전분물을 넣어주면 일반적으로 알려진 진득한 덮밥을 만들 수 있고 나처럼 넣지 않으면 촉촉한 덮밥을 만들 수 있다.
입 안으로 한가득 넣어보니 정말 가지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야채들은 섞이다가도 혼자 툭 삐져나와 자신을 드러냈지만 가지만큼은 조용했다. 곰곰이 덮밥을 삼키다 보니 가지가 내공이 깊은 식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 가지.
'가지'두부덮밥으로 불리는 순간 '가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알면 알수록 매력 있는 식재료인 가지 덕분에 오늘은 워런 버핏과의 점심 식사보다 값비싼 한 끼를 먹을 수 있어 뿌듯한 하루였다. 좀 더 가지에게 관심을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