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마지노선을 정하기
어떤 일을 할 때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도리어 해가 되는 법이다. 요즘 그 생각이 더욱더 짙어졌다.
그 시작점은 한 지인으로부터였다. 작년 쇼핑몰 회사에서 CS 업무(고객 응대 서비스)를 시작한 지인은 지금까지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클레임 전화를 안 받은 날이 없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인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나름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신선한 날것의 느낌을 주는 클레임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기적인 기간마다 이미 들었던(그런데 얼토당토않은) 내용의 클레임 일화는 꽤 인상적이기까지 했는데 동일한 고객이 동일한 클레임을 동일한 간격으로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짜증 한번 내고 다른 쇼핑몰에서 구입을 할 법도 한데 참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한 고객이다.
클레임 태도도 다양했다. 다짜고짜 욕부터 해대는 고객(욕으로 하면 정상적인 대화가 어렵다는 걸 모르나 보다), 소리를 하염없이 질러대는 고객(고음 대결하는 곳이 아닌데 말이죠),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고객(한 명과 대화를 하는 건지 두 명과 대화를 하는 건지 헷갈릴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만 하는 고객(상담사의 설명이 정말 안 들리는 걸까? 안 들리는 척하는 걸까? 진지하게 궁금하다)이 꽤 많다고 했다. 온라인 상세페이지를 누가 보냐며 화를 내는 고객도 있다고 했다. 나(=완벽주의자)로서는 상세페이지를 제대로 읽지 않고 물건을 사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아무튼 아무리 넓디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하려고 애써도 이해되지 않은 사람들의 클레임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게 바로 내 지인이다. 울분을 토해내며 내게 이야기했지만 분명 굳건한 책임감으로 화를 참고 임했을 지인이기에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직은 말단 직원이라 맘대로 의사 결정을 할 수도 없을 테니 상부 보고와 연관 부서와의 전화가 필수적일 것이고 그로 인해 지체되는 시간과 그 사이에 또 걸려오는 전화들이 벅찬 순간이 왔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지인은 결국 병가를 내야 했다.
나 역시도 남이 알아주든 말든 내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려 최선을 다했다. 때로는 내가 속한 곳에서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보니 무능력하고 의지박약에 일머리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때도 있었지만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무리를 해서라도 해내려 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미덕이라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인정도 받았다. 하지만 자신 있었던 건강의 일부를 내려놓아야 했다. 큰 변화를 겪었던 나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너무 애쓰지 마. 다 스트레스로 인한 거야."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마음에 나도 지인도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생채기를 내면서까지 달렸다. 그런 모습을 안쓰럽게 여기신 하나님이 보다 못해 '넌 좀 쉬어야 한다니까!' 하시며 생사를 넘나드는 수준은 아니지만 반강제적으로 쉬어야 하는 수준의 아픔을 잠시 주신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다행히 나는 잘 회복되었고 지인 또한 잘 회복하고 있다.
'최선' 앞에 '적당한'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적당한 최선',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느낌이다. 애매모호하지만 나만의 마지노선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사실 애초에 '최선'이라는 의미를 수치화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한 일이므로 고민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단,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센스는 필수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최선'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기본적인 의미를 알고 있을 테니 거기서 내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정도면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