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극복기
늘 내 버킷리스트에는 '영어 프리토킹'이 적혀 있었는데 여전히 현재 진행 중에 있다. 그나마 실험실 생활을 하던 시절 함께 했던 외국인 박사님들 덕분에 문법에 딱딱 맞진 않아도 기본적인 '소통'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영어를 그나마(?) 자유롭게 구사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공부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실감했던 건 실험실 생활에서 벗어난 지 6개월가량 지난 후 다시 실험실을 방문했을 때였다. 외국인 박사님과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말문이 턱턱 막히는 거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영어로 말을 내뱉는 상황들이 점점 사라지다 보니 기초적인 감각마저 점점 상실해 버렸고 어느 순간 선뜻 내뱉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일들에 집중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의지박약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픈 마음과 형편없는 실제 영어 실력의 차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마음의 차이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예전과 같은 실력마저 되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시도조차 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
중간중간 유료 영어 앱을 깔고 책을 펼쳐보기도 했지만 그때뿐 하다 멈추고 하다 멈추는 일이 반복되었다. 점점 영어를 포기해야 하나 싶어졌다. 그러던 내게 다시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준 건 다름 아닌 아이였다. 영어 유치원은 아니지만 워낙 영어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과 학습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 아이가 다니는 (일반적인 사립) 유치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관련 책들을 집으로 보내주었다. 아직 모국어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남편의 교육관으로 아이가 읽어달라고 할 때만 읽어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각보다 영어로 말하는 걸 재미있어했다. 아이를 지켜보다 문득 육아 관련 서적에서 읽었던 내용 하나가 떠올랐다. 상대적으로 청각이 발달한 아이들은 언어의 성조에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영어 발음 소리에 재미있어한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노래 듣는 걸 좋아하고 잘 따라 부르는 아이가 영어도 노래 듣는 것처럼 좋아하는 건가 싶었다. 농담으로 아이에게 'OO야 OO 이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어를 먼저 잘해야겠죠? 영어는 나중에 공부해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어쩌면 아이가 바라보는 '영어'는 내가 바라보는 '영어'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라고 감히 말하기에는 부끄러우나 적어도 성적이 잘 나오는 방법이라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 가지는 악에 받쳐 승부욕을 한껏 끌어올려서 기어코 점수를 잘 받아내겠다는 의지가 있는 경우,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재미있어서 몰입하는 경우이다. 둘 다 반드시 성적은 잘 나온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스트레스 정도가 다르다. 전자는 부정적인 감정이 깔린 경우다. 당연히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성취하지 못할 경우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가져야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다르다. 우선 재미있고 배움의 과정이 즐겁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순수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행하기에 실패를 하더라도 좌절하진 않는다. 그저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여유로움도 가지기에 부담감도 적다. 이왕이면 후자의 마음가짐으로 배우는 자세가 여러모로 이득이다.
아이는 후자의 마음으로 영어를 바라봤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분명 전자의 마음으로 영어를 바라봤을 것이다. 영어를 잘 해내야겠다는, 영어를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무의식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음을 아이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경력 단절'이라는 네 글자가 나에게는 크나큰 '주홍글씨'였을까? 그 글씨를 지우기 위해 애쓰고는 싶은데 완벽주의적 성향이 자꾸 나를 게으르게 했을까?
2025년의 하반기, 7월이 이제 끝을 향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영어에 대한 마음을 바꿔보고 싶다. 잘하는 영어, 잘해 보이는 영어가 아닌 재미있는 영어, 소통이 돼서 즐거운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 남은 2025년에는 아이와 함께 아이처럼 영어를 바라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