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모습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완벽할 내 모습

by 코코 COCO

오랜만에 대학원 실험실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동기 오빠 K와 동갑내기 친구들 5명, 총 6명이다). J의 결혼식을 끝으로 여태 만나지 못했던 얼굴들이었다. 졸업 후 타 지역에서 출퇴근을 하고 결혼이라는 삶의 큰 변수들을 맞이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남의 횟수는 줄어들었다. 상가상 코로나까지 터져 4여 년이라는 시간이 나버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B가 모이자는 연락을 해왔다. 모두들 반가운 마음으로 응했다(아쉽게도 개인 사유가 생겨버린 B는 참석을 못했지만). 에너지 넘쳤던 20대의 만남이 어느덧 30-40대에 접어드니 대화의 결도 자연스레 연륜이 묻어났다. 그리도 모두들 자기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부러웠다. 나만 도태된 기분이었다. 이름 석자를 내놓을 수 있는 곳이 이제는 교회와 이런 지인들의 만남뿐인 내 눈에는 친구들이 모두 멋져 보였다. 일을 하며 겪은 힘든 일들이 성공의 주춧돌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친구로서 기뻤고 한 때 같은 계열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부러웠다. 학생 시절의 모습으로 서로 장난을 치고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분명 그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그러다 나의 안부를 묻는 친구의 말에 아에 여전히 전념 중이라고 했더니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네가 부럽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내가 부럽다고? 백수인 내가? 뒤이어 들려지는 이야기를 어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10여 년을 한 직종에서 종사하다 보니 그 일이 지긋지긋하더란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번아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J는 일하면서 새로운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K 오빠는 새로운 부서로 인사이동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Y는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앞두고 있었고 C는 꾸준히 운동을 하며 신체와 내면을 가꾸고 있는 중이었다. 오지 못한 B 역시 육아 휴직 후 복직에 성공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영어 공부를 다시 하겠답시고 책만 준비했던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그런데 그런 내가 부럽다니.

일을 하지 않는 자유뿐만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자유까지 포함된 '부러움'이었을까? 현재 나는 예전과 같은 동일한 직업을 갖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내가 좀 더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글쓰기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장소가 바로 이곳, 브런치 앱이다. 부족한 글솜씨임에도 용기를 내어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멈춰버린 내 인생의 커리어를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한 나름의 의지였다


물론 수많은 생각의 벽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긴 했었다.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글을 쓸 수 있을까? 꾸준히 쓸 수 있을까? 소재가 고갈되면 어쩌지? 조회수가 있기는 할까? 잘할 수 있을까? 브런치 앱에서 작가 신청을 하고 승인을 받은 건 훨씬 오래전이었지만 이렇게 주기적으로 글을 쓴 건 겨우 1년을 넘어선 상태이다. 새내기 아마추어 작가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이 쓴 글이라며 보여준 적 없는 글들을 조심스럽게 브런치앱에 올리 중이다. 그러한 사실을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만 있었는데 친구들의 만남을 통해 좀 더 특별해졌다.


"다행이다. 나도 뭔가 하고는 있었구나."


'완벽한 모습'이라는 건 정의할 수 없는 특별한 '개념'인 것 같다. 내 눈에는 완벽한 모습도 정작 당사자에게는 별 볼 일 없는 껍데기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내가 지닌 이 별 볼 일 없는 껍데기가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모습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반된 개념이지만 친절하게도 둘 중 하나의 개념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그 권한, 제대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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