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상태
2025년의 7월이 끝났다. 벌써 하반기의 1/6이 지나가버렸다. 매일 핸드폰으로 날짜를 봤음에도 막상 남편의 여름휴가와 아이의 여름방학이 끝나니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사실이다.
25년을 맞이하며 나는 드디어 선택 한 가지를 완료했다. 바로 불렛저널 양식 정하기(뭔가 대단한 일이었을 거라 기대했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틀에 박힌 다이어리는 싫어 매년 쓸까 말까 고민만 하던 나에게 자유롭게 양식을 정할 수 있는 불렛저널은 굉장히 매력적인 다이어리였다.
바로 인터넷과 sns에 올라온 불렛저널들을 검색해 보니 각기 자기만의 감성과 센스로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똥손, 노트정리 꽝인 내가 다이어리를 꾸미는 일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요소들만 쏙쏙 들어간 양식을 찾는 게 필요했다.
내가 직장을 다니진 않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난무한 육아의 세계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내게 주어진 역할들을 해내려면 주부 역시 하루를 계획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나 사소한 부분까지 자동적으로 신경 쓰는 시스템이 두뇌에 장착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중요한 삶의 태도다. 그래야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원하는 순서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지 않아도 덜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육아에만 집중하다 보니 소홀해지는 가정 또는 개인적인 일정도 잊고 넘어가는 불상사도 예방이 가능하다.
하지만 난생처음 써보는 불렛저널, 이왕이면 제대로 쓰고 싶어 하는 욕심이 점점 커지다 보니 결국 매번 고민만 하다 끝이 났고 그렇게 한 해를 넘겨버렸다. 누군가한테 보여줄 것도 아니고 오롯이 나를 위해 내가 쓰는 건데 양식 따위가 뭐가 중요하다고 이렇게 고민만 하는 건지.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들지 않았다. 답 없는 고민 끝에 문득 자유로운 양식 설정이 가능하다는 불렛저널의 특징에서 언제든지 양식을 바꿀 수 있음을 인식해 보기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니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이 별거 아닌 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또 다른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불렛저널을 쓸 노트와 펜을 고르는 일이었다. 직접 매장에서 보기도 했지만 종류가 인터넷만큼 다양하지 않았고 딱히 마음에 드는 제품도 없었다. 사람들의 리뷰와 사용후기, 제품의 상세페이지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내가 원하는 요소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먼저 노트를 구입하기 위해 적당한 크기, 모눈종이, 하드커버, 글자비침 없는 적당한 두께, 가격등을 찾아 비교해 보았다. 고르고 고른 두 개의 제품에서 고르는데 시간이 걸렸다. 모든 부분에서 최고점을 받았지만 비싼 편이었던 A 노트와 두께 부분에서 비침이 있다는 말에 고민이 되었지만 가성비로는 가장 만족스러운 B 노트 사이에서 마음이 갈팡질팡 했는데 처음 시도하는 만큼 굳이 비싼 걸 구입할 필요가 없었기에 최종적으로 B 노트를 구입했다.
펜은 구입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펜을 구입하려 했지만 집에 굴러다니는 수많은 펜들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분명 내가 산 펜들이 아닌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펜들을 받아왔는지 모르겠다). 또 인플루언서들처럼 내가 쓴 불렛저널을 사진으로 찍어 올릴 것도 아닌데 굳이 펜까지 신경 써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된 나의 불렛저널은 꽤 순조로웠다. 나름대로 스티커도 붙이고 색깔도 넣었다. 작심삼일을 지나 작심 삼 개월을 넘어설 때는 뿌듯했고 오랜만에 성취감도 느꼈다. 하지만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 날씨가 시작되면서부터 이상하게 내 의지는 점점 사그라들어버렸고 급기야 내가 불렛저널을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조차 깜박하고 말았다. 바로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불렛저널을 쓰는 게 점점 무뎌졌던 6월을 되돌아보며 원인을 찾아보았는데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다. 다이어리 꾸미기 장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꾸며보려 했던 활동들이 주원인이었다. 하고 난 후 만족감이 분명 있었지만 동시에 뭔가 부족하다는 아쉬움과 귀찮은 마음이 공존했다.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마음들을 억누르려 한 것 같은데 결국 터져버렸나 보다.
쓰고자 했던 나의 의지를 스스로 느꼈던 부족함과 귀찮고 부담스러운 마음이 막아버렸다. 사소한 부분이고 무시해도 문제없는 것들 앞에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강렬하고 단단했던 나의 의지가 꺾인 것이다. 어릴 때부터 '꾸준함'이라는 건 하고자 하는 '의지'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불렛저널을 통해 '꾸준함'은 나에게 있어서 부족하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상태'여야만 쭉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메타인지'라는 용어가 생각났다. '메타인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다. 능력 밖의 일들을 하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내가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정확히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 한다.
'꾸준함'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쭉 해내기 위해서는 해낼 수 있을 만큼을 하면서 점차적으로 완성도를 높여가야 한다.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의지만 가득한 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사실 불렛저널의 진정한 의미는 꾸미기가 아닌 삶을 계획하는 도구일 뿐인데.
능력과 실력에 비해 의지와 목표가 지나치게 높지는 않았는지를 되돌아보며 실행에 옮기지 않거나 꾸준히 하지 못했던 나의 계획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해 나가야겠다. 25년의 연말이 기대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