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케이크의 [ 꿈 ]
44세에 떠난 프랑스 제과 유학
꿈이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당장 계획을 하고 실행해보세요.
다른 이의 의견은 들을 필요 없고
내 마음이 무얼 하고 싶은지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세요.
나는 어릴 적부터 달콤한 상상이나 공상을 즐겼고. 그 상상이나 공상을 하면 꼭 이루려고 노력했다.
물론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의 과정에는 절대 한 번에 되는 것은 없었고 오히려 실패가 더 많았다.
14세 때에는 나의 미래 직업이 막연히 음악가였으면 좋겠다 하며 피아노와 바이올린, 독학의 기타를 열심히 배웠고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클래식 음악보다는 대중음악에 푹 빠지게 되었는데.
초등학교를 마치고 엄마와 나 여동생은 일본으로 이주하고 일본에서의 적응도 하기 전에 방학 때면 한국을 연신 방문했다. 당시 기억으로는 연예인
가수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의 인연으로 나는 커서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사회의 경험이 없던 내가 생각했던 방송국은 카메라맨과 연예인만 있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다니며 한국 방문중 좋은 기회에 방송작가를 하게 되고 인생에서 첫 꿈을 이뤘다.
나는 살면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무언가를 도전하고 용기가 필요할 때 그때의 처음 이뤘던 꿈의 과정을 다시금 되짚어 보고 힘을 내곤 했다. 이제 결혼도 했고 무엇보다 우리딸아이가 4살이 되었을쯤에 유학을 고민하고 신랑 허락하에 유학 준비를 속전속결하고 떠날 준비를했다. 그러나 열흘 앞둔 어느 날 아이의 이상함을 발견하고 인터넷으로 비슷한 증세를 찾아보니 가와사키 병이었다. 어른 2-3명이 돌봐도 어른이 지칠 정도로 늘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다.
우리 딸이 멍하니 있거나 눈은 빨갛게 충혈이 되고 입술은 말라 보랏빛에 손톱도 적포도주 색으로 변해갔고 병원에 진찰을 받아도 의사는 가와사키가 병이 아니다 라고 말했지만 엄마의 촉으로 다시 진찰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검사 결과 가와사키 진단으로 판명이 났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에 아이와는 병원을 두 번 같이 갔고 엄마로써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아이에게
바이올린과 바이올린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었다.
비록 1년 과정 유학이지만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딸아이에게 최대한으로 해줄 수 있는 내 마음이었다.
이제 떠나는 날 공항에서 아이는 아직 어려 아빠가 쥐어준 스마트폰만 볼뿐 엄마와의 이별은 직감 하지 못하였다. 엄마 공부하고 올게 라고 말해도 아이는 엄마를 1년간 못 본다는 걸 알리 없다. 내가 유학을 떠난다고 주변 사람에게 말을 했을 때 가족들은 오히려 다녀오라 학비의 반을 대주기도 하고 내가 결정한 일에 대해 너무 적극적으로 나왔지만 평소에 만나면 웃고 친할것만 같았던 친구나 우리 남편의 친구들과 그들의 아내들은 나를 아이를 떼어놓고 가는 파렴치로 몰아가며 비난을 해댔다
우리 신랑친구중에 고등학교 친구가 있는데 백인친구로 울 편과는 피부색을 달라도 형제보다 더 친한데 그의 아내는 필리핀 사람으로 나와는 그렇게 친하지 않는 관계인데 내가 유학을 그것도 프랑스로 간다니 내개 했던 말과 행동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래, 네가 거길 다녀오면 얼마를 버느냐며 소리를 질러댔고 열심히 설명하다가 내가 이사람한테 왜 이런 설명을 해야하지 라고 느끼는데 상대는 비난을 멈추질 않았다.
그집 와이프는 그저 제삼자일 뿐인데 왜 이렇게
나를 비난 하나 설명하다 지쳐 내마음이 속상한지고 나도 모르게 벌컥 눈물이 났다. 너무 서러웠다. 나는 내스스로가 똑똑하지 못한지 그떄는 이사람이 나에대한 애정이 좁쌀 만큼도 없어 그러는지 몰랐었다.
그리고는 내가 떠나기 전 그 두 부부는 또 우리 지역에 호텔을 잡고 놀러왔고 나는 그집 와이프를 너무 만나기 싫었는데 그때 그사람이 자신의 아내에게 소리지르고 화낸걸 알리 없는 남편은 떠나기 전에 그 친구를 한번 더 보자 해서 마지 못해 아이를 데리고 그들이 묵는 숙소로 갔다. 남자들은 술한잔 하러 내려가고 그 사람의 여동생도 마침 호텔방에 있었고 음악을 크게 틀고 아이들과 방에서 놀아주는
동안 나는 그 두달전에 이사람에게서 느꼈던 그
공포감을 또 다시 느껴야 했다.
화는 났지만 우리 남편의 친구의 와이프여서
나는 화를 낼수가 없었는데 이사람은 도대체
날더러 절대 유학을 가지 마라 라며 끝까지
비난했고 그런 비난을 2시간을 넘게 또 들어야 했다.
나도 도저히 상대의 가시 돋힌 이유없는 비난에 가만있을수 없어서 나도 화를 냈고 바로 남편에게
전화 해서 빨리 집에 가야겠다며 알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떄의 일과 그날 일어난 일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자리에 없었으니
누구의 편을 들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 너무 분개했다.
그렇게 떠나는 날짜가 되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마음은 굳게 먹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학교입학등등의 과정들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생활 9년 만에 늦둥이 딸아이를 얻고 매일매일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산후우울증에 걸렸어도 병원도 다녀봐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산후우울증과 독박 육아로 살림이 너무 힘든데 무엇보다 주변에서의 아이 하난데 뭐가 힘드냐는 시아버지의 비아냥에 매일매일 마음이 무너져도 희미한 정신력으로 버텨왔다.
시아버지는 너만 애 낳았냐? 애 하나 가지고 뭐가 힘드냐? 돈도 안 벌면서 집에서 편하게 있으니 할 일 없어서 우울증 걸린거라고 말할 때는 세상을 정말 등지고 싶었다. 나는 매일 생활이 우울하면서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정신력을 동원해 머릿속의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
나는 나를 찾고 싶었고 내가 아파서 예쁜아이를
예뻐하지 못하고 내의지없지 아이 엉덩이를 때려줄때는 내가 왜이러는지 내자신이 너무미웠지만
아이가 예쁘다고 느끼는 그 찰나의 기회를 실오라기 잡듯 내 머릿속에 자꾸 주입 시켰다.
내가 빨리 산후 우울증이 나아서 예쁜우리딸
제대로 크는거 보고 싶다.
산후 우울증과 싸워가며 매일밤을 내마음으로 기도했다. 행복해지고싶다 라고
나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
주변의 비난은 중요하지 않다.
쿠키를 처음 만들 때 결과가
실패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그 과정을 끝까지 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어린 딸을 남편에게 맡겨 두고 2017년 2월 프랑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공항이라 그런지 2월 겨울날의 추위는 더 춥게 느껴졌다. 아이는 세 살 때에도 혼자 씩씩하게
스쿨버스 타고 뒤도 안 돌아보고 유치원 가던
아이라 잠시 헤어짐에 불리불안은 걱정하지도
않았지만 그날의 공항에서는 아이와 신랑을 뒤로 한채 우리 곧 보자라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노르웨이를 경유해 프랑스에 도착하고 학교 입학 후에도 집을 구할 수 없어 큰 난관에 부딪혔다.
프랑스에 도착한 지 2개월 만에 집을 어렵게
구하고 은행도 오픈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며
간간이 들려오는 아이의 건강상태와 병원에서
진료받는 사진도 받아 보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학교 생활에 집중하였다.
학교에 입학하고 보니 아시아인 학생의 비율이 50명 정원에 42명이 중국사람이었다.
난 늘 젊은 마인드로 산다고 생각했는데 24세 어린 학생들과의 학교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나는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한국인으로서 중국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본토에서 온 그들은 대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원래 대학에서 컬러 너리 아트와 페이 스튜 리 아트를 전공 하긴 했지만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이 오고 여려 이유로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오른 유학길이었다. 배움에는 나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막상 유학을 해보니 내 나이도 한 몫했던 것 같다. 학교에서의 중국인들의 텃세는 이루 말할 수 없었고 하루는 편두통에 잠을 설쳐 늦게 일어난 날 학교를 늦게 간 적이 있었는데 중국인 학생들이 내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나마 프랑스 셰프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학교를 마쳤고 프랑스 제과 기술을 배우는 것도 큰 행운이었지만 여행으로만 열흘식 다녀 봤던 유럽에서
학교 1년 과정을 들으며 학교 밖에서의 또다른 큰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
이 글을 실시간으로 읽으시는 분들에게 인생의 전환을 고민 중이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꼭 추진하라 라고 말을 해주고 싶고 우리가 100년을 산다고 할 때 1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1년 프랑스에서 제과기술 배우고 그 후에도 프랑스로 연수겸 매년 방문을 하는데 프랑스의 유학은 나에 삶에 큰 변화를 주었고 해외유학이 아니더라도 뭐든지 작은 것부터 뭔가 이루는 성취감을
느껴보면 확실히 발전하는 나를 보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