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체리와 같은 [인간관계]
오롯히 나에게만 집중하는 삶
내가 일하는 Fine dining restaurant 직장에서 일하다보면 우와 탄성이 나올만큼 최고 퀄러티의 재료들을 매일 만난다. 신기하게도 키친에 있으면 다른 잡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롯히 알록달록 천연 자연색 빨갛고 탐스러운 산딸기 라즈베리, 기분 좋아지는 샛노란 레몬들과 비롯해 샐러드에 쓰이는 푸릇푸릇 마이크로 그린 풀들 까지 수십박스에 가지런히놓여있는것을 보면 식자재를 보는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된다.
부엌에서의 나는 열심히 하므로 내 자존감도 평온하게 유지중이다. 요리를 하다보면 같은 레몬이라해도 그 종류가 너무나 많다
마치 우리인간이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 진것 처럼 말이다. 우리가 흔히 마켓에서 구매하는 레몬의 종류는 Libson Lemon (립슨 레몬) 이고 Meyer Lemon (마이어 레몬), Eureka Lemon (유레카 레몬),Budda hand(부처님 손 레몬)외에도 사촌쯤에 해당하는 Lime(라임), 제주도의 청귤, 필리핀 칼라만시,오렌지,자몽등이 있다. 레몬뿐만 아니라 딸기, 체리, 호박, 가지, 양파, 흔히 먹는 파 까지 나라마다 생김새와 맛도 조금씩 다르듯이 마트에서 레몬이 필요할때 눈으로 감지해 노란색을 찾으면 레몬 이다 하며 쉽게찾을수있으며 대부분 주부들은 가격만 보고 사는경우도 많다.
어느 누구도 그저 과일이나 야채를 사는것 뿐인데 어디 출신이고 성분은 무엇이 있으며 어떤 땅에서 어떤 비료를 먹고 자랐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그런것들을 꼼꼼하게 따지며 구매하는 소비자는 업을것이다.
나는 셰프로써 매일 매일 재료들을 공부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체리나 딸기도 우리 인간들처럼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과일은 시다.
과일이 어느정도 여물어야지 수확도 할수 있고 제품으로도 쓸모가 있어지며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단맛이 완성이 될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먹는 음식 재료들에서도 우리 인간의 모습과도 많이 닮은 부분을 볼수 있듯이 때로는 과일 보다 못한 사람들을 접할때가 있다.
한때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오롯히 집에서 엄마역할을 하며 아이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이가 학교를 가지 않을때는 공원에서 놀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말을 걸어오는 아이 엄마들도 종종 있었다.
대화를 잠깐 나눈것뿐인데 연락처를 물어보면 거절을 하지 못하고 내 전화번호를 전해줄때가있었다.
그렇게 전화번호를 건낸후에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전화 한통을 받아 보지 못했다. 육아가 너무 바빠 그런 사람들을 자연스레 잊게 되기도 했지만 그런 사례들이 빈번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통계를 내보게 된것이다.
아이가 3살부터 4살때까지는 초등학교 안에 있는 유치원을 다니며 스쿨버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다른 아이 부모들과의 교류도 전혀 없었고 후에 학교를 가게 되면 어떻게 대처 해야는지 어떠한 복병이 올지를 이땐 절대 알지못했다. 아이가 5세가 되면서 집근처 일반 초등학교를 입학 하고 첫 두달간은 너무나 행복했다.
아이 미취학 전에 만났던 몇몇 엄마들의 수다와 험담으로 왕따를 경험한 적이 있어 그만 그만한 아이를 둔 엄마들이라 어딜가든 마주 치게 되어서 그때는 산후우울증과 더불어 공원 공포증, 실내 놀이터 공포증이 더해 밖을 되도록이면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새로운 사람들로 가득차 나의 내면이나 심리도 한층 좋아졌다.
그렇게 한학기를 조용히 마칠줄 알았지만 아이가 학교를 다니며 생일초대 받아보고서 자신도 파티를 해달라고 해 아이를 통해 만나게 된 내 아이의 친구들의 부모들을 만나게 되고 우리아이와 같은반 이라 인사를 하고 나서도 그냥 눈 인사만 하고 싶었다.
사람의 만남은 제일 먼저 전화번호를 주고 받는것이 예우인가 라며 예전의 겪었던 것들이 또 다시 반복되는것만 같았다. 아니 반복되어졌다. 예전에 같은 일을 겪고 난후 사람들과 만나더라도 연락처는 절대 주지 말자 그렇게 스스로 다독이고 말 연습도 하였지만 나는 그런 결심을 해도 막상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똑똑하게 대처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상대의 갑작스런 요구에 내 연락처를 주고 말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외동아이를 위해 그래도 친구는 있어야지 하며 눈 딱 감고 이번엔 예전처럼 힘들었던 반복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학교에서 마주치는 학부형들을 보면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가 사귀게 된 아이들은 6명인데 모두들
필리핀계 미국인이고 백프로 외모는 필리핀 사람들이다. 영어는 하지만 따갈로그어 엑센트가 강한 영어발음을 사용했다.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말해보자면 필리핀 사람들은 남자 여자 상관 없이 상대에 대한 시기 질투가 상당히 많다.
자신 보다 별 인간이 아닌거 같은 상대방이 자신보다 조금 더 우월한 느낌이 들면 상대를 까 내리며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만나 본적있다. 주변에 이런 타입의 사람이 있다면 절대 친해지면 안된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를 자기 수준으로 끓어내리고 자기들 수준으로 싸움을 건다.
애초에 이런 사람들은 우리들과 친해질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므로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쉽게 친해지고 친절하지만 돌아서면 무섭다. 그 인종이 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주변에 얼굴만 아는
필리핀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은 보면 반갑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 다르지 그런 생각때문에 그렇게 당하고도 또다른 새로운 필리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또 반복되는 인간관계에 나는 내 자신을 많이 탓하였다. 어느 나라를 말하기 보다는 어느 인종을 떠나 엄마라는 세계는 무섭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하고 만난 한 엄마는 내게 첫인사를 하며 부동산 명함을 전해주며 집을 팔아야할땐 꼭 자신을 찾아달라며 다른 에이전트한테 가면 서운할거 같다라는 말을 해서 나는 학교앞 교문에서 심기가 불편해졌다. 우리는 서로 모른다.
그저 아이를 통해 만나게 된 것 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주는 명함을 받아들긴 했지만
그사람이 돌아서자 마자 그 명함을 내 가방에 쑤셔 넣었다. 사실 이런 반복적인 무례함에 화가났다.
너무나 일방적인 상대의 행동에 대해 사람 공포증이 생길거 같았다.
그후로도 계속 학교 교문앞에서 학교문이 열리기 기다리는 동안 그 학부형 엄마는 나를 보고
반갑다고 다가와 말을 건내며 자신의 현 남편이 재혼남인데 그전남편은 인간도 아니다라며 자신의 지난 결혼생활에 대해 왈고 왈고 해댔다. 나는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다. 그때는 정말 그 사람을
멀리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후에는 미리 일찍
학교 주차장에서 차를 대기하고 차에서 기다리다 그학부형 엄마가 교문에서 떠나는걸 보면 그때서야 내아이를 픽업하곤 했다.
아이를 픽업하고 나오면 또다른 학부형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되고 또 인사하고 다음날 피하면 또 다른 학부형 만나고 그렇게 6명의 늘 그룹으로 모여
다니는 그 학부형들을 피해도 계속 만나지게 되었다.
엄마 모임은 언제 가질거냐 문자가 오면 밥을 사주러 나가야 했고 내가 그사람들이 좋아하는 한국 불고기를 식당에 데려가 대접해줬어도 받아 먹는건 그때 뿐이다. 그들은 나에대해 궁금한게 많은거 같았다. 무엇을 나느냐 어디서 학교를 다녔냐에도 내가 프랑스로 유학을 했다는것을 답변으로 듣고는 불만의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미쳤다 미쳣어 아이를 두고 그나이에 유학을 가다니 완전 미쳤어 그집엄마 말이야 라는험담과 함께
그들은 내 위신을 떨어 트리려고 안간힘을 쓰는것이 부던하게도 보였다.
우리 아이 생일날 6명만 초대한 인원에 학교의 학부형들은 부부동반6쌍에 그들의 같이 살고 있는 시어머니 장모님까지 온가족을 데려와서는 우리집 일층 이층을 다니며 안방까지 들여다 보고 돌아갔다.
나는 그때 또 직감하였다. 학교다니는것이 쉽지는 않겠다 이제 아이는 학교를 시작인데 이런 불통이 있었다.
그때 부터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것이 큰 곤혹이었다. 거기에다 내가 알고지내고 싶던 엄마까지 그들과 합세해 철저히 나는 고립 되어졌다. 매일 매일 아이를 먹이고 가르치고 돌봐야 하는데 머릿속은 온통 속상한 일로 가득차 있었다. 이미 경험 해본 것에 또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평소에 즐겨하던 명상은 더더욱 되질 않았다. 나는 잘못한것이 없는데도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았다..
이말은 어떻게 해석 해야 하나요?
나는 행복한데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
사실 그런일들을 겪기전에 난 이미 산후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도 받아보고 했지만 큰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정신과 상담을 두번째 방문했던날 상담사는 나와의 소통이 어려웠는지 언성을 높이거나 프린트지를 주면서 학교의 시험문제 풀듯 알수없는 질문을 읽게하며 답하게 했는데 밀폐된 공간에서 그 상담사의 말에 정신이하나도 없었다. 나는 상담 치료를 받으러 온것인데 상담사가 프린트지의 질문을 하면 내가 대답을 못할까봐 불안해서 덜덜 떨었다. 그 공간에서 빨리 나오고 싶어서 대충 대충 다 이해 했다고 얼버무리고는 탈출할수 있었다.
첫날의 상담사는 내가 생각했던 방식이 아니고
주로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왔다. 56세에 늦게
시작한 공부는 66세가 되어서 학교졸업도 하고
인턴도 했다며 자신의 힘들었던 학교생활을 말해주었다.
첫날은 그 사람을 잘모르고 상담도 처음이라 원래 이런건가 싶었는데 마음이 아파서 찾아간 정신과 상담과는 달랐고 내게 더 심한 우울감을 주었다.
두번째 상담을 갔던날 그곳을 빨리 나와 로비로
나온후 메니져를 찾았고 다른 곳에서 상담 받고
싶으니 연결을 달라 물으니 다른곳도 환자가 너무 많으니 어떠한 선택을 할수 없을것이다 말해주었다. 사실 내 담당 상담사가 언성을 높이고 프린트지를 내 다리에 탁탁 치며 나를 모욕감을 준것은 병원 메니저에게 사실 말하지 못하였다.
메니져와 대화 하면서도 그저 나는 그사람들한테는 아파서 온사람인것이었다. 이곳이 정신병원 상담하는 곳이 아니고 일반 식당에서의 불미스러운일을 컴플레인을 했다면 메니져가 사과를 하던가 뭔가 해결이 되었을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아무런 불평을 못하였다.
머릿속이 너무나 혼란했다. 우울증이 낫던지 안낫던지간에 상담을 받아보기라도 하고 내 방향을 정하고 싶었다. 정신과 상담을 가서 이런 대우를 받는다면 나는 내가 우울증이 있어 무기력하고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절대로 입밖으로 꺼내지 않을것이다라는 맹세를 했다.
그렇게 성과 없는 병원을 나와 주차장에 주차되있던 내 차에 올라타고는 눈물이 났다. 그리고 생각을 깊이 했다.
처음에는 상담사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모욕감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고 내가 무슨 컴플레인을 하더라도 나는 정신과에 온 환자이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미친 사람 취급 받겠다 싶은 생각을 해보니 죽느냐 사느냐 문제를 내게 스스로 물었다.
우울증을 버리고 행복하게 살것인가? 우울증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올바른 정신에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기를 바랄것인가?를 주차장에 앉아
4시간을 생각했다.
나는 만번넘게 되네었고 우울증 버릴거야 마음 단단히 먹을거야 하며 집으로 향했다.
매일 매일을 기분이 낳아지도록 책도 많이 읽고 그동안 어려워 묵혀 놓았던 수학 문제도 풀어보고 나의 반응을 보며 내 스스로에게 묻고 글을쓰고 기록했다.
이거 해보니 어때? 기분이 좀 나아졌어? 라고 내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면 계속 수학 문제도 풀어보고 완성 못해본
뜨개질도 해보고 한번도 도전해보지 못한 인물화도 그리다가 우울이 올라올땐 또 우울함을 한없이 바라보고 그런 연습을 많이 한결과 신기하게도
우울증이 점점 없어 졌다.
자신감이 붙어 우울증이 없을때는 우울증이 올걸 대비해 무엇을 하면 기분이 나아질까를 찾아 미리 미리 내수첩에 적어 놓거나 내마음속에 쟁여논다.나는 우울증약을 단한번도 복용해본적이없다
나는 어느 때보다 마음도 편하고 어떻게 해야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들을 치유해야 하는지 여러방식으접근 하고 꼭 실행을 해보는 연구를 내스스로 해본다.
그 방식은 너무 간단하다. 내 마음이 동전이라고 생각했을때 뒷면이 우울증이고 동전 앞면이 밝은면이다.
내마음의 밝은면을 동전 뒤집듯이 앞으로 뒤집으면 된다. 간단한거지만 막상 해보면 처음이 어렵지 그렇게 하려고 조금씩 노력하고 의지를 보이면 진정한 나로 돌아오는걸 내가 제일 먼저 알아채린다.
무기력해서 일어나기 싫어도 씻고 앉아서 잘하지 못해도 나를 꾸며보자 시도해보지 않았던 빨간 립스틱을 발라 보자. 손이 가는데로 예쁘게 하려고 하지말고 내 기분이 나아질때까지 얼굴에 화장도 해본다.
화장이 완벽할필요도 없다. 기분이 나아지는것
같으면 기분이 나아질때까지 머리에 떠오르는것들을 조금씩 해보는거다. 외출할때는 최대한 외모를 꾸미고 귀에는 귀걸이를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입술에는 빨간색이나 핑크색의 립스틱을 연하게 바르고 나간다.
남들은 신경쓰지말고 오롯히 나에게만 집중한다. 집에 하루종일 있거나 외출하기 전이라도 침대에 눕던 소파에 눕던간에 10분이던 30분이던 명상 음악을 켜놓고 눈을 붙히고 낮잠을 청하듯 조용히 편하게 누웠다가 일어나고 계속 생각 날때마다 하면 내자존감도 나를 사랑하는 마음도 확 상승한다.
우리는 사람에게도 위로를 받지만 때로는 그외의 것들에게서 큰 위로를 받을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라 가끔은 생명이 없는 작은 물건에서도 큰 위로를 받는다. 나는 사람에게 의지 하지 않고 내가 하는 방식으로 나를 달래고 내마음을 다잡는다.
그렇게 달래진 마음은 5일에서 때론 10일 한달까지도 유효해서 그렇게 기간을 나눠 힘내서 오늘을 살아간다. 내가 겪은 좋지 않은 경험들은 누군가에게 토로 하며 말하면 말한것에대한 후회가 있지만
내자신을 절대 나를 배신 하지 않으며 정말로 살아야겠다 생각이 들때는 꼭 글을 쓰자 우리 주변에
레몬이나 체리같이 신맛을 가진 사람들을 뒤로
하고 오롯히 나만 바라보는 삶을 사는것이 내 자존감에도 좋고 엄마가 행복 해야지 아이도 잘 돌보게 되고 행복한 나날들을 보낼수가 있다.
언젠가 부터는 다른 제3자에게 이렇쿵 저러쿵 말을 하지도 않고 나른 힘들게하는 타인에게 어떠한 힘듦의 에너지조차 내어주지 않는다. 나는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진짜 친구를 매일 매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