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만나러 가는 [새벽 출근길]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새벽은 어둡지만 그리 길지 않다
어두운 그 새벽이 나를 춥고 외롭게 하더라도
해는 언제든지 뜬다. 그렇게 뜬 해는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나를 더 강하게 일으켜 세운다.
Day 1
이른 새벽 시계를 보지 않아도 늘 일어나야 하는 이 시간은 밖이 아직 어둡다는 걸 방안의 찬기운으로 몸에 전달되어 알 수가 있다.
전날에 일하고 풀리지 않은 피곤함을 품은 채 이부자리에서 꾸역꾸역 일어난다.
페이스트리 셰프라는 직업 특성상 보통 새벽 3시 출근을 하는데 이러한 시간대에 일하는 곳은 주로 베이커리이다 프랑스에서 제과 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프랑스인 여성 셰프가 운영하는 동네 베이커리에 취직했다.
내가 프랑스에서 제대로 기술을 배워 왔어도 프랑스 셰프는 동양 여자가 프랑스 빵이나 갸또(케이크)를 만든다는 것에 인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레쥬메를 내고 인터뷰를 하고 속전속결로 단 이틀 만에 오케이 사인을 받고 첫 출근을 했다.
불이 켜지지 않은 홀을 지나 전등불이 세어 나오는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드디어 마주한 셰프와
작업장.
고요한 새벽이지만 작업장만큼은 프랑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불어와 음악으로 활기 찾다.
바삐 일하고 있는 셰프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눈길 하나 없는 도도함에
살짝 당황하며 어떡하지? 하며 곧 셰프에게
물었다.
가방을 넣을 케비넷이나 공간이 있을까요?
역시나 대답이 없다.
한번 더 물어보면 버럭하고 성질을 낼 거 같아
마음 졸이고있는데 그녀는 어떠한 입도 떼지
않은 채 자신의 턱을 사용해 저쪽으로 놓아라 라고 신호를 줬다.
재빨리 눈치채 알아먹고 총총걸음으로 알려준
곳에 갔지만 그곳엔 빈 통들만 넓부러져 있었고
가방을 놓을만한 공간이나 못 하나 없었다.
머뭇거린 지 2초도 안됐는데 셰프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는 불어 악센트가 섞인 영어로 Right Here !!여. 기. 다 농. 으. 라. 구!!! 라며
하던 일을 멈추고 화가 난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더 화난 말투로 Here !! 여 기!!! 알겠냐며 알려주고는 셰프는 작업대로 다시 돌아가 하던 일을 했다.
나는 보이는 싱크에서 손을 재빨리 씻고 작업대에 있는 타월을 하나는 허리춤에 걸고 또 다른 타월은 내가 일할 작업대에 곱게 접어 올려놓고는 셰프가 하고 있는 것을 옆에서 이어 도왔다.
무엇을 할까요?라고 물으면 셰프가 들고 있는
스페츌라라도 던질까 온갖 머릿속에 생각이 맴돌며 긴장을 했다. 다행히도 마음에 들었는지 셰프는 묵묵히 일만 하고 조용했다. 이 베이커리에서는 오리지널 프랑스식 갸토 무스케이크, 배워두면 너무
좋을 제품들을 만들고 있었는데 내가 오기 전에 이미 만들어놓고 냉동에 무스 틀 채로 얼려놓은 것을 잔뜩 꺼내 데코를 하는 셰프를 보니 그녀가 내게
첫날부터 소리 지른 것을 잊을 정도였다.
셰프는 여지없이 에클레어 쇼콜라에 들어갈
파티시에 크림을 만들라며 레시피 적을 기회도
없이 이미 그녀는 레시피를 입으로 말해주고는
기억 못 하느냐며 한마디 툭 던졌다.
순간 당황한 것이 레시피가 무슨 대용량 단위의
레시피이다 보니 머릿속이 하얘져버렸다.
안 그래도 첫날인데 작업장이 아무리 작아도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하려 하다 보니 손은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간간히 눈을 돌려 거품기는 저기 있고 밀가루는 저기 있고 색소는 저기 있고 케이크 짜는 주머니는 저기 있고 그렇게 파악하면서 일을 하는데도 셰프는 여전히 자신이
답답하다고 느낄 때는 한숨을 쉬며 눈알을 좌우로
돌리며 화를 냈다.
이미 누가 만들어놓은 에클레어에 완성된 파티시에 크림을 말없이 채우고 있는데 셰프가 와서 말없이 에클레어를 손으로 한번 들어보더니 좋다 나쁘다 잘했다 어떠한 평가를 하지 않았는데 이때 알게
된 것이 이 셰프는 마음에 들면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클레어 쇼콜라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셰프는 마카롱 만들 거니까 라고 말하지 않았고 알수없는 레시피를 대뜸 말로써 알려주고는 내게 코팅된 얇은 무언가를 건네주며 여기 쓰여있는 데로 계량을 하라고 주길래 받아 보니 대용량 마카롱 레시피였다.
레시피를 보아하니 적어도 700개의 마카롱이
만들어지겠다는 어림짐작을 했다.
어느 직장이던지 재빠르게 해야 주인마음에 들거라는것을 진작에 알고 있기에 에클레어를 후다닥 만들고 바로 마카롱 대용량 계량을 시작하였다.
이곳의 마카롱 레시피 중에 계란 흰자 분말이
슈가 파우더만큼 들어가서인지 셰프의 마카롱의
속은 꽉차서 나온다. 물론 마카롱의 완성은 컨백션 오븐과 오븐의 온도이지만 그날 마카롱 작업을
하면서도 속이 꽉 찬 마카롱이 나오네 라며 속으로 연신 감동의 연속이었다. 사실 대용량은 절대로
홈베이킹에서는 장소나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대용량의 마카롱을 만들기 어려울것이다.
그래서인지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경험도 너무
소중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마카롱들은 그 과정이 조금은
난해 했다. 많이 만들어본 쿠키지만 새로운 레시피에 살짝 긴장했고 대용량 계량이기 때문에 아몬드 가루와 슈가 파우더를 내 가슴 넓이보다 큰 채에
넣고 흔들 땐 팔이 떨어져 나갈 듯 힘들고
나의 의지의 상관없이 채를 좌우로 열심히
흔드는데도 가루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가루를 품고 있는 채가 너무 무거워 팔이 자꾸
아래로 처짐과 동시에 셰프는 나를 보는 둥
안 보는 둥 하며 눈을 살짝 들어 나를 지켜볼 때
심장이 너무나 멈춰지는 것 같았다.
역시나 셰프는 나를 보고 마음에 안 드는 한숨을
쉬었다. 난 속으로 어떡하지? 나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며 목으로 침이 꼴깍하고 넘어가며 긴장을 했다. 그렇게 식은땀 나는 작업이 셰프의
말한마디에 끝이 났다. 나는 언제 끝나나 생각도 없을 때 셰프가 정리하고 퇴근해라 라고 해서
시간을 보니 한 시간 일찍 끝난 아침 10시 30분쯤이 되었고 작업대를 정리하고 셰프에게 인사를
했지만 역시나 그녀는 인사를 받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 작업장을 나오니 아침을
먹고 있는 손님들로 홀이 꽉 찼다.
어둡고 외로웠던 새벽 출근길 때와는 달리 나의
퇴근길은 햇살로 가득 찬 홀을 가로질러 가며 마치 내 마음을 달래주는듯한 따뜻한 실내 공기와
따뜻하게 데워진 Quiche (키쉬)의 녹아든
체다치즈,모차렐라 치즈 외에 파 마샨 치즈 향이 어우러져가게 안에 가득 찬 그곳에서 언제 일하며 마음 졸였나 싶을 정도로 음식 냄새에 취해 기분
좋아지고 산뜻한 발걸음으로 오늘의 일을 마치고 퇴근을 했다.
Day 2
오늘도 어김없이 차가운 새벽공기에 눈을 떳지만 이미 지난밤 부터 새벽2시에 일어나지 못할까봐 잠을 설치고 30분마다 깨어나서인지 머릿속이 안개가 낀것같이 멍하니 흐릿한 느낌이다.
이때 미처 나는 알지 못했다.
셰프라는 직업이 내게 맞는 일인지 이제와서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는것은 지난날 내가 쏟아부운 노력과 이분야에 대한 열정을 부정하는것 같아 가끔은 그런 생각이 조금씩 올라올때마다 마음을 알아채고 모른척 본업에 충실했다. 이런 생각을 할때마다
새벽출근은 늘 피곤하고 몸은 아프고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감정이 생긴다.
다양한 직업을 가져본 내가 제일 오래 하고 있는
셰프일이지만 이일을 하다보면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하는건 진작에 포기를 했다. 하루나 이틀만 일하더라도 일한만큼의 임금을 지급해줘야 하는건 당연한거지만 규모가 작은 가게 일수록 일의 양은 많고 주인이 늘 지켜본다는 압박아래에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 없이 노동해야한다. 이런 저런 경험에 의해 나는 일을 찾을땐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나
주인아래 일하는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이번엔 너무나 예외로 첫직장으로 작은 베이커리에 취직하게 되었지만 첫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과연 오래 일할수 있을까 깊이 생각을 해보고 이틀째날 출근은 했다.
오늘도 3시에 출근 이지만 20분 미리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차에 앉아 출근시간만 기다렸다. 새벽 2시55분에 베이커리 문을 두드렸다.
뱃살이 좀 있는 푸더근한 모습의 프랑스 중년의 남자가 문 안고리를 풀고 들어오라 문을 열어준다. 그는 셰프의 남편으로 주로 가계 관리를 한다.
첫출근을 했던 어제와 같이 여전히 가게안은 어둡고 작업장에서 비치는 불빛을 따라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혼나면서 알게된 조그만 못에 가방을 걸어놓았다. 프랑스에서 부터 들고 다녔던 나의 에코백에는 너는 나를 미치게해 라는 불어의 문구가 씌여있다. 그 가방을 가져간건 의도적인건 절대 아니지만 프랑스 15구의 어느 길에서 무료로 받은 예쁜 불어가 써있는 가방이다.
그뜻이 뭐든 내겐 너무나 편한 가방일뿐이다.
그렇게 에코 백을 걸어놓고 전날 미리 다려놓은
깨끗하고 하얀 앞치마를 얼른 둘렀다.
첫날 호되게 혼나서인지 오늘도 긴장을 하며 무엇 부터 할까 찾아보며 셰프가 과일 타르트에
나빠쥬를 바르다 만것을 얼른 이어갔다. 그걸 보던 셰프는 나빠쥬를 더 뜨겁게 데워 하라고 지시했고 나는 스토브에 냄비를 올렸다.
눈물나도록 이렇게 뜨거운 나빠쥬는 처음이야
Neutral Nappage Glaze for Fruit Tarts
셰프의 지시대로 뜨거운 냄비째로 들고와 작업대에 올려 놓고 한손에 딱 들어가는 작은 과일타르트를 왼손에 잡고 붓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뜨거운 나빠쥬가 손에 닿지 않기 위해 느리게 바르며 얇게 발랐다. 그런데
싸한 느낌을 느꼈을땐 이미 셰프한테 붓을 빼앗겼고 그녀는 아무말없이 어떻게 발라야하는지 말이 아닌 손에
잔뜩 화가 나서는 두꺼운 붓에 살짝 묻히는게 아니라 붓을 나빠쥬에 풍덩 담가 국자 삼아 듬뿍 퍼서는 과일타르트에 나빠쥬를 퍼붓듯이 발랐다. 내가 다시 붓을 잡고 셰프가 알려준데로 해보려하니 들이붓는 방식의 나빠쥬방식은 처음이라 나빠쥬가 흘러 작업대에 흐르고 나는 또 긴장했다. 작업장에 셰프랑 둘만 있어서 어디로 도망도 못가고 그시간이 너무 죽을 맛이었다.
그래 과일 타르트에 나빠쥬 바르는게 다 사람마다 다르지 이거못할거 있나 싶어 그녀가 보여준 방식대로 어설프게 나마 나빠쥬를 퍼서 바르지 않고 덮어 씌워봤다. 셰프는 여러번 붓을 왔다갔다 바르지 않고 딱 2번 칠하는데
나는 2번해서는 안되서 손에 잡고 있는 타르트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려가며 3-4번에 걸쳐 발랐다.
셰프는 나에게 소리쳤다. "그렇게 3-4번 요렇게 저렇게 돌려가며 바르고 언제 일을 끝낼거냐 "
소리에 놀라 얼른 붓으로 나빠쥬를 듬뿍 퍼서 과일 타르트에 바르지 않고 그냥 씌웠다. 그러니 셰프가
보여줬던 것 처럼 비슷하게 발라진게 신기했다. 나빠쥬를 바르면서 손가락이 뜨거워 눈에서 눈물이 찔끔 나옴과 동시에 손가락이 익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집에서 홈베이킹 하는것이라면 당장 손에서 놨을것이다.
보통 나빠쥬를 만들때는 45도 섭씨에 물, 펙틴을 넣고 끓인후 사용할때는 35도 섭씨 정도로 식혀 사용하는데
나빠쥬의 주 재료가 물,설탕,펙틴 정도로 아무래도 물과 설탕을 넣어 끓인것이다 보니 뜨거운 채로 손에 닿으면 두세배는 더 뜨겁다는 느낌이 든다. 셰프들마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레시피나, 방식들이 너무나 다른걸 알지만 보글보글 기포가 좀 가라앉은 온도 느낌의 나빠쥬인데 생과일에 올려진 타르트에 첨벙 첨벙 아무렇지 않게 바르는것을 보고 따라해보니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트라우마가 생겨 그때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나빠쥬 일 이후에도 프랑스 셰프는 새벽에 나와 둘이 일하면서도 마음에 안들면 딸기가 들어있는 500g짜리 박스를 통째로 내게 던지거나 하는 일도 비일 비재 하였고 어느날은 이유없이 셰프가 우는 소리를 듣고 셰프의 남편과 딸이 오전 9시쯤에 달려 들어와서는 네가 일을 느리게 해서 그렇다라는 이해 못할 말들을 늘어놓곤 했다.
사살 모두가 겪는 일은 아니지만 프랑스에서도 친구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셰프가 포크를 던지는 경우도 있다고도 들어온 터라 딸기 박스가 통채로 날라 올때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아무리 내가 그들에 의해 고용된 직원이긴 하지만 주인이라고 온 가족들이 작업장에 들어와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릴땐 집에 있던 가족들도 생각나고 밖에서 이러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게 우리식구들한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억울하고 슬픈데 눈물은 나지 않고 광대뼈 근처 볼이 욱신거리며 볼에서 눈물이 나는 느낌이 났다. 이게 더 슬펐다 눈물이 나기전에 코끝이 찡한것 처럼 내 볼에서 눈물이 날것같은 느낌은 이미 마음이 무너졌다는것이다.
그후 그 베이커리를 출근 할수 없었다. 모든 셰프가 그런건 아니지만 보통 프랑스셰프들의 감정 기복이 다른 분야들 보다 심하다. 야심차게 출근한 첫직장에서 프랑스에서 경험했던걸 또 경험하니 트라우마로 새로운 직장을 다시 얻기가 힘들었다. 몇년후 그때 그 셰프는 베이커리를 접고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는 소식을 소문에 소문으로 들었고 그후 나는 개인이 운영하거나 가족이 운영하는 비지니스는 조금에 선입견을 가지게됬다.
결국 어떠한 임금도 못받고 내 감정또한 하락이 된 느낌이들었지만 소중한 경험을 했다 생각하며 내 미래에
다가올 내가 원하는것들에 대한 좋은 생각을 하며 나는 오늘도 그 어딘가로 희망의 레쥬메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