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란 무엇인가?

道의 사전적 정의

by 청와

1. 가설

“道”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道에 대한 기대치를 먼저 생각해 본다. 道에 대한 기대치란 道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떠한 것이어야 한다. 혹은 어떤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정의를 말한다. 이를 먼저 생각해 보는 것은 이후 정리해 내는 결론과 앞에 언급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에 따라 바른 결론을 유추했는가 그러하지 못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에 어렴풋이 생각하는 道는 “우주의 근원이 되는 그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태극(太極) 혹은 무극(無極)이나, 기(氣)가 주로 도의 본질이라는 주장이 있다. 아마도 뭇사람들은 그러한 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상황일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道”라는 단어와 태극, 무극, 기 등의 단어 사이의 거리감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 “道”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못 내리고 있다고 판단된다.

“道”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도에 대한 가설을 만들어 본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우주의 근본이 되는 “그 어떤 것(진리, 원리 혹은 물질 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어떤 것”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태초의 성현들은 뭇사람에게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하고자 하였다.

이에 “그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니 “도(道)”라 하였다.

“그 어떤 것”에 대한 충분히 고찰해 본 바, “도(道)”라는 말이 “그 어떤 것”에 가장 근접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 우주의 가장 근본이 되는 그 어떤 것이 있으니 도(道)라 하자.”라고 정한 것이다.


2. 道는 길이다

“道”라는 말은 “그 어떤 것” 그 차체는 아니나, “그 어떤 것”을 가리키는 가장 근접한 말이다. 많은 성현이 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러나 도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내린 분은 없는 듯하다. 아니 시도를 한 분들은 있었지만 성공한 분은 없는 듯하다. 혹은 알고 계신 분은 더러 있었지만 그걸 굳이 글로 정리하신 분은 없는 듯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도의 정의가 옳다면, 이 세상은 도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 어떤 “道”를 집어서 정의하느냐에 따라 모두 달라지는 것이다.

道可道 非常道 : 도를 도라고 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名可名 非常名 : 이름을 이름 지우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노자도덕경의 첫 구절이다.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첫 구절에 “道”에 대한 정의가 나오지 않고, 뜬구름 잡는 해석이 나온다. 심지어 “道”를 “길”로 해석 혹은 번역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道를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道의 영어 단어는 [ tao ]다.

이는 道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道라는 이름에 얽매이는 결과가 된다. 그렇기에 “도를 도라고 말하면 이미 도가 아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해석이 나온 것이다. 도라는 말에 얽매이게 되니 “도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와 더불어 “名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도 생겨 버린다. 그러니 다음 구절 해석에서 “無名”이 어떻고 “有名”이 어떻고, “無”가 머고 “有”가 머고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첫 구절에 이어 “名”을 언급하는 것은 “道”가 “名”이라고 알려 주는 역할이다. “名”은 “名”일 뿐이니 “名”에 집착하지 말고 “그 어떤 것(無名)”을 찾기에 주력하라는 충고다. 실제로 도덕경에서 1장을 제외하면 “名”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즉 여기서 “名”에 대한 설명은 끝났다는 것이다.

첫 구절부터 이렇게 일반적인 이상한 해석을 하면 뒤로 계속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내용이 모호한 철학적인 색채로 해석하니 뒤에서도 계속 철학적인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道經은 道에 대한 글이다. 그러니 당연히 첫 구절에 “道란 무엇이다.”라는 구절이 나왔다면 道에 대한 정의 혹은 설명이어야 한다. 도에 대한 정의가 맞는다면 위에서 언급한 가설을 적용해서 해석해 볼 수 있다,

“道(우주의 근본인 그 어떤 것)를 道(이름으로써의 도)라고 할 수 있다. 늘 道는 아니다.” 의역하면, “우주의 근본인 그 어떤 것인 “道”를 道라 이름할 수 있지만, 항상 그 이름이 道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혹은 굳이 道일 필요는 없다.” 정도이다.

중요한 것은 “道”라는 말은 우주의 근본인 “그 어떤 것”의 이름일 뿐이란 것이다. 道는 “그 어떤 것”과 같지 않다.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道가 “그 어떤 것”의 이름이라 해도 “그 어떤 것”의 100% 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이름이 “바보”라고 해도 이 “바보”라는 이름이 나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名可名 非常名”의 의미이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특정한 어떤 이름을 붙일 수는 있지만 그 이름이 그 사람이나 사물의 모든 것은 아니다.

“道”라는 말은 “그 어떤 것”을 이르는 이름이고, “그 어떤 것”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말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의 본질을 찾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느냐”라는 말이 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다 보면 달을 볼 수 있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것을 나무라는 말이다. 그래서 “道”라는 말을 손가락으로 삼아 “그 어떤 것”의 본질 찾기를 시작해 보자.

우선은 “道”라는 말을 번역해야 한다. “道”는 외국어일 뿐 아니라 상(象)을 표현한 문자라 의미가 이미지화되는 면이 있다. 번역해야 이미지화되는 道라는 말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의미를 찾는 것이 수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길”이다. “道”에 다른 의미가 없다면 “道”는 “길”이다. “길”로 번역된다. 영어로는 “road” 또는 “route”이다. 이렇게 번역하지 않으면 “道”는 영어로 “Tao”가 된다. 분명 이미지로 가져다 붙인 말이 아니라 의미가 있는 말이었을 것인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번역하는 이유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길은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1」 사람이나 동물 또는 자동차 따위가 지나갈 수 있게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
「2」 물 위나 공중에서 일정하게 다니는 곳.
「3」 걷거나 탈것을 타고 어느 곳으로 가는 노정(路程).
「4」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인의 삶이나 사회적ㆍ역사적 발전 따위가 전개되는 과정.
「5」 사람이 삶을 살아가거나 사회가 발전해 가는 데에 지향하는 방향, 지침, 목적이나 전문 분야.
「6」 어떤 자격이나 신분으로서 주어진 도리나 임무.
「10」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과정’, ‘도중’, ‘중간’의 뜻을 나타내는 말.

길의 설명을 근본적으로 정의하지 않고, 현실이나 사회상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근간으로 해설하고 있다. 위의 파편화된 해설을 종합하여 길을 본질적인 의미로 정의하면 “어떤 시작점에서 목적지점까지 연결하는 선(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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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항목은 이 정의를 현실에 연속적으로 구현하여 쓸모를 설명한 것이다. 「2」 항목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길이며, 「4」「5」「10」 항목은 부분적인 과정을 말하며, 「6」은 어떤 목표를 세우거나 주어진 경우,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형이상학적인 길이다.

땅에도 길이 있고, 바다에도 길이 있고, 하늘에도 길이 있고, 우주에도 길이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적인 형이상학적 길도 있다. 모든 길은 어떤 시작점에서 목적지점까지 연결하기 위한 수단 혹은 과정으로 사용된다. 위의 그림으로 알 수 있듯이, 좁은 뜻의 길은 시작점과 목적지점 사이를 연결하는 선만을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위의 그림에서 3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내용에서 한 가지를 더 추가해 모두 4개의 요소로 “道”의 본체를 찾아보려 한다. 이 부분이 “道”라는 말과 “그 어떤 것”과의 차이다.

길이 활성화되려면 시작점과 목적지점을 설정하고 목적지점을 향해 걸어갈 존재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존재가 없다면 길은 의미가 없다. 산속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은 어떻게 되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길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시작점, 길, 목적지점”에 더해 이를 행해 나갈 “어떤 존재”, 이 네 가지를 하나로 묶은 것을 기본적인 “길(道)”로 정의한다.

이를 어떤 존재의 입장에서 시간순으로 나열해 보면,

시작점 : 어떤 존재가 어떤 목적을 정한다.
- 이는 목적지점을 정하는 것이고, 목적지점을 정하는 행위 자체가 시작점이 된다. 우리말로 “마음을 먹는다” 혹은 “뜻을 세운다”라고 하고 굳이 한자를 쓴다면 “입지(立志)”가 된다. 목표가 정해지고 목표로 향하는 길을 발견했다면 득도(得道) 상태라 할 수 있다. 즉, 득도는 말의 의미상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길을 걷다 : 시작점과 목적지점이 생성되었으면 그 목적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한다. 이렇게 목적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를 길을 걷는다, 혹은 수도(修道)라고 한다. 때에 따라선 목적지점에 도착하는 것이 아닌, 수도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목적 달성 : 길을 걸어서 목적지점에 도착(목적 달성)하면 길은 완성된다. 득도가 시작이면 이 상황은 성도(成道)이다.

길(道)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시작과 완성이 된다.

이제 “길(道)”의 사전적 정의를 해 보면, 어떤 존재가 어떤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해 가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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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논하는 글에는 유독 마음(心)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위의 그림에서는 마음과 관련된 말은 立志밖에 없지만, 도를 논하는 옛 기록들을 보면 유독 마음과 연관 지어서 말한다. 예를 들면, 채침의 서전 서문에서 “二帝三王之治 本於道 二帝三王之道 本於心”라는 언급이 있는데 해석하면 “이제삼왕의 다스림은 도에 근본 하고, 이제삼왕의 도는 마음에 근본이 있다.” 정도 되겠다. 즉, 도가 곧 마음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모두가 마음을 먹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한다.

모든 것이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 마음을 먹는 것으로 시작하고, 마음을 먹은 바에 따라 길을 걷고, 마음을 먹은 바에 따라 목적지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늘 “초심(初心)을 지켜라.”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초심이 곧 처음 먹은 마음이니, 초심이 바뀌면 당연히 목적까지 바뀌기 때문이다.


3. 道의 이합집산(離合集散)

- 이하 “길”을 “도”로 통일하여 씀

현실에서의 길을 잘 살펴보면 큰 도는 작은 도들의 집합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고 가정해 보자. 시작점은 서울이 아니고 부산으로 가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것(立志)이다. 수단은 고속철을 이용하는 것으로 하자. 큰 도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간 과정을 작은 도로 분해가 가능하다. 즉, “무엇을 입고 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 과정과 행위가 하나의 작은 도가 되고, 집을 나서서 서울역 혹은 수서역까지 가는 행위, 수서역에서 부산까지 가는 행위 등 모든 부분이 [시작-행동(길, 수도)-목적지 도착(목적 달성, 성도)]의 행위가 반복된다. 또 분리된 작은 도도 더 작은 도로 분해가 가능하다.

반대로 “부산에 가자”라는 큰 도 또한 더 큰 도의 부분이 된다. 예를 들면 “부산에 가서 친구를 만난다.”라고 하면 “서울에서 부산 간다.”라는 도는 “서울에서 부산 가서 친구 만난다.”라는 조금 더 큰 도의 부분인 것이다. 이렇게 조금 더 큰 도, 조금 더 큰 도를 찾아가다 보면 나의 모든 도는 나의 인생의 목표에 수렴한다.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은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고, 내 인생의 도를 완성하기 위한 작은 도라는 것이다.

이렇게 앞 절에서 정의한 “도”의 개념은 하나의 구성 “단위(Unit)”가 된다. 즉, 여러 개의 단위를 합하여 더 큰 도를 형성할 수도 있고, 큰 도를 분해하여 작은 단위의 도를 추출할 수 있다.


4. 우주 대도(宇宙大道)

이러한 개념을 확장 시켜보자.

하위 위계의 道는 상위 위계의 道에 수렴된다. 한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자신의 작은 道들이 모여서 결국은 자신의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 인생의 목표에 이르는 자신의 가장 큰 道에 수렴되는 것이다.

자신을 벗어나면 자신이 포함된 가족 혹은 직장 등 단체의 도에 수렴된다. 가족의 도는 가문의 도에 수렴된다. 가문 또는 회사의 도는 국가의 도에 수렴된다. 국가의 도는 인류의 도에 수렴된다.


유불선(儒佛仙)으로 표현되는 종교를 살펴보자.

유교의 목적은 군자(君子)가 되는 것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행위가 수도인 것이다. 그래서 유도(儒道)라고도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목적은 부처가 되는 것이다. 불교는 부처가 되는 길(道)을 제시하고 그 길에 따라 수행(수도)하다 보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이다. 그 불도의 수는 최소 8만 4천 가지가 넘는다. 불경 하나하나가 모두 부처가 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도 불도(佛道)라고 한다.

도교는 신선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신선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수행을 한다. 그래서 도교는 선도(仙道)라고 한다.

이러한 인류의 모든 도를 모으면 인류가 비록 인식은 못 하지만 인류의 도에 수렴한다. 인류의 도는 곧 지구의 도가 된다. 지구와 태양계의 다른 행성의 도와 태양의 도를 모두 모으면 태양계의 도가 될 것이고, 태양계와 같은 항성계들의 모든 도를 모으면 은하계의 도에 수렴된다.

우리 은하나 우주가 우발적으로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탄생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고, 목적을 가지고 탄생했다는 것은 누군가의 의지가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이 우주의 최초의 도, 근원적인 도, 이 우주 탄생의 이유인 도를 우주대도(宇宙大道)라 한다. 우주에 속한 모든 도는 우주의 근본적인 도에 귀납된다. 다르게 말하면 우주에 생성되어 있는 모든 크고 작은 도는 우주의 근본적인 道인 宇宙大道의 부분이다.

크든 작든 도(道)에는 주인이 있다. 도가 크던 작든, 모두 기본 단위의 구성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수도자 | 시작점-길-목적지점]의 구성이다. 우주대도의 주인은 창조주(創造主, 조물주, 하늘님, 하느님, 상제님 등)이시다.

지금까지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으로 왔으니, 마지막 가설을 풀어 보면.

“태초에 어떤 분(창조주)이 계셨다. 그분께서 어느 날 어떤 목표를 정하셨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 우주를 창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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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도덕경 42장 道生편을 보면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는 글이 있다. 줄여서 道生 天地生이라고 한다. 해석하면 “도에서 우주(天地萬物)가 생성되었다.”이다. 그래서 우주의 근원인 “그 어떤 것”이 도라고 추측하였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은 우주 생성의 근원으로 유물론적 관점에서 생각되었다. 즉, 에너지, 기(氣), 신의입자 등과 연관 지어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이 길이라는 “도(道)”의 일반적인 개념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혼란이 온 것이다.

도의 사전적(일반적) 정의는 어떤 존재가 어떤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위와 목적한 바를 달성하는 것으로 완료되는 과정으로, “어떤 존재” “시작점:목적지 설정(立志, 得道)” “길:목적 달성을 위해 하는 행위(修道)” “목적 달성(成道)”의 네 요소를 통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핵심만 취하면, 어떤 존재의 의지(意志:마음을 먹고 뜻을 이루고자 하는 행위 등)로 정의된다. 어떤 존재의 의지로 인해 위에 언급한 모든 과정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 생성의 근원으로써 도(道)는 물질적인 “그 어떤 것”이 아닌 창조주의 의지(意志, 마음)이다. 창조주께서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해 그 수단으로 우주를 창조하고자 의지를 세우셨고, 그 意志(마음)부터 우주가 창조된 것이다. 그래서 道生 天地生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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