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코츠 라멘과 후쿠오카 라멘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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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서술했듯 라멘은 소스와 수프, 면과 고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라멘은 크게 시오, 소유, 미소, 돈코츠로 나누는 게 일반적이다. 돈코츠 외에도 닭이나 어패류, 채소 등 다양한 재료가 육수에 활용되고 있는데, 이 중 두 개 이상의 수프를 합치는 더블 수프는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다. 최근엔 그 이상을 합치는 라멘집도 보인다. 소스나 고명 또한 변하고 있는데 바질 라멘, 유자 라멘, 두반장이나 라유(고추기름)를 사용한 카라이(매운) 라멘 등 다양하다. 면 또한 굵은 면부터 얇은 면, 직면부터 구불면, 익힘 정도는 물론 가수율까지 따지며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대부분의 요리가 그렇듯, 일정 수준 이상의 문화가 되면 더 이상 분류하고 정의하는 건 의미가 없어진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게 요리니까. 다만 그 와중에도 전통을 찾는 이는 언제나 있다.
내가 돈코츠 라멘을 처음 접한 건 2010년도 홍대였고, 일본에선 15년도 오사카 이치란 라멘과 킨류 라멘에서였다. 홍대에서 처음 먹었던 돈코츠는 사실 큰 인상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라멘을 좋아하게 될 지도 그땐 몰랐다. 문제는 15년도 이치란과 킨류에서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최애 음식이 순댓국이나 감자탕과 같은 돼지 뼈 육수 요리던 내가 처음 돈코츠 라멘을 먹고 느낀 전율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까지 돼지 육수가 진하고 깊을 수 있는 건가. 들깨 가루나 콩국도 아닌데 이런 농도의 국물이 있을 수 있는가. 정말 많은 부분에서 놀라고 말았다.
이때부터 한국에서는 물론 일본에 갈 때도 돈코츠 라멘은 언제나 투어 대상이었다. 여전히 본업인 카페는 물론 돈코츠 라멘, 순대 국밥과 돼지 국밥, 평양냉면 및 지역 냉면, 로컬 맥주는 기본적으로 최우선 투어 대상이다. 그렇게 도쿄와 간사이를 종종 오가며 제법 많은 라멘을 먹은 내 결론은 이젠 일본을 굳이 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먹는 라멘으로도 충분하겠다는 거였다. 홍대는 한국 최고의 라멘 격전지로 불릴 만큼 라멘의 성지다. 특히 돈코츠 라멘이 굉장히 지배적인데, 아마 그동안 홍대권에서 먹은 돈코츠 라멘집만 우습게 스무 곳은 넘지 않을까.
이제 원하는 스타일에 따라 홍대에서 '아 여기 가서 먹으면 되겠다.' 하는 수준까지 오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특이점이 왔다. 결국 한 번은 돈코츠 라멘의 본고장인 후쿠오카에 가서 라멘 투어를 해야겠다는. 일본 다른 지역에서 먹은 돈코츠로 평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순수하게 라멘만을 위한 후쿠오카 여행을 23년 3월에 떠났다.
도착하자마자 찾아간 첫 라멘집은 하카타 다루마. 타베로그에서 제법 높은 랭킹을 갖고 있던 집으로 하카타식 돈코츠 라멘이 어떤 느낌인지 너무나 궁금하여 찾아간 노포였다.
경건한 마음으로 첫 라멘을 기다리며 가볍게 목을 축이고, 지역 수제 맥주가 있기에 구경도 했다.
그렇게 맞이한 하카타식 돈코츠 라멘. 애정하는 라멘 블로거신 후후의 식도락에 따르면 하카타식 돈코츠 라멘의 특징은 몇 가지가 있는데, 사진에서 보이듯 넘치게 따라주는 수프와 국내에서 자주 보이는 삼겹 차슈가 아닌 비계가 적은 부위에 차슈, 얇고 가수율이 낮은 스트레이트 면, 완탕 토핑과 카에다마를 뽑으셨다. 카에다마는 한국으로 따지면 면 사리 추가 요청인데, 이 용어 역시 하카타의 라멘 노포에서 처음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개인적으로 라멘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가능한 한 빨리 먹는 것이란 믿음이 있는지라, 사진은 언제나 한 장뿐이다. 기록은 해야 하지만 면이 퍼지는 걸 참을 수 없어 두 장은 찍을 수 없고, 당연하게도 먹다 중간에 찍을 수도 없다.
아무튼. 하카타 다루마의 라멘은 하카타식 돈코츠 라멘을 이해하기에 완벽한 교과서였다. 적당히 꼬릿 하고, 기름지며, 짜다. 다만 이 정도 기름지고 짠맛은 내 기준에선 무난했다. 돈코츠 라멘을 많이 안 먹어 봤거나, 이치란 정도만 안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이에케도 한번 먹어 보고, 지로도 한번 먹어봐서 고농도 고염도에 익숙한 분들에게 추천한다. 순댓국으로 쳐도 어느 정도 냄새나는 걸 먹을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접근 가능한 돈코츠 수프다.
토핑으로 들어간 완탕은 우리에게 친숙한 부산 완당과 다르지 않다. 완당 자체가 중국의 만둣국 훈뚠이 관동 지역에서 완탐으로 불렸고, 이게 일본으로 넘어가 완탕으로 정착된 게 시작이다. 그게 부산으로 다시 넘어와 완당이 되었다. 한국 원조는 흔히 18번 완당을 얘기하는데, 이 역시 해방 전후 일본에서 배워온 기술이라고 한다.
일본 라멘집 로망인 차항(일본의 중국식 볶음밥)과 야끼교자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왔다. 하카타식 돈코츠 라멘의 기준 같았던 집으로, 특별한 감동은 없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다음 라멘은 하카타 겡끼 이빠이. '하카타 건강 가득!'이란 뜻으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는 곳이다. 예로 수프가 아닌 면부터 먹으면 퇴장, 사진 찍으면 퇴장, 라멘 먹기 전에 반찬을 먹어도 퇴장, 매장을 둘러보거나 얘기를 하거나 휴대폰 알림이 울리면 퇴장 등... 굉장히 많은 퇴장 전설의 주인공이다.
물론 직접 가본 매장은 굉장히 친절했고, 질문에도 잘 응해주셨으며, 사진은 당연히 찍을 수 있었고 적당히 떠들며 먹어도 무관했다.
이곳을 고른 이유는 이런 전설이 아닌, 후쿠오카에서 현시점 가장 진한 돈코츠 라멘을 한다고 들어서였다. 국내서도 이젠 없어진 고라멘이나 길라멘, 요즘은 쿄 라멘 같은 하드 돈코츠를 굉장히 애정한다.
그렇게 받은 하카타 겐키 잇빠이의 돈코츠 라멘. 차슈와 목이버섯, 쪽파로 간단한 고명을 품고 있는 수프. 육안으로 봐도 무겁고, 농밀하며, 진하다. 이 한 그릇이 후쿠오카 라멘 투어의 모든 목표를 이루게 해줬다. 헛웃음을 삼키며 수프만 계속 떠먹다가 정신 차리고 면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 그동안 먹어본 적 없던 진한 돈코츠 라멘이었다. 이 정도의 수프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 할까. 수많은 괴담에도, 좋지 않은 접근성에도, 어지간한 마니아가 아니면 도전도 못할 수프임에도 사람이 끊이지 않고 들어오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다. 수프 한 입에 육수 우리시는 사장님의 인간극장 한 편이 뚝딱 만들어져 스쳐 지나가니, 감사한 마음으로 광광 울며 먹었다.
사장님이 특이하게도 커리 루를 밀고 계셨다. 진한 감동에 이 집이면 뭔들이란 생각으로 커리 카에다마를 시켰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카에다마만 주문할 걸 후회했지만, 수프와 잘 어우러져 충분히 맛있었다. 다만 기본 수프에 감동이 너무 커서 그냥 더 먹고 싶었을 뿐. 일반적으론 이 정도로 무거운 돈코츠를 끝까지 먹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좋은 변주라 생각된다.
다음 라멘은 추억 속의 라멘이자 한국인에겐 가장 유명할 이치란 라멘의 본점. 사실 이치란은 국내에서 라멘 투어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 다시 일본에 가서 여러 번 먹었었고, 충분히 실망했다. 다만 그럼에도 지난 추억과 본점은 다르겠지란 기대와 24시간이라는 장점이 다시금 방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받은 이치란 라멘. 사실 이치란과 잇푸도 같은 자본계 라멘은 하카타 라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후쿠오카 분들도 있다고 한다. 마치 할매 순댓국이 무슨 순댓국이야 같은 느낌이랄까. 저렴한 가격과 24시간, 어디서나 비슷하게 유지되는 맛과 높은 접근성은 분명 큰 장점이다. 이치란 같은 경우는 취향에 맞게 맛을 선택할 수 있고, 한국어 메뉴판도 구비가 잘 되어 있기에 더욱 관광객에겐 편리한 게 사실. 다만 수프까지는 먹겠는데 면은 정말... 마트에서도 판매하는 이치란 라멘 제품을 구매해서 먹어도 비슷할 것 같았다. 굳이 후쿠오카에서 이치란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타 지역이라면 많은 장점에 충분히 선택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곳엔 저렴하고도 맛있는 라멘집이 너무 많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다웠다. 이치란 이젠 안녕... 물론 새벽 해장은 삿포로가 아닌 이상 24시간 이치란이 앞으로도 떠오를 것 같다.
마지막 라멘집은 이번 라멘 투어 처음으로 줄 서가며 먹은 하카타 잇소우. 심지어 이곳에 줄은 대부분 현지인이다. 오픈 20분 전쯤 도착했는데, 적어도 한 시간은 기다렸다.
밖에서 줄을 서다가 차례가 되면 안에 들어가 자판기로 식권을 구매하고 나와 다시 줄을 선다. 자판기 앞에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시스템이라, 미리 메뉴는 골라두길 추천한다.
한국에선 완탕 토핑이 흔치 않은 만큼, 현지 감성 살려 완탕멘으로 시켰다. 고명은 완탕과 목이 버섯, 쪽파, 김, 차슈. 면은 얇은 면이었고, 덜 익힌 면을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익힘 정도는 바리카타로 부탁드렸다. 현지에서 굉장히 유명한 매장이고, 타베로그는 물론 대회 성적까지 높은 곳이다. 다만 개인적으론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염도는 높은 편이라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조금 어려울 것 같다. 하카타 다루마보다도 높았던 느낌.
줄은 계속 더 길어진다. 만약 간다면 오픈 30분 전에는 가서 줄을 서길 추천하지만, 좋은 라멘집이 넘치는 후쿠오카기에 굳이 이렇게까지 여길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는 하다. 라멘 경험치가 낮다면 잇푸도나 이치란을, 로컬 색이 궁금하다면 하카타 다루마를, 하드 돈코츠를 만나보고 싶다면 겡끼 이빠이를 추천한다.
라멘을 위해 굳이 후쿠오카를 갈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하카타 겐키 잇빠이를 가지 않았다면, 굳이...?라고 대답했겠지만 국내에선 할 수 없는 수준의 수프를 만나고 말았다. 이건 기술적인 부분이 아닌 문화적인 요소다.
과거 하드 돈코츠를 추구했던 집은 모두 노선을 바꾸거나 폐업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좋아하고 응원하지만, 정말 대중적으로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장르다. 심지어 생존 가능성에 비해 노력은 너무나 많이 요구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겡키 잇빠이 정도를 한국에서 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그렇다면 우린 후쿠오카에 갈 수밖에 없고, 오직 라멘만을 위해 후쿠오카를 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개성 있거나 특이한 라멘, 전통적인 라멘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홍대로 가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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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모르겠지만 후쿠오카는 커피도 정말 잘한다. 부산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지역인 만큼 시간적으로도 비용적으로도 접근성이 높은 후쿠오카다. 돼지 국밥과 커피의 도시, 부산 인근이기 때문일까. 돈코츠 라멘과 카페 투어, 모두 추천한다.
다음 편은 미소 라멘의 성지, 삿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