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타치노미는 어떨까?
타치노미(立ち飲み)는 서서 마신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길거리 떡볶이 노점 같은 느낌이랄까. 노점에서 술을 팔던 시절엔 우리도 떡볶이와 오뎅 국물에 소주를 가볍게 서서 마시곤 했다.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빠른 회전율과 저렴한 가격. 요즘 길가 떡볶이 노점은 술을 팔기는커녕(물론 팔면 안 되지만) 찾기도 어렵다. 대부분 자치구에서 거리 가게라는 형태로 일부 허가된 곳들만 남아있기에 더욱 그런 상황.
일본의 타치노미 문화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가볍게 한 잔 즐기는 곳에 가깝다. 혼자 밥술을 대충 때우거나, 동료들과 잠깐 친목을 다진다거나. 요즘은 유행처럼 타치노미만 찾아다니는 경우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는 기대로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막혀있던 여행길이 다시 열리며, 한국은 일본 타치노미를 오마주한 다양한 가게가 유행하고 있다. 대부분 자리가 없어서 웨이팅을 서는 경우가 굉장히 흔할 정도. 그중 최근 가장 애정하고 있는 3곳에 매장을 소개한다.
먼저 서울은 아니지만, 집 근처에 위치해서 혼자도 방문하곤 하는 키치바다. 젊은 사장님과 직원분들이 언제나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곳. 처음 방문했을 땐 국내 맥주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사히와 기린 생맥주만 판매하신다. 참고로 기린이 세상 맛있다.
한국 타치노미의 특징은 안주는 저렴하나 술이 비싸다....랄까. 저렴한 안주 하나에 가볍게 맥주 몇 잔만 마셔도 우습게 3-4만 원. 둘이서 좀 마시면 10만 원은 우스워진다. 더불어 메뉴 구성과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놀랍게도 의자가 있다. 국내에서도 의자 없는 매장은 여럿 있었다. 클래식하게 서서갈비나 을지로의 스탠딩 바 전기, 초장기 모멘토 브루어스나 요즘 유행하는 여러 에스프레소 바도 의자가 없는 경우가 흔하다. 다만 여전히 서서 먹고 마시는 문화가 한국에선 쉽지 않은지, 타치노미를 오마주한 곳들도 테이블과 의자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키치바는 테이블석과 별도로 타치노미 구역을 운영한다. 이 문화가 궁금하다면 주말 바쁜 시간에 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의자가 없고 가격이 저렴한 게 일본 타치노미의 특징이지만, 국내에선 여러모로 다른 부분이 많다. 다만 메뉴 구성은 놀라울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
아무튼 기린 생맥은 일본에서도 비싸기에 그저 탭 관리를 잘 해주심에 감사할 따름. 처음 오픈하셨을 때부터 최근까지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 맥주 컨디션이 언제나 기똥차다.
더불어 음식도 훌륭하다. 맛뿐 아니라 담음새도 인스타그램 친화적이다. 거기에 뻔한 메뉴에 뻔한 맛이 아닌, 뻔한 메뉴여도 킥 하나씩은 담겨있다. 덕분에 메뉴판에 있는 거의 모든 메뉴를 한 번씩은 다 시켜본 기분. 매번 가는데 매번 짜릿하다.
오뎅은 일본 감성 낭낭하게 담겨있다. 요즘은 일본식 오뎅바가 많아 이런 담음새가 익숙할지도. 한국 오뎅집과 가장 큰 차이라면 국물 좀 더 주세요가 쉽지 않달까.
전직 수제 맥주 회사 마케터이자 식품공학 전공자로서 TMI를 풀자면, 위 왼쪽 사진과 같은 엔젤링은 TV 광고에서 신선한 맥주의 상징처럼 마케팅을 풀었단 바가 있다. 물론 이런 내용은 업무에도 전공 과정에도 없다. 가장 대표적인 맥주 마케팅 성공 사례지만, 사실 영어권에서는 끽들도 잘 알지 못하는 단어란 게 함정.
일반적으로 이런 거품 자국은 Lacing이라 하는데, 맥주 내 단백질이 탄산가스를 붙잡으며 생기는 거품이 일정 시간 머무를 때 잔에 달라붙어 자국을 남기는 현상이다. 이런 레이싱은 맥주 내 잔당이나 알코올 도수, 사용한 재료, 온도 등 다양한 요인이 관여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잔에 청결과 관련된 부분이다.
보통 남은 세제나 기름기가 없는 잔에서 레이싱은 더 잘 나타난다. 사진처럼 선명한 레이싱을 여럿 남기려면 맥주를 빨리 마시면 된다. 일본 문화에 따라 음식 주문 전 맥주부터 시키고, 안주가 나오기 전에 가볍게 한 잔 비워주면 딱 저런 모양이 된다. 탭 관리부터 잔 관리까지 잘하시는 키치바 최고.
맥주 외에도 사케와 고구마 소주, 위스키, 하이볼 등 다양한 주류가 준비되어 있으니 일산 주민에겐 적극 추천한다. 마무리로 아츠깡 한 잔은 언제나 옳기에.
다음은 관악구 샤로수길에 위치한 키요이 오뎅바. 이곳도 앉아서 먹는다.
먼저 고백하건대, 오뎅바지만 오뎅은 안 먹어 봤다. 더불어 키요이는 스키야키로 더 유명하지만 난 오뎅바만 가봤다.
사실 맥주 컨디션만 놓고 말하자면 키치바가 더 취향이나, 메뉴에 다양성이나 화려함에선 키요이가 어마 무시하다. 구운 주먹밥과 명란에 감칠맛이 터지는 오차즈케, 멋짐 폭발하는 바닥으로 구워낸 야끼교자. 완벽하다.
일드 심야 식당을 좋아하는 나로서 오차즈케는 보이면 시킬 수밖에 없는 그런 메뉴. 라멘을 좋아하는 나로서 야끼교자는 이하 생략. 사실 그냥 잘 먹는다.
바에 앉아 있으면 한 번씩 강렬한 훈연 향이 치고 들어온다. 나폴리탄을 주문하면 마지막에 뚜껑을 덮고 훈연기로 연기를 가득 채우는데, 그 퍼포먼스가 압도적이다. 굉장히 한국적으로 매콤하게 해석하신 나폴리탄인데, 냄새에서 이미 홀리기에 그냥 맛있다. 고구마 사라다는 가볍게 먹으려고 시켰는데 넘치는 브라운 치즈만큼 넉넉한 양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기억. 물론 당황스럽다고 남기는 일은 없었다.
맥주도 준수하고 안주가 정말 맛있다. 사실 요리하시는 한 분이 일을 너무 잘하셔서 구경하다 반해버렸다. 밀리는 빌지를 동시에 쳐내는데, 같은 요식업자로서 존경스러울 정도의 아웃풋이었다. 근처에서 가볍게 맥주 마실 곳을 찾는다면, 적극 추천한다.
마지막은 용리단길 F&B의 끝, ttt 남준영 CD님의 키보다. 아마 국내 타치노미 중 가장 유명한 곳이 아닐까. 효뜨와 꺼거, 남박, 사랑이 뭐길래, 굿손까지 ttt는 이제 F&B에선 모를 수 없는 회사가 되었다. 쌤쌤쌤, 테디뵈르하우스의 김훈 셰프님과 함께 삼각지와 용산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아닐까.
뭐랄까. 키보의 첫인상은 '진짜 일본 같다',랄까. 다른 업장은 일본 느낌을 내기 위해 인테리어부터 많은 투자를 한 게 명확하게 보인다. 하지만 용산 키보는 그냥... 일본에 있는 타치노미 같다. 최저 예산 최고 효율이랄까, 너무 완벽해서 어색함이 없달까. 여긴 직접 가봐야 한다. 일본에서의 기억을 추억하는 곳이 아니라, 용산에서 그냥 일본 여행을 할 수 있다. 물론 타치노미 특성상 주변 손님들이 어떻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굉장히 다르겠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게 어렵진 않을 것 같다.
키보는 브랜드가 튼튼한 만큼, 다양한 콜라보와 이벤트가 자주 열리는 편이다. 신사에 키보2도 있다. 접근성이 좋은 방향 어디로든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요즘은 국내에도 의자 없는 타치노미가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지만, 키보만한 곳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그렇다. 키보는 정말 의자가 없다. 타치노미니 사실은 당연하다.
한때 야키토리나 오뎅바가 유행했던 것처럼, 타치노미가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서서 먹고 마시는 문화가 단순 유행이 아닌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흥미롭게 바라보는 중이다.
한국에서 잠깐 타치노미 문화를 즐기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여행처럼 제법 즐거운 경험이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