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 씨 이야기
풋풋하게 살고 싶다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밖에 없는 이 순간을 생생하게 살고 싶다. 죽을 때까지 풋풋하게 살다가 풋풋한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나의 다른 이름은 '풋풋 씨'다.
'풋내와 같이 싱그럽다'
영어로는 fresh. '신선하고 새롭고 상쾌하고 싱싱하다'는 뜻이다.
풋은 또 웃음소리와도 닮았다. 사전에서도 풋을 '갑자기 짧은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발을 영어로 하면 foot이 된다. 풋풋 씨는 footfoot 씨로 걷는 사람이라는 뜻을 포함한다.
이렇게 풋풋 씨는 걷고 웃고 풋풋한 사람을 의미한다. 걷고 웃고 풋풋한 정신을 가져 죽을 때까지 풋풋해지기로 나는 결심했다.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2011년 프랑스 생장 피에르 포드부터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그리고 산티아고부터 피니스테라를 지나 묵시아까지 묵시아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었다. 정말 행복하고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온전히 나를 마주한 여행이었다. 지금까지 내 생애 최고라고 말하고 있는 여행이다.
제주올레
2012년 제주도 시흥초등학교부터 지미봉까지 올레 26코스를 걷고 난 제주도민이 되었다.
3년 제주도를 만끽하고 나오면서 다시 올레를 한 바퀴 돌아 제주도 섬을 두 번 걸었다.
국토대장정
제주도를 나오면서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마라도부터 해남 땅끝마을, 영암, 광주, 순창, 전주, 임실, 증평, 충주, 여주, 양평, 홍천, 인제, 원통, 양구, 거진, 고성까지 걸었다. 무려 7개월이 걸렸다. 실제 걸은 시간만 따지면 두 달 정도 될 것 같다.
웃는다
웃음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감성이 풍부했다. 하지만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 사춘기를 겪으면서 얼굴이 차가워졌나 보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친구를 따라 작은 교회를 갔었는데 그날 하필이면 눈에 다래끼가 났다. 한창 외모에 관심 많은 소녀는 한쪽 눈이 부끄러웠고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 숨기느라 바빴다. 친구랑 둘이 교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회 여자 아이들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이 내게 다가오더니 "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 잘났냐고?"라며 이유모를 시비를 걸어왔다. 친구가 중간에서 말리고 진정시켜 그 아이는 갔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 가만히 서있다. 나를 위로한다고 하는 친구의 말이 더 충격이었다. "이해해. 쟤가 좀 성격이 터프해. 그리고 네가 얼굴이 좀 차갑긴 하잖아" 집에 와서 거울을 봤다. '내 얼굴이 그렇게 차갑나?'
보조개가 이뻐서 보조개 만든다고 연필로 얼굴을 찔렀던 것처럼 그날부터 웃는 연습을 했다. 양쪽 입꼬리에 힘을 주고 활짝. 윗니가 8 개가 보이게. 눈도 웃으면서.
매일 거울앞에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고 나니 사람들이 다들 내게 예쁘다고 했다. 어쩜 그렇게 미소가 예쁘고 잘 웃냐고 했다.
그렇게 웃음은 나의 무기이자 가면이 되었다. 가끔은 웃기지 않은 상황인데 웃음이 나올 때도 있었다. 영화 조커 주인공같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때 왜 웃었지?'라고 생각하게 될 상황이 몇 번 있었다. 그다음부터는 웃음을 조금 통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도 미소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상황에서라도 긍정적인 눈과 마음을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례하거나 위험한 사람에게는 나의 웃음과 미소를 낭비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같이 한다. 가끔은 그 사람들이 정말 타인의 웃음과 친절이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나의 친절을 이용하는 사람 앞에서는 나는 웃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다시 그럼에도 웃는 것은 정말 멋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미소를 띠고 있다. 삶이 더 근사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이렇게 나는 걷고 웃고 풋풋하다.
내게 있는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내 삶이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죽는 그 순간까지 걷고 웃고 풋풋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금 풋풋하고 세상은 나로 인해 너로 인해 풋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