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로 울릉도 배가 못 뜬다면

울진 후포여객선터미널에서 영덕 고래불 해변까지 걸어보기

by 풋풋씨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알람 소리가 들린다.

기분 좋으려면 좀 더 자야해 음냐

웬일인지 잠을 거의 못 잔 나는 마냥 자고싶었다. 30분만 더 잘까 아니 10분만이라도.

헤롱 거리다가 고양이 세수를 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눌러쓰고 방문을 나섰다.

10월 24일 목요일 아침 7시.


그런데 어머나 세상에 방문에 열쇠가 꼳혀있다! 말도 안 돼. 안전 강박증이 있는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 이렇게 어설픈 나를 어쩌면 좋니? 들어갈 때 꽂혀있는 열쇠를 못 봤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내 안전은 내가 지켜야한다.

혼자 여행에서는 더욱.



오늘 후포여객선터미널에서 울릉도 가는 배는 아침 10시에 출발한다. 오늘 인터넷 예약은 이미 마감. 우선은 내일 날짜를 인터넷 예약으로 해놓고 혹시 있을 오늘 현장표를 예매하러 여객선터미널로 간다. 숙소에서 여객선터미널까지 3km, 약 40분 거리.


걸어가기로 한다.

숙소에서 나온 순간 오른쪽에 멋진 바다가 펼쳐졌다. 해는 이미 떴고 날은 약간 흐려 아직 어두웠지만 떠오른 해에서 내리는 빛줄기가 눈부셨다. 행복감이 절로 생겨났다.

아! 오길 잘했어!

빛이 바다로 쏟아진다



오른쪽 바다를 따라 쭉 걸었다.

옆8 시 25분 후포 여객터미널에 도착. 그런데 건물이 깜깜하다.

여기가 아닌가? 아무도 안 계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그리고 발견한 유리에 붙은 A4 종이 한 장.

"오늘 울릉도로 가는 배는 기상상황으로 인해 10시에서 7시로 변경되었습니다."

ㅠㅠ


아 이미 배는 떠나고 만 것이었다.

미리 알았으면 좀 더 일찍 나오면 되는 거였는데. 아니면 잠이라도 좀 더 자면 좋았을 텐데... 아침에 홈페이지를 봤을 때 다른 변경사항이 공지되지 않았었다. 회사에 전화해보니 10시에야 전화가 연결된다는 자동안내 음성이 들려온다.



띠리리. 나 어디로 가야 하지? 후포에서 뭐하지?

꼬르륵. 밥 먹으면서 생각해 봐야겠다. 아까 걸으면서 봐 두었던 보리밥 가게로 들어갔다.


"지금은 보리밥밖에 안 되는데요"

"네 그럼 보리밥 주세요"


배낭을 내려놓고 방에 철퍼덕 앉았다. 어디로 가지? 지도 앱을 살펴본다. 후포 공용 도서관에 가서 울릉도랑 독도 관련 책을 볼까?

밥이 나온다.


"한 명이에요?"

"네 한 명인데요."

"한 명이잖아~" 남사장님이 여사장님에게 말한다.

왜 두 명이라고 생각하셨지? 당연히 두 명이라고 생각하셨나 보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 그만큼 자연스럽지 않단 얘기다.

덜을 그릇을 얻어 먹을만만 반찬을 덜어내고 다른 반찬들이 담긴 쟁반은 한쪽에 저만치 밀어뒀다.

된장찌개와 보리밥을 먹으며 지도를 살펴본다.


아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이 여기서 11km 거리다. 3 시간이면 울진 후포에서 영덕 고래불까지 걸을 수 있다니! 여기다!



실은 얼마 전 여행에 미치다에서 나온 여행에 미칠 지도를 구입해 방 벽에 붙여놨다.

지도는 검은색으로 돼있는데 다녀온 나라를 복권을 긁듯이 긁으면 다른 색깔이 나타난다.

세계지도는 나라별로 구획이 나눠져 있고 국내 지도는 시군별로 나눠져 있다.


지도를 사고 나서 꿈이 추가됐다.

죽기 전에 모든 곳을 긁어 전체가 연두색이 되는 것이다. 이 지도는 어디를 긁어도 꽝이 없다. 여행 간 지역은 하나같이 다 아름답다.

후포해수욕장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 걸으면 울진도 긁고 영덕도 긁을 수 있다. 그리고 얼마 후면 울릉도와 독도도 긁을 수 있다.

엣헴 신이난다. 신이 !

여행에 미칠 지도



밥을 다 먹었는데 왜 허한 거지?

가게에서 초콜릿과 귤을 샀다.

비장한 마음으로 걷기 여행 시작!

마침 후포에서 고래불까지 해파랑길이 나있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를 따라 걸을 수 있는 770km의 길이다.


후포 바다를 보며 걷는다. 이번엔 바다를 왼쪽에 두고 걷는다. 지도에서 보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다.

갈매기와 썸타며 걷는다. 갈매기는 쳐다보는 듯 안 쳐다보는 듯 옆으로 흘끔흘끔 쳐다본다.

조금 가다 보니 갈매기들이 모래 해변에 앉아 있는데 모두 왼쪽을 보고 있다. 어쩜 저러지? 해를 바라보며 날개도 말리고 광합성도 하고 있는 것 같다.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왼쪽에 뭐 있어?



걷는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비가 내린다. 우비가 있지만 번거로워 우산을 쓰며 걷는다. 비가 세차 진다. 가방도 젖고 신발도 양말도 젖었다.

아. 배낭 커버 그리고 방수 트레킹화가 있으면 좋을 텐데. 나 초보 여행자 같아...

산티아고를 걸었을 때 샀던 오스프리 배낭과 코오롱 고어텍스 등산화는 제주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스틱은 피레네 산맥을 걷고 난 후 번거롭다고 알베르게에 기증했다. 모두 다 새로 사야 한다. 아무것도 없다.


젖은 몸으로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옷도 말리고 빈 속도 채우려 식당을 찾았는데 중국집이 보인다. 오랜만에 짜장면과 군만두를 시켰다.

혼자 식당에 갈 때 나름의 룰이 있다.


-붐비는 시간 피해 가기

-1.5인분 시키기

-돈은 현금으로 계산하기


짜장면은 먹고 군만두는 싸 가야지 룰루 후루룩. 짜장면 속 면이 소면이라 약간 짜장 국수를 먹는 것 같다. 따뜻하고 달콤해서 피곤함이 풀리는 느낌이다. 군만두 몇 개만 먹어야지. 바삭한 군만두가 맛있어.

먹다 보니...

다 먹었다.

영덕 해송식당
영덕 고래불해수욕장



원래는 후포까지 다시 걸어가려고 했는데

비가 계속 내리고 바람도 심하게 분다.

우산이 자꾸 뒤집혀 폈다 접었다 하는 사이 비에 홀딱 젖었다. 도저히 다시 걸을 수가 없다.

버스를 봤더니 마지막 버스가 4시 10분에 있다. 그나마 이 시간이 맞을지 시골에선 장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 한 시간이나 남은 버스를 기다린다.



고래불해수욕장에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카페도 문이 닫혔다. 수퍼에서 뜨거운 커피와 아몬드 초콜릿을 사서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다행히 버스정류장 앞에 여닫는 유리문이 있어서 비와 바람을 피할 수가 있다.

옆에 앉으신 할머니와 초콜릿도 나눠먹고, 얘기도 하다가, 인터넷도 하다가 커피도 마시다가 하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오랜만에 페이스북

친구 글이 눈에 딱 들어온다.

글쎄 지금 전주에서 후포로 운전 중이라고 한다. 친구랑 내일 울릉도에 들어간단다. 이게 무슨 우연의 일치야!

남자였더라면 운명의 사람으로 생각했을 텐데 아쉽게도 여자인 그 친구와 우연의 만남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2019년 1월 부안 변산마실길을 걷고 있었다.

함께 변산마실길 2코스를 걸었던 친구들은 올라가고 나는 1코스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변산해수욕장을 지나 모래가 고운 고사포해수욕장을 걸었다.

저 멀리서 큰 배낭을 맨 멋진 남자가 걸어왔다.

와 멋있다. 큰 배낭이 잘 어울리는 남자!

그렇게 서로를 지나쳤다. 짧은 순간에 느낀 이상한 낯익음.

으응?

설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후 앞에 걸어가던 남자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세상에나. 너 지금 뒤돌아 봐봐.


그렇게 우리는 변산에서 만났었다.

서로를 남자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친구의 긴 머리는 겨울 외투에 숨겨져 있었고 등에 맨 배낭의 크기는 남자 것이라 해도 무방한 크기였다. 나는 혼자 장기여행을 할 때면 숏컷을 한다. 그리고 크고 빵빵한 남녀공용 롱패딩도 한 몫했다.

그렇게 우연히 반갑게 만난 우리는 변산마실길 3코스를 같이 걸었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5월 우리는 순천 와온해변에서 같이 캠핑을 했다. 내 생애 첫 캠핑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지금 후포로 오고 있다니!

내일 울릉도에 간다니!

우린 대체 무슨 인연인 걸까?



원래 후포에서도 캠핑하려했던 친구는

비로 인해 내 방에 합류했다. 반갑게 수다수다.

울릉도에 같이 간다는 친구의 선배는 피곤했는지 쉰다고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6시 30분 친구차에 탑승완료.

얼마 후 차 뒷 문이 열리더니 친구의 선배도 탑승했다.

앗 남자였다.

어제 친구가 같이 여행할 선배가 여자라고 했었는데! 취해서 그런 건지 피곤해서 그런 건지. 아 그래서 일행인 선배 방을 안 쓰고 나랑 썼던 거구나...'


아무튼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남자 선배가 합승하고 우리 셋은 비장하게 후포여객선터미널로 출발했다. 후포 버스터미널에서 십 분이 안 걸려 6시 40분쯤 여객선터미널에 들어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기상악화

출발 지연 상황이다.

8시 출발이던 배는 9시로, 10시로 계속 미뤄졌다. 출발할지 안 할지도 계속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선배는 먼저 아침을 먹었고 친구랑 나는 부족한 잠을 채우러 차에 앉아 눈을 붙였다. 9 시 30분이 넘었는데도 아직 출항 결정이 나지 않았다.

나의 간헐적 단식이 끝난 시간.

친구랑 아침을 먹기로 했다.

근처 식당에서 노릇노릇한 고등어구이를 먹고

다시 터미널로 왔는데 계속 지연상태다.

바람도 불고 추워도 너무 춥다.


친구는 울릉도에 못 가면 영주 주왕산과 남해 미량도에 갈까 생각했고

나는 너무 추워 집에 돌아가버릴까 잠깐 생각하다가 근처 숙소에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배는 계속 기다려서 어떻게든 울릉도로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친구는 영주 주왕산으로

나는 어제 그 숙소로

선배는 울릉도로 갔다.




□ 아침 고등어구이 친구가 방값이라며 계산

□ 점심 저녁 파리바게트 단팥 도넛 귤 홍시 커피 8천 원

□ 숙소 이화장 3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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