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일주도로 도보여행 1

사동 여객선터미널에서 현포항 냥꼬게스트하우스까지

by 풋풋씨

울릉도 일주도로 따라 걷기 첫날.

10월 27일 일요일 아침 7시 기상.

일어나서 지도를 찬찬히 살펴본다. 사동에서 도동 쪽으로 반 바퀴 걸어야겠다.

울릉도 한 바퀴가 45km 정도 되니까 22km씩 이틀 걸으면 되겠다.


걷는 것은 바이킹을 타는 것과 비슷하다.

긴장되고 두근거리고 두렵고 흥분되고 무섭고 재밌다. 심장이 쫄깃하고 배가 간지럽다.




울릉도는 지금 공사중

사동에서 북쪽 도동 쪽으로 걷는 길이 영 없다.

울릉도 2차선 도로는 정말 좁다.

거기다 2020년까지 대대적인 일주도로 공사를 해서 걸을 길이 더욱 좁고, 대형공사차량이 많이 다닌다. 아 난감하다. 걸을 수 있을까? 걷다 보니 여기서부터는 낙석위험구간이라고 쓰여있다. 아 어떻게 걷지? 길도 험하고 배도 고프고.

일단 밥을 먹자. 울릉도도 식후경.



어제 갔던 사동터미널 옆 2층 식당에 갔다. 아침이라 새 음식이 많고 어제보다 음식이 따뜻했다. 엉겅퀴 국에선 신선하고 기분 좋은 맛이 났다.

다시 간 나를 주인 분이 반갑게 맞아줬다. 오늘은 어디를 여행 갈 거냐고 묻는다. 걸으려고 하는데 길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더니


-걸을 수 있어요. 길은 험해도 걸을 수 있어요. 얼마 전에도 몇 명 걸었어요.

-아 정말요? 낙석위험구간도 있던데요?

-낙석위험구간은 조심하긴 해야 하는데 바위 먼 쪽으로 걷고 바람 안 부는 날 걸으면 걸을 수 있어요.


자신에 차서 알려주는 주인 분의 말은 마치 마법의 주문 같았다. 자신감이란 가루가 내 온 몸에 뿌려진 것같이 용기가 솟아났다.

감사의 말씀을 거듭 전하고 씩씩하게 식당을 나섰다. 신난다!



위쪽 도동 쪽으로는 길이 안 좋으니 아래쪽 남양 방향으로 걷자.

햇빛은 따뜻하고 바다는 새파랗고 나는 마냥 행복하다.


터널이 나타났다.

친구는 터널을 볼 때면 영화 터널과 하정우 배우가 생각난다고 했다.

나는 터널을 볼 때마다 한 남자가 생각난다.


그 남자는 국토대장정을 할 때 금산에서 대전으로 가는 터널을 같이 걸어준 마이콜님이다. 제주올레를 걷다 알게 된 마이콜 님은 대전에 빈 아파트를 국토대장정 베이스캠프로 내게 내어주고, 무시무시하게 긴 터널길을 같이 걸어준 국토대장정 은인이다.


터널을 보고 마이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편안하고 느린 충청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준다. 통화를 다 하고, 전화를 끊고도 고마움이 계속 남아있다. 그 힘으로 울릉도 첫 터널을 향해 걸어간다.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니 이번엔 낙석위험 구간이다.

겁이 많은 나는 최대한 바위에 멀리 떨어져 후다다닥 뛰는듯 걸었다.

이번엔 붕괴위험 지역이다.

후다다다닥.

그리고 또 터널이 나타났다. 거기다 이번엔 한쪽 방향만 신호 받아 갈 수 있는 좁은 터널이다.

울릉도는 지금 공사중이다.


쫄깃한 심장으로 터널과 위험구간을 벗어나면 눈부시게 새파란 울릉도의 모습이 수고했다고, 어서 오라고 반겨준다.

풍경을 만끽하며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에 몇 개의 간판이 보인다. 카페도 있을까?


여기는 울릉도 남쪽 남양마을.

카페는 안 보이고 식당은 많이 보인다.

하나로마트에서 커피와 말린 한치를 샀다.

과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옆에 가게에서 팔 거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옆집 가게 주인에게 물어봐주신다.

"아즈메. 과일있는교?"

옆집 가게에 가서 사과 2 개, 귤 10개를 5,0000원에 샀다.

엄청 큰 남양 버스정류장 앞 정자에 앉아 간식을 먹는다.


아 가방은 무겁고 어깨는 아프다. 갑자기 센치해진다.

'일주도로를 걷는 게 의미 있는 일일까?'

커피랑 귤을 먹고 다시 힘 내보자.



다시 걷기 시작

무쇠팔 무쇠다리로 다시 걷는다.

터벅터벅 걷는데 저기 길 한가운데 검은색 동물이 보인다. 위험한데... 차가 쌩쌩 다니는 길에서 뭐하는거야?

가까이 가보니 염소였다.

응? 염소가 내게 다가온다.

우선 차가 다니지 않는 오른쪽 안쪽 길로 염소를 유인했다. 내가 길을 건넜더니 나를 따라 염소도 길을 건넌다.


염소가 길 옆 바위로 올라갔는데 거기에 줄에 매여있는 다른 염소가 있다.

배가 고픈 걸까? 친구 목줄을 풀어달라는 걸까? 바위에 올라갔던 염소가 내게 다시 다가온다.

근데 저 멀리 주인인 것 같은 분이 기척을 하신다. 아쉽지만 작별인사를 해야겠다.

염소야 잘 살아야 해.


국민여가 캠핑장을 지나 동그란 다리 수충대교를 돌아 계속 위로 올라 걸어간다. 오르막 오르막길. 진안 모래재를 걸었던 게 생각난다.

올라가다 뒤돌아보니 바다가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이제 울릉도 북쪽

앞에 하얀 수력발전기와 빨간 동백꽃이 보인다.

한참을 걸었더니 이제 울릉도 북쪽이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 현포가 오늘의 걷기종료구간이다. 거기서 버스를 타고 사동 숙소로 돌아가면 된다.

첫날 걷기를 시작했다는 뿌듯함에 벅차 현포마을에 다다를 때, 영주 주왕산에 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보라색 모자 쓰고 있어?

-응


25일 오후 2시까지 터미널에서 기다려

울릉도에 들어와 여행 중인 친구 선배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나를 봤다고 연락했다고 한다.


또 한 번의 우연에 괜스레 웃음보가 터진다.

친구가 나에게 선배랑 저녁이나 먹어라고 하며 선배에게도 전해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때 현포에서 버스가 지나간다.

앗. 버스!

그래. 선배랑 저녁 먹고 차로 가면 되겠지.

근데 뭐 먹지?

울릉도와 독도 바다 300미터에서만 살고있는 독도새우를 먹어도 좋겠다!

간헐적 단식 시간이 시작됐지만

지금 나는 여행 중 이니까.

독도 새우니까.

혼자 생각하며 키득거린다.


선배 차를 기다리며 걷다 보니 현포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바로 앞 건물에 고양이 인형이 낚시를 하고 있다. 아 울릉도 게스트하우스 검색할 때 보았던 냥꼬네 게스트하우스였다.



사동에서 2박을 예약하고 다음 숙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갑자기 하얀 고양이가 우다다당 내게 다가온다.

털은 하얗고 눈은 왼쪽은 연두색, 오른쪽은 파란색인 예쁜 고양이가 내게 꼬리를 갖다 댄다.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으니 안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난다.


-게스트하우스 오셨어요? 오늘 예약하신 거예요?

-아니~ 예약은 아직 안 했어요.

-주인 전화번호 가르쳐드릴까요?

-아 저기 유리문에 붙어 있는 것 봤어요.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다시 정류장에서 선배를 기다린다.

울릉도 냥꼬네 게스트하우스



차를 타고 선배가 왔다.

25일 아침 몇 시간 잠깐 보고 통성명도 하지 않은 사인데 우연하게 울릉도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어색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선배가 갑자기 차를 엄청 빠르게 몰기 시작한다. 태하에서 일몰을 봐야 한다고 말이다. 태하에 도착하니 해가 이미 져서 일몰의 장관은 못 봤지만 해가 지나간 자리도 아름다웠다.



아 이제 저녁 먹으러 갈 차례.

선배가 말했다.

-짬뽕 좋아하세요? 현포에는 식당이 거의 없어서요.

빠바밤.

짬뽕이라니! 울릉도에서 짬뽕이라니! 내 독도 새우? ㅜㅜ

선배가 또 말했다.

-숙소는 어디예요? 사동이요? 사동 가는 버스 시간은 아세요?

빠바밤. 버스 시간표를 다시 봐야 한다.


인생은 늘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구나 쩜쩜쩜.

현포 반점으로 가서 짬뽕밥을 시키고 버스시간 놓칠라 시계를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선배는 아까 울릉도 수력발전기쯤 지나갈 때 걷는 나를 봤다고 했다. 처음에는 미친 사람인가 했다며 농담을. 근데 보라색 모자를 보았고 후포에서 친구랑 셋이 만났을 때 내 보라색 모자가 떠올랐단다.


그렇게 짬뽕밥을 먹으며 보라색 모자와 울릉도 풍경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앞 테이블에 아까 냥꼬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남자가 혼자 밥을 먹고 있다.

여기가 현포 맛집인가 보다.

해물이 맛있는 짬뽕밥을 먹고 버스정류장에서 선배와 헤어진다. 그래도 재밌는 식사였어요.



버스가 왔는데 아까 그 게스트하우스 남자가 탄다. 저 남자 정체가 뭐지? 울릉도사람인가?여행잔가?

버스 기사님께 이거 사동안 가죠?라고 하니 안 간다고 하신다.

혼자 버스정류장에 앉아 오매불망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놓치면 끝장이다.

해는 졌고 주변이 어두워진다. 다행히 건너편 냥꼬네 게스트하우스에 불이 켜져 있다. 주인인지 직원인지 주황색 옷을 입은 남자가 게스트하우스 유리문 안에서 뭔가 하고 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지, 벽난로에 나무를 넣는지.

아 불빛이 있고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라고 중얼거리며 버스를 기다린다.



조금 있다가 버스가 왔다. 막 달려갔다. 그런데 버스가...

버스가 그냥 가버렸다.

뛰어서 쫓아갔는데도 그냥 가버린다.

왜? ㅜㅜ

너무해 !!


주황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나와서 버스 갔어요?라고 물어본다. 다음 버스 오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텐데요...

아연실색 낯빛 창백해져 있는데 저기서 다른 버스가 온다.

사동 가는 버스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물어본다.


-이거 사동 안 가죠?

-가는데요.

-네? 아까 버스 지나갔는데...

-다른 버스 없는걸요.


그럼 아까 내가 본 버스는?

내가 허깨비를 본건가?

많이 걸었더니 이상해 진건가?

아무튼 가슴을 쓸어내리며 버스에 앉아 숨을 돌렸다.


신나는 팝송과 함께 기사님의 고난이도 운전실력이 펼쳐진다.

하트브레이커 드림메이커

팻 베네타의 노래 하트브레이커따라 버스는 질주본능.



저녁 7시 26분 숙소 도착.

커피를 마시며 숨을 고른다. 뭔가 신이 난다.

하트 브레이커! 드림 메이커!



아침 사동 터미널 옆 2층 한식뷔페 10,000 원

점심 남양 정자 귤, 한치, 커피 8.000 원

저녁 현포 반점 짬뽕밥 7,000 원

숙소 독도는우리땅 게스트하우스 30,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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