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일주도로 도보여행 2

현포 냥꼬네게스트하우스부터 관음도까지

by 풋풋씨



재밌는 꿈을 꿨다.

영어와 숫자로 나를 소개하는 꿈.

I am going to travel with healthy body. 블라블라블라.

숫자는 무슨 숫자를 말할까 하다가 핸드폰 번호 8자리로 나를 소개했다. 삼삼하고 팔팔하게 살기, 지구 둘레 40008km 걷기.

꿈속에서 사람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좋아하고 재밌어했다.

비틀스도 꿈에서 나온 곡조를 기록해 명곡 yesterday를 만들었는데 넌 무얼 만들 것이냐?



아침에 일어나 어제 샀던 사과를 깎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는 달걀 두 알을 프라이했다.

보통 게스트하우스에는 조식이 포함돼 있다. 대부분 아메리칸 스타일로 식빵 토스트, 달걀, 커피, 우유 또는 주스, 시리얼 등이 나온다. 좋은 곳은 제철 과일도 나온다. 대부분은 직접 요리하고 직접 설거지해야 한다. (달걀 프라이를 한 프라이팬 기름도 종이로 닦아줘야 한다.)

어제 샀던 사과 한 알, 프라이한 달걀 두 알 그리고 달달한 믹스 커피로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한다.



아 오늘은 어떤 일들을 만나게 될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괜스레 기분이 좋다. 이것이 여행의 힘 아니겠는가?


좋은 곳을 여행하면 자꾸 더 있고 싶어 진다.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한다. 그러다 까딱 잘못(?)하면 그곳에서 살게 되기도 한다. 30일 출항이었던 배편 예약을 취소하고 31일로 새로 예약한다. 11월 1일 날 서울에서 약속이 있었기 망정이지 아니면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 머물고 있는 사동 숙소는 오늘 체크아웃한다. 저동항에 있는 깨끗하고 편해 보이는 게스트하우스로 이틀 예약하고 결제했다. 1박에 조식 포함 35,000 원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건조가 가능한 세탁기가 무료라는 것! 밀린 빨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개운하다.



새로 예약한 숙소에 배낭을 맡기고 나비처럼 사뿐사뿐 가볍게 걷고 싶지만, 아! 나비는 안 걷지! 아무튼 짐을 맡기려면 저동에서 내려서 짐 맡기고, 다시 저동에서 현포행 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 시간이 영 맞지 않다. 해가 5시 30분 정도에 지는데 걷는 시간이 너무 작아진다.



그래 이것이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내 삶의 무게이겠거니 하며 배낭을 다.

으! 가방이 너무 무거운데...!

내 삶이 이렇게 무거운 건가?

소싯적 산티아고 걸을 때는 가을에 9kg, 겨울에 12kg (간식 넣으면 14kg) 배낭을 메고 걸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었다. 지금 내가 메고 있는 배낭은 몇 kg일까? 대략 6~7kg 정도 될 것 같다.



밖에 나오니 날씨 좋다 에서 덥다로 바뀐다.

해가 쨍쨍이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체크아웃 시간 아침 9시 50분.

10월 28일 날씨 맑음. 현재 온도 12도. 개인적 체감온도 22도.


10시부터 사동항 버스정류장에서 오매불망 버스를 기다린다. (목이야 조금 더 길어지고 가늘어져라.)
10시 20분 버스 탑승. (다행히 울릉도 버스 시간표는 거의 정확하다.)



바다를 가깝게 보기 위해선 오른쪽 자리에 앉아야 하지만 버스가 아니 울릉도 도로가 너무 좁고 무섭다. 그나마 기사님 뒤쪽 자리가 안전하다는 (사고가 났을 때 운전하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핸들을 꺾는다는 기사를 봤다.) 소리에 왼쪽 맨 끝자리에 앉았다. 풍경도 생명이 있어야 보니까. 그나저나 이 풍경!


풍경에 넋 놓고 있는데 옆에 앉으신 아주머니가 앞에 앉은 갓 돌 된 것 같은 아이를 보고

"어구 이뻐라!"

"아들이고?" 하신다.

아이 어머니는 그전까지 생긋 웃었었는데 이번엔 무표정으로 대답을 안 한다. 대답을 안 하는 거보니... 딸인가 보다. 앞으로 말을 아끼고 가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구 이뻐라까지만 해야겠다.



나도 어구 이쁜 아이가 보고 싶은데 아이 엄마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드디어 아이랑 눈이 마주쳤다. 웃긴 표정, 놀란 표정, 이쁜 표정 지어 아기를 바라보니 아기가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서 숨었다가 나를 쳐다보고 숨었다가 다시 쳐다보며 웃는다. 한참 웃다가 놀다가 아이는 내렸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탔다.

앗 어제 그 남자다.



현포게스트하우스, 현포반점, 현포버스정류장에서 어제 하루 세 번 본 그 정체모를 남자 말이다. 그 사람이 내 대각선 앞자리에 앉더니 울릉도 지도를 펼친다.

아 울릉도 사람 아니었어? 여행객인건가? 다시 현포 게스트하우스까지 가는 거야? 스탭이야? 그 사람은 현포 게스트하우스 한 정거장 전에 내린다.

안녕히 가세요. 여행 잘하세요. 작게 인사해본다.



버스에 내렸는데 진흙이 미끄럽다.

날이 추워지면 도로에 블랙아이스가 생겨 많이 위험하다. 대부분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차도 사람도 위험한데 블랙아이스처럼 브라운 머드도 위험하다. 신발에 진흙을 안쪽에서 털어내고 시간을 보니 11시 30분.

어제 걷기를 마쳤던 현포 냥꼬네게스트하우스 앞 버스정류장이다. 정류장 뒤에 바다전망 나무의자를 보며 어제 만났던 붉은 새(붉은머리뱁새?) 보는 거 아니야 했는데 그 새랑 비슷하게 생긴 새랑 잿 보랏빛 새가 보이고 그 새가 내 바로 옆 나무계단 난간을 치고 간다. 흐흐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울려 퍼지는 새소리가 청아하다. 근데 아침 9시에 먹었는데 나 왜 또 배고프지? 나무의자에 앉아 주린 배도 채우고 오늘 걸을 길도 살펴보기로 한다. 갈매기를 주려고 산 새우깡을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걷기 전 숨 고르기를 한다. 아 걷기 전에 화장실도 가줘야지! 현포항 화장실.

놀랍도록 깨끗하다! 거기다 세상에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천장은 통유리라 햇빛이 들어와서 화장실이 뾰송하다. 이런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박수를!



12시 18 분.(48분이나 쉬었다.)

가볍게 그리고 비장하게 걷기 시작!

한참 열심히 걷고 있는데 어디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태워주까요"

흰색 차를 탄 아저씨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물어본다.
"아니요. 고맙습니다. (너무 단호하게 말했나)


얼마전 일이 생각난다.
후포해수욕장부터 영덕 고래불해수욕장까지 걸을 때 한 차가 섰다. 영덕아산병원 차였다. 그리고 들리는, 사투리 같지 않은 사투리에 친절 한 숟갈 얹은 목소리.

-어디까지? 가시지요?
-아, 다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때 그 기분 좋은 느낌의 친절이 기억나 미소 짓고 다시 씩씩하게 걷는다.



울릉도 길은 사진 찍다 비명횡사하기 딱 좋은 길인데 너무 예뻐서 자꾸 멈춰 서게 된다. 그러다 앞에 길이 비좁고 큰 차들이 오고 있어서 공사 도로 안쪽에 살짝 섰다.


-아가씨~여긴 길이 아니거든요~

끝을 살짝 올리며 들리는 소리.

안전모를 쓴 아저씨가 친절하게 얘기하신다.
-아, 차가 와서 다칠 수가 있어서 잠깐 실례를... 저기로 나가려고요~

친절하게 상황설명을 하며 양해를 구한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좋은 여행 되세요~


미소 미소 친절 친절.

울릉도 아저씨는 대체로 친절하고 부드러운 것 같다. 맑은 친절에 또 기분이 좋아진다.
아 그나저나 길이 너무 예뻐서 갈 수가 없어. 걷다가 멈춤. 걷다가 찰칵. 걷다가 대피. 안 그래도 느린 나는 더욱 느리게 울릉도 일주도로를 걷는다.



오후 1시 50분. 배가 몹시 고프다.

(난 왜 계속 배가 고픈 것일까?)

아까 버스 타고 가는 길에 눈여겨봤던 만광 식당으로 들어갔다.


-혼자 왔어요?
아가씨도 혼자 놀러 오는 사람도 있구먼.

-네. 혼자 왔어요. 오징어 파전돼요?
-오징어가 없어요.

파전도 반죽해놓으면 먹을 사람이 있어야 하지.
물회만 돼요.


-그럼 오징어 물회 돼요?

-(아까 오징어가 없다고 얘기했는데)

오징어가 없어요.

지금 꽁치 물회만 돼요.
울릉도에서 꽁치 물회 먹었다 하면 다 놀랄 거예요.

-안 비려요?

-비리면 어떻게 장사해?


드디어 꽁치물회 등장.

-아, 꽁치가 너무 많은데 덜게 그릇 좀 주세요. 근데 물횐데 물이 없어요?


이건 이렇게 비벼가지고 하시며
한 5 분은 비비신다. 그리고서 물을 부어가지고
다시 비비신다.
꽁치 물회 양이 너무 많은데 하면서 한 숟갈.


아 이 맛은 마치! 입속에서 푸른 바다 꽁치가 힘차게 헤엄치는 맛이려나 뭐라나?
거기에 반찬으로 나온 냉 오이피클, 가지 조림, 부지깽이나물까지 다 너무 맛있어! 행복감이 온몸에 또 스르르 퍼져나간다.

맛있는 걸 먹을 수 있고 소화시킬 수 있음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만광 식당 054-6004 / 경북 울릉군 북면 울릉 순환로 3112 / 꽁치 물회 15,000 원)



주인아저씨께서 물어보신다.

-요즘 게스트하우스는 얼마요?

-울릉도는 보통 3만 원에서 3만 5천 원 하더라고요.

-비싸네.

-민박은 얼만데요?

-민박 4만 원.
-민박이 더 비싸잖아요.
-민박은 크기가 운동장이여.

-근데 게스트하우스는 아침도 줘요.

-그러면 괜찮네.

여기 토박이인데 오징어가 작년까지만 나고 올해는 씨가 말랐어. 중국어선이 싹 다 잡아가고. 울릉도에 오징어가 없어.
여기는 손님도 별로 없어. 마을 주민이나 개인여행자가 오고, 단체 관광객은 나리분지 같은 데서 밥 먹지.

그래도 우리 식당은 맛있다고 소문난 집이여! 저기 봐 봐! 텔레비전에도 나왔어!

아저씨의 합당한 자부심을 들으며 가게 문을 나선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가는데 바다 위에 다리가 있다. 천부 해중전망대다. (마을 이름이 천부.)

천부 해중전망대는 바닷속 전망대로 자라 돔, 벵에돔, 돌돔, 고등어, 복섬, 따개비 등을 투명한 유리창문을 통해 눈앞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해수면부터 수심 6미터까지 표시가 되어있다. 수심 6미터에서 10개의 유리창을 통해 물고기를 볼 수 있다.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니 정말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수영부터 배워야지!)


아까 먹었던 꽁치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새끼 복어가 귀엽다. 복어는 귀여운 물고기였다. 아까 복어를 안 먹어서 천만다행이다.


한참을 바라보는데 계단을 우당탕탕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우와우와 감탄사가 쏟아진다. 중고등학생들인가 보다 하고 웃으며 돌아보니 육군사관학교 학생들이 신기한 듯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다. 마냥 늠름해 보였던 모습만 있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맑을 수가.

(천부 해중전망대 054-791-6983 /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리 718-54 / 입장료 4,000원 / 자매도시 할인 확인)



새끼 복어와 인사하고 나와 다시 걷기.

지금 시간 3시 15분.

울릉도는 2차선 도로지만 거의 1차선이라고 봐야 한다. 오른쪽으로는 큰 바위가 버티고 있고 바위 옆으로는 공사 중인 트럭들이 버티고 있다. 지금 울릉도는 한창 공사 중이다. 2020년까지 일주도로 확장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가다 보면 낙석위험 가다 보면 붕괴위험 가다 보면 추락위험이란 글자가 친절하게 조심하라고 말해준다. 심장이 쪼그라들어서 살살 걷고 있는데 아스팔트 도로 위에 갈매기 발자국이 나있어 재밌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걷다 보니 바닷속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바위 세 개가 나타난다. 삼선암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세 명의 선녀가 울릉도가 너무 아름다워 올라갈 시간이 돼서도 안 올라가 바위로 변해버렸다는 그 바위다. 갈매기 발자국과 삼선암을 보며 걷고 있는데 누가 나를 땅속에서 잡아끈다. 누구세요? 하며 보니 철사가 신발끈 사이로 들어와 있다. 아 뭔가 아찔하다. 다행히 앞에 차도 안 오고, 옆으로 추락구간도 아니었다.




드디어 오늘 걷기 마치는 구간이 나타났다.

선창 버스정류장 옆으로 난 '울릉국화' 카페 안내판이 재밌다.

스무스하게 스무디 한 잔!

에지 있게 시원한 에이드!

아 아메리카노는 필수!

어느새 해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 시간은 5시 언저리.


관음도를 바라보며 추위와 기다림으로 지쳐갈 때쯤 온 반가운 버스.
어디 가세요? 끝을 살짝 올리시며 말해주시는 부드러운 울릉도 분들께 감사 하다. 버스 안이 따뜻하다.
다행히 관음도와 저동항 숙소가 가까워 일찍 도착했다. 씻고 다른 짐들은 사물함에 우선 몰아놓고 빨래들을 모아 돌린다.


아 오늘 내내 기분이 좋고 평화로웠어.

정말 좋았어.

지금도 정말 좋아.




숙박 위드유 미니호텔 35,000 원 (조식 포함)
점심 천부 만광 식당 꽁치 물회 15,000 원
입장료 천부 해중 박물관 4,000 원
버스비 5200 (1400원* 3번)



keyword
이전 05화울릉도 일주도로 도보여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