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일주도로 도보여행 3

관음도부터 다시 사동 여객선터미널까지

by 풋풋씨

일주도로 걷기 마지막 날

오늘은 관음도에서부터 사동 여객선터미널까지 걸어 울릉도 해안도로 일주를 마칠 예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벼운 게 좋다.

걸을 때 필요 없는 물건들은 몽땅 게스트하우스 사물함에 넣었다.

정말 좋아하고 중요한 것만 지니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그렇다.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기도 짧은 인생이니까.



같은 방에서 머무는 사람이 말을 건넨다.

어젯밤 숙소에 내가 도착한 후 5분 있다 온 사람이다.

"오늘은 어디 가세요? 혹시 저녁 시간 맞으면 같이 저녁 드실래요?"

"그럴까요? 울릉도에선 정말 혼자 밥 먹기 어려워요! 근데 여행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맞으면 그렇게 해요 우리"

그렇게 개인 여행 일정이 맞아 저녁6시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다면 이란 조건 아래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버스정류장가는 길에 보이는 보라색 해국이

꽃다발 선물 같아 설레는 아침이다.


저멀리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 울릉도에서 버스를 보면 어찌나 반가운지.

가끔 5분 정도 늦어질 때는 있어도 울릉도 버스 시간은 정확하다.


예전 부안 변산 마실길을 걸을 때 버스 시간이 안 맞아서 영 애 먹었던 걸 기억하면 울릉도 버스 도착시간은 훌륭하다.

거기다 기사님 운전실력도 대단하다.

2차선이지만 공사 중인 대형트럭과 안전 표지판 등으로 1차선 같은 좁은 도로를 고도의 전문 기술을 선보이며 부드럽게 통과한다.

거기다 모두 친절하시다. 버스에 타면 "어디 가세요?"라며 부드럽게 물으신다. 정확하고 전문적이고 친절한 울릉도 기사님 최고!

지금도 버스가 왼쪽에 서 있는 공사차량을 아주 천천히 지나간다. '아 여기를 지나갈 수 있어? 닿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내 심장도 쫄깃해진다.' 심장을 부여잡고 기사님을 바라보니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하는 모습으로 신중하고도 진중한 모습으로 공사차량을 통과했다. 아 멋있으시다 정말.



어제 걷기를 마쳤던 곳인 선창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조금 걸으니 관음도다.

관음도는 2012년에 생긴 다리로 걸어서 갈 수 있다. 독도와 죽도에 이어 울릉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관음도에는 현재 사람은 살지 않고 깍새(슴새), 꿩, 괭이갈매기와 후박나무, 동백나무가 어우러져 살고 있다. 중형 조류인 깍새가 많아 깍새섬이라고도 불린다. 바다로 난 다리를 따라 관음도로 들어가면 멀리 삼선암과 죽도를 바라볼 수 있다. 또한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나 있다. 관음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시간은 약 1 시간 정도 걸린다.



매표소에 가서 입장권을 끊고, 울릉도 스탬프도 찍는다. 매표소 유리를 바라보니 자매도시 안내내용이 적혀있다. 입장권 요금은 4,000 원인데, 자매도시는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입장권을 끊기 전에 자매도시임을 밝히고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자매도시 10 곳에 내가 살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경기도 안양시, 구리시, 성남시, 경북 포항시, 경주시, 전남 신안군, 충남 보령시, 미국 텍사스주 그랜프레리시. 아 아깝다. 구리시 바로 옆 남양주시는 왜 자매도시가 아니던가?


바다 위로 난 다리 길이는 104m인데 높이가 높아서인지 다리 위에 내 다리는 정신을 잃고 후들거린다. 바위에 박힌 다리 연결 구조물이 왠지 못 미더워 보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허우적대다가 어제 산 쥐포를 씹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아 올라간다.


관음도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울릉도가 평화롭다. 갈대는 바람에 빛나고, 바다는 햇빛에 빛난다.

꿩은 무엇을 하고있는지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다. 관음도는 바람이 안 불고, 따뜻한 낮에 걸으면 정말 기분 좋을 것 같다. 세찬 바람에도 불구하고 무사하게 관음도를 잘 걷고 돌아 나온다.

10시 50분에 들어가서 나오니 12시 14분.




이제 본격적인 일주도로 걷기 시작이다.

관음도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섬목 터널. 그후로 와달리터널, 내수전 터널.

그런데 터널 하나의 길이가 자그마치 1950M! 195M도 아니고 1950M라니! 약 2Km!

어두운 터널 속을 30 분이나 걸어야 된다.


마음 단단히 먹자.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고 덜컹거리는 돌을 밟으며 이매진 드래곤의 내추럴 노래에 맞춰 힘 있게 터널을 걸어간다. 돌은 덜컹거리고 걷는 길에 경사도 나 있어서 잘못하면 옆으로 미끄러질 것만 같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터널이 싫은 이유는 많다.

1 차가 많고 길은 좁아 위험하다

2 묵힌 먼지들이 가득하다

3 갇힌 느낌이 들어 답답하다

4 영화 터널이 생각나서 무섭다

5 햇빛이 없어 어둡다

6 바람이 없어 답답하다

7 식물이 없어 메마른 느낌이다

8 동물도 없어 심심하다

9 끝이 안 보인다

하지만 터널을 안 지나고 못 가는 길도 있다.

터널을 만났을 때는 묵묵히 걷는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아도 끝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고 한 발 한 발 옮겨 계속 걸어가야만 한다. 그렇게 걷다가 걷다 보면 저 끄트머리에 조그만 빛이 비치고 결국엔 나가는 구멍이 보이고 마침내 터널을 통과할 수 있다.



씩씩하게 섬목터널과 와달리터널을 걷고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보이는 내수전터널. 계속 이러기야 정말. 내 마음 와르르. 좀 쉬어야겠다.

터널 앞에 있는 와달리 공원에서 쉬자.

내겐 맛있는 홍시와 사과가 있다고! 과일들을 보자마자 힘이 난다.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고 햇빛에 발을 말리며 사과를 와삭 한입 베어먹는다.


카톡 소리가 울린다.

선배의 메시지다. 걷기 첫날 같이 짬뽕밥을 먹었던 그 선배. 본인은 이제 배를 타고 울릉도를 나간다고 나보고 울릉도 여행 잘하라고 인사해준다. 그러면서 걷는 나를 존경한다고 말해준다. 존경까지 흐흐.


과일과 칭찬으로 다시 힘을 얻어 내수전 터널을 걸어간다. 터널을 걸어 나오니 큰 배낭을 짊어진 남자가 내가 걸어온 방향으로 걸어간다. 괜히 반가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넨다. 오늘만 걷는 남자만 세 명을 만났다. 모두 나랑 반대방향으로 걷는다. 같은 방향이라도 같이 안 걸었겠지만. 걷는 사람을 본 것 만으로 마냥 반갑다.



1시 48분. 해는 가려있고 날씨가 쌀쌀하다.

이럴 때 핫팩은 정말 유용하다. 편의점에서 산 핫팩이 생각보다 따뜻하고 오랫동안 따뜻해서 큰 도움이 되었다.


2시 30분. 드디어 저동에 도착했다.

사과와 홍시를 먹었지만 그것은 간식일 뿐. 배가 고프다. 옆 식당 전광판에 돈가스와 초밥이라는 글자가 지나간다. 2시 45분 식당으로 들어간다.

3시까지 런치메뉴라고 쓰여있는데 그중엔 돈가스도 있는데 지금은 2시 45분인데 돈가스가 안 된다고 한다. 지금 되는 것은 모둠초밥뿐이라고 한다. 다행히 초밥을 좋아한다. 얼마후 나온 초밥이 정말 맛있다. 반찬으로 나온 말린 작은 새우도 고소하고, 과일 샐러드도 맛있고, 생선초밥도 크고 엄청 싱싱하다.


숙소에서 가깝길래 내일은 시간에 맞춰서 와서 돈가스를 먹어볼까 하고 런치메뉴를 먹으려면 몇 시에 와야 되냐고 물었더니 난색을 표하신다. 여기는 대부분 관광객보다 군민 상대라고 하시면서. 울릉도에선 혼자 가면 밥 먹기 어렵다면서. 두세 명이 오거나 한 명이 오거나 하는 수고와 나가는 반찬은 똑같다며, 그래서 손해라며...


아 울릉도에서는 정말 혼자 밥 먹기가 힘들다. 그래도 맛있으니까 나중에 친구나 동료 생기면 또 와야겠다. 먹을 것 앞에 자존심은 잠깐 저멀리.


든든하게 밥을 먹고 나오니 어디선가 애처로운 고양이 소리가 들려온다. 골목에서 나는 귀엽고 가여운 새끼 고양이 소리. 밥을 주고 싶어 다가갔지만 멀리 도망가버린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몇 집을 지나니 집 안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큰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보인다. 너무 귀엽다. 하지만 한편으론 쓸쓸했다. 길에 있는 저 작고 춥고 배고픈 고양이도 저렇게 따뜻하고 배부르면 좋을 텐데...


화장실도 급하고 해서 저동 숙소에 갔는데 1층에 머물던 몇 사람이 체크아웃을 했나 보다. 사장님께 여쭤보고 괜찮다고 하셔서, 옛날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2층 내 침대보를 1층으로, 1층 새 침대보를 2층으로 옮겨놓고 다시 숙소를 나선다.



지금 시간 4시 20분.

여기서 첫날 출발했던 사동 터미널까지 약 4.4km. 약 1시간 거리다. 해가 곧 지기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한다.

저동에서 도동을 지나 사동까지 가는 길이다.


숙소를 나와서 걷는 길이 상당히 오르막이고 도로도 좁고, 커브길도 많아 아찔하다. 커브길에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차가 나를 못 볼 수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통과해야 하고 하얀색 선 안으로 바짝 붙어서 걸어야 한다. 약 4km의 길이지만 회전 도로 아니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터널은 정말 다시 보기도 지긋지긋하지만 회전 도로도 만만치 않게 위험해 보인다. 터널구간이 그래도 짧아 보이니까 다시 힘내서 터널로 가보 자하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왼쪽으로 119 소방서가 있다. 늘 고맙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소방대원! 키가 크고, 짧은 회색머리에 덧니가 있는 소방대원이 웃으며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인사하며 "대단하시네. 근무만 안 하면 길동무라도 해줄 텐데..." 하며 농도 건네신다. "더 수고 많으세요"라고 인사하며 길을 걷는다. 땀 흘려 애쓰는 소방대원 분께 이런 말을 들으니 더욱 기운이 나고 어쩔 줄 모르겠다.

이 기운으로 마지막 터널 울릉터널로!



다행히 울릉터널은 길이가 짧다!

게다가 사람이 걷는 길이 따로 평평하고도 넓게 나 있다.

정말 터널 중에 울릉터널이 제일 좋다!

터널을 지나 걷다 보니 바다에 불을 켠 오징어 배가 한 척 보인다. 수많은 오징어는 어디로 갔을까? 순창 하면 고추장이 떠오르듯 울릉도하면 딱 오징어인데 말이다. 어제 갔던 만광 식당 사장님은 울릉도 토박이신데 작년부터 오징어가 잡히지 않더니 올해는 아예 잡히지가 않는다고 한다. 기사를 찾아보니 오징어는 보통 9월에서 11월에 많이 잡히는데 올해 성어기 어획량이 작년 10% 수준이라고 한다. 오징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중국어선이 싹 쓸어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지구온난화로 바닷물이 따뜻해져 다른 바다로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덧붙여 새끼 오징어인 총알 오징어를 잡았을 때 놓아주지 않고 팔아버려 자랄 오징어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징어들의 가출이 빨리 끝나 보기를 바라며 걷는다. 오징어 배의 하얀 불빛과 등대의 초록 불빛이 길을 밝혀준다.




이제 다 왔다.

걷기 시작했던 사동항 매점.

아 뿌듯하고 뿌듯하도다!

저 멀리 있던 치즈 고양이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내게 다가온다.

-축하해주는 거야? 너도?

기분이 더 좋아진다. 근데 마냥 여기서 고양이랑 놀 수가 없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려면 왔던 길을 10 분 정도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버스시간도 임박하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데 고양이가 따라온다.


-나도 데려가 야옹.

-미안하지만 안 돼. 안녕. 잘 있어.

인사를 하고 걷는 듯이 뛰어서 구장흥초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날이 어두워서 날 못 보고 그냥 가버리면 어떡하지 걱정되고 무섭다. 지금 시간 5시 55분. 다행히 버스정류장 옆에 큰 식당이 있다. 그래도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내가 있음을 알리고 금의환향하듯 버스에 탔다.



저동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도동에 내려서 10분 기다렸다 저동행 버스를 탄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도동을 둘러보니 번쩍번쩍 가게들이 많다. 빨간 떡볶이도 맛있어 보이고, 돌솥따개비밥, 돌솥문어밥도 맛있어 보인다. 그냥 따개비밥과 홍합밥은 봤어도 돌솥밥은 처음이다.

씨앗호떡집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맛있어 보인다. 같은 방 사람은 이미 저녁을 먹었겠지. 6시 20분 버스를 타고 10분 만에 저동항에 도착해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저동항 편의점은 엄청 크다. 사과, 바나나, 밀감 등 과일과 바비큐 코치도 있다. 배가 너무 고파 닭꼬치를 사서 편의점 앞에서 먹었다. 그리고 다시 컵떡볶이와 생크랩, 커피 등을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 2층 카페에 가니 시간이 맞으면 같이 저녁을 먹자 했던 같은 방 분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저녁을 아직 안 먹었고 이제 독도 새우를 먹으러 간다고 한다. 독도 새우는 울릉도와 독도에서만 나는 새우인데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먹으면서 한번 회자가 되었었다. 닭새우, 꽃새우, 도화새우 세 종류가 있고 2인분에 12만 원이다. 후덜덜덜. 12만 원이라니! 같은 방 분이 괜찮으면 같이 가자고 한다. 아니면 혼자 간다고 한다. 아까 식당에 들려서 혼자 가도 된다는 승낙을 이미 받았다고 했다. 가서 식당 주인분께 "저 정말 독도 새우 먹고 싶은데 1인분은 안 될까요? 먹고 싶은데!" 솔직하고 애교 있게 말해서인지 포장은 안 되고, 식당에서 1인분을 6 만원에 먹어도 된다고 했다.

아 고민된다.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독도 새우. 그런데 이미 먹은 닭꼬치와 먹을 컵떡볶이가 한 번 발목을 잡고, 아까 천부 해중전망대에서 보았던 귀여운 물고기들 생각이 두 번 발목을 잡는다. 6만 원이란 거금도 또 발목을 잡는다. 날이 추원서 다시 밖에 나가지 않고 안에서 쉬고 싶은 마음도 컸다.



결국 난 혼자 카페에 앉아 인스턴트 컵떡볶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맵고 달달한 떡볶이를 먹는다. 울릉도까지 와서 평소에도 잘 안 먹는 인스턴트 음식이라니! 떡볶이를 먹고 9시까지 방에도 안 들어가고 카페에 있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낮에 햇빛 받으며 울릉도 카페에 앉아 있고도 싶고, 책도 읽고 싶고, 낮잠도 조금 자고 싶은데... 그리 많이 걷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빠른 느낌이다. 지금 걷는 것에 반만 걸어야 하나? 흐흐



숙소에 들어오니 옆 게스트분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나를 반긴다. 독도 새우 정말 맛있어요. 1인분에 10마리가 나오는데 사진 찍으라고 테이블에 올려준다음 머리는 잘라서 튀겨주고, 몸통은 껍질 까서 회로 먹으면 돼요. 껍질을 까는데 새우가 움직이고 놀라서 소리 질렀더니 직원이 껍질도 까줬어요. 흐흐 뭔가 재밌고 생동감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기분이다. 내일 아침 일출 보러 갈 건데 혹시 갈 거면 같이 가요. 만약 일어나면요 라는 전제를 또 붙이고 굿나잇 인사를 했다.

일출과 독도새우를 그려보며 잠이 든다.





아침 위드유 게스트하우스 조식

점심 우산국 모둠초밥 17,000 원

저녁 저동항 편의점 닭꼬치, 컵떡볶이, 크랩

숙소 위드유 게스트하우스 35,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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