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오랜 기간 브런치를 쉬었습니다.
글을 남기는 것 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많이 놓였었네요. 핑계겠죠.
제이든은 이직을 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이직을 해서도 제이든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해나간지 어연 8개월이 되었고, 제가 풀려고 했던 문제들의 반도 풀지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내가 지금 편하다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철학처럼 믿고 있는 문장입니다. 그렇기에 높은 산이나 벽을 만나면, 열심히 발을 굴리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받으며 나아가는데요. 입사한 지 3일만에 너무 높은 벽을 만나버렸지 뭐에요. 8개월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저 문장이 맞는 것 같아요. 역시 사람은 고난(이라 표현하기에는 강도가 약하지만,)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아요. 8개월 전과 지금의 저의 성장 차이를 A4 한줄로 서술 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좋은 조직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인 것 같아요.
새로운 소식, SEO 컨설팅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1년,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며 얻어낸 작은 깨달음들이 있습니다. 처음엔 그저 나만의 시행착오였고, 아직도 대단한 인사이트라고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의외로 그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실마리가 된 경험을 종종 하게되었습니다. 멘땅의 헤딩들을 통해서 얻은 여러 피딱지들.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더 빠르게, 더 적은 시행착오로 목적지에 닿을 수 있도록 돕고싶었습니다.
관련한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프로필의 이메일로 가벼운 문의를 주세요. 커피 한잔과 함께 하는 일 이야기에 기쁨을 느낍니다.
심심한 근황을 말씀드리며 오늘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긴 이유는 다름아닌,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제 1순위 팟캐스트 최성운의 사고실험을 찾아주신 런베뮤의 대표 디렉터 RYO님의 인터뷰 영상을 봤어요. 그리고 RYO님이 나오신 여러가지 모든 영상들을 찾아보며 얻게된 관통하는 하나의 문단을 브런치에 적기 위해서입니다.
모두가 그냥 크리에이터로 각자의 퍼포먼스를 하고 각자의 아카이브를 잘 수집하고 그걸 기록해서 자기가 보면서 계속 자기가 디벨롭 되는 그런 세상이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_ RYO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어 팔았던 그녀, 자기가 먹고 싶은, 가고 싶은 공간을 만들었더니 F&B의 대부가 되신 그녀. 가장 본인의 취향을 그려냈더니 그게 가장 대중적이였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갈증에 충실했던 결과입니다.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었어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어쩌면 그건 너무 단순해서, 그래서 더 어려운 말이 아닐까요. 자기 취향을 지키는 일. 그 취향을 구체화하고, 형태를 만들고, 타인에게 설득하는 일.
제이든은 마케터입니다. 누군가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더 잘 닿게 하기 위해 매일 수많은 광고 문구를 보고, 트렌드의 방향을 분석합니다. 어떤 키워드가 검색에 잘 걸릴지, 어떤 문장이 클릭을 유도할지,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그건 분명 ‘마케터 제이든’의 일입니다. 하지만 문득, 이 질문이 남았습니다.
나 제이든은 누구였을까?
대중의 반응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일은 때론 스스로의 색을 조금씩 걷어내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꾸만 다듬어지고, 무뎌지고, 어느 순간엔 무색무취의 언어로 세상을 설득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취향이 뾰족한 사람들을 보면 유난히 눈이 갑니다.
그들은 문장을 써도, 걷는 걸음을 옮겨도, 자신만의 결을 숨기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그 결을 ‘불편함’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뾰족함이 오히려 진짜라는 신뢰를 줍니다.
뾰족하다는 건, 단단하다는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져갑니다.
오래도록 스스로를 들여다보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그런 사람들을 오래도록 동경해왔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조용히 다짐했었습니다. 올해는 나의 단어들을 조금 더 정제하고, 무색무취였던 나에게 색을 입히자. 나의 말투, 나의 문장, 나의 취향을 조금씩 세워보자고.
하지만 그렇게 다짐한 해의 중간에서, 조금은 다시 흐려지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다시 기점을 새깁니다.
다시 한번 더, 나의 언어를 조각해봅니다. 흔들리더라도, 휘어지더라도, 나만의 결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요.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만의 언어’라는 것이 거창한 선언이 아닌, 조용한 반복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자신의 결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문장은 충분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