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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나 Feb 26. 2020

무엇을 위한 검열인가

작가_ Sophy

제22조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가진 자유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 공권력뿐 아니라 그 누구도 내가 하려는 표현에 대해 간섭하거나 침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반민족적이거나 반인륜적인 표현을 아무런 제재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 모든 학문과 예술은 표현의 자유를 가졌지만, 검열의 과정을 필수로 거친다. 나는 다수가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 서로 약속한 규칙과 같은 것들을 누군가가 대신 행해주는 것이 검열이라고 생각하고, 분명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역설적으로 검열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원치 않은 상황에서 타인에 의해 또는 나 스스로 너무 심한 검열을 행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쓰는 이 글도 몇 번이나 되 읽어보고 고치고 또 고친다. 이것은 글을 잘 쓰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혹여라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 의해 나의 작은 흠이라도 잡혀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이상한 사고를 하는 사람으로 비치게 될까에 대한 두려움이다. 타인의 시선에 굉장히 움츠러들어 있고 위축되어있다. 나 스스로 끊임없이 검열하는 것이다. 내게 있어 예술도 비슷한 맥락으로 진행된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들은 너무나도 진보적이고 거침이 없어 이 작품 또는 기획을 바라보는 다수의 이들이 나와 함께 공감할 수 있을까부터 시작하여 과연 이 계획안이 어떤 단체든 통과될 수 있을까, 지원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고개를 저으며 자꾸 안전한 길로 변경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그곳이 띄는 성격이 있다. 그 성격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모두가 검열하고 (검열당하고) 길들여진다. 삐죽삐죽 모가 나면 안 되는 것이다.

사실 문화예술 분야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로부터 가장 자유로워야 한다. 사회의 부조리한 제도, 상황 등에 대해 그 어떠한 압력도 없이 자유롭게 위트 있게 (또는 센스 있게!) 비판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며 생각하지 못했던 개개인의 문제, 더 나아가 공익에 대해서도 각자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7년 특검에 의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진실이 밝혀졌던 우리의 과거가 떠오른다. 이 사태로 인해 2018년 민간위원과 예술위원회로 구성된 아르코 혁신 TF팀이 꾸려졌고 예술 행정의 민주주의와 환골탈태를 위해 조직 분야 혁신 의제 10가지와 사업 분야 혁신 의제 13가지, 총 23가지의 의제가 제안되었다. 아르코 혁신 TF팀이 언급한 '예술위가 불법적인 블랙리스트 실행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한 이유'에 대해 잠시 요약하여 나열해보겠다.

1. 독립성의 문제이다. 예술위는 문체부와 기획재정부의 하부 기관이며 재정적, 행정적 지시를 받는 하청구조였다. 상급 기관들의 정책 방향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는 태생적 약점이 있었다. 이에 상급 부처와 수평적으로 협의하여 기구의 독립성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며, 예산과 사업이 독립된 기관으로 전환하는 질적 변화를 구상해야 한다.
2. 사업기획과 심의과정에 자율적 의지를 가진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기 어려웠고 과정의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예술위의 혁신 방향이 예술 현장의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3. 예술위가 지녀야 할 전문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는 구조였다. 직원들의 전문역량 강화는 필수이다. 예술영역의 다양성을 확장 수용해야 한다.
4. 창작 예산의 부족과 수용 사업 예산과의 불균형에 대한 문제의식. '창작 없이 향유 없다!' 지원 심의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지원 절차와 집행 및 정산 절차를 간소하게 조정하는 등 집행자 중심에서 지원자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
5. 지역분권에 따라 지역문화예술 지원기구들이 늘어나는 추세로 이들과 결연하여 정보교류나 예술적 상승효과를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위의 내용을 읽으며 내가 있는 지역의 문화예술기관들도 별반 다르지 않지 않나, 위와 같은 상황에 부닥쳐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예술행정기관의 태생적인 불가피한 한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헌법에서 규정한 바와 같이 모든 국민이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분명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변화해 나가야 한다. 아르코 혁신 TF팀이 제안한 23가지의 의제는 현재 아르코 홈페이지 포럼/세미나 카테고리에서 추진 경과 보고서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다. '혁신'적으로 상당 부분 많이 개선되었다고 느끼긴 힘들었으나 지속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시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디 퇴보하지 않고 쭉 진행되어 나 같은 사람도 조금 더 검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길 소망해본다.

작가_  Sophy


*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베이직 커뮤니티' @with.basic.community
다음 카페 '캠페인 모임’ http://cafe.daum.net/campaignmeeting

* 헌법읽는청년모임 멤버 18명의 헌법 독후감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공유 중입니다. 굉장히 사적인 청년들의 헌법 독후감은 우리들의 숨은 이야기와 함께 한 권의 책으로 4월 중 출판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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